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고
시사회로 관람하였습니다.
세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어릴 적부터 궁 안에서 지내온 세종은 머리 위에 떠있는 별들을 보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곤 했다. 그의 옆에는 장영실이 있었다. 관노 출신인 그는 재주를 인정받아 세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머리를 조아리며 살아야 하는 그의 신분이었지만, 별은 언제나 그가 봐주기를 기다리며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장영실을 봐주었기에 장영실도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그렇게 나란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중 가장 빛나는 북극성을 가리키며 '저것이 주군의 별입니다.'라는 장영실의 말에 그 옆에서 함께 떠있는 별을 향해 '저것이 너의 별이로다.'라며 그들은 하늘에 서로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그렇게 꿈꾸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고, 그 옆에서 충실히 그의 빛을 바라보며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그런데 혹자들은 말한다.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명나라 황제의 별이오, 당신들은 그저 그들을 우러러보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니 더 큰 세상을 꿈꾸는 것은 반역일 뿐이다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세종은 여전히 쉽게 꺼지지 않고 여전히 그 누구보다 빛나는 눈을 가졌고, 장영실은 세종의 옆에 서서 든든하게 세종을 섬기고 있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 몇 줄로 보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스크린 속에서 펼쳐진다.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이야기가 역사책에 건조하게 쓰여있던 문장보다 훨씬 감성적이고 마음 깊이 울림을 가지며 우리에게 찾아왔다.
세종은 입버릇처럼 문장 앞에 '백성'을 붙였다. 무언가를 할 때에도 '백성을 위해', 밥을 먹을 때도 '백성들처럼', 발명품을 보고 처음 내뱉은 문장에도 '백성들이 이제는'이라 말하며 최우선으로 백성을 두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어떤 위치에 올라섰을 때, 자신이 무엇을 갖게 되었는지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는 사람. 세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왕이란 자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 위로 군림을 할 수 있는 자리이다. 권력의 최정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가 행하는 것들은 모두 백성이라는 가장 기본이 되는 나라의 토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왕이란 칭호보단 리더라는 칭호가 더욱 어울릴법하다. 왕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권력이란 단어가, 그에게 있어서는 백성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뜻이 되었다.
왕이란 단어는 위엄과 권위가 느껴지는 단어이다. 단 한 글자뿐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 처음엔 순수한 힘을 그렸을 것이다. 이상적인 그림을 그렸을 때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선을 시작했지만, 그 뒤에는 권력을 노리는 탁한 눈들이 있었고 마음을 뒤흔드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었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세종에게 미소와 함께 보내온 호의적인 모습들이 세종이 왕이 되자 음흉한 미소가 되어있었고, 세종이 조선을 위해 펼쳐놓은 정책들은 명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세종은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세종은 여전히 밤하늘의 별을 보며 빛나는 내일의 조선을 꿈꾸었다.
세종의 눈은 맑았다. 백성들 모두를 굽어 살피고 모두를 소중히 여겼다. 장영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다. 관노였던 장영실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신분 계급이란 것이 절대적인 힘을 가질 때였기에, 왕 옆에 노비 출신의 인물을 둔다는 것은 기존의 체계를 붕괴시키고 나라의 기반을 흔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세종은 남들의 시선보단 자신의 눈을 믿었다. 노비 출신이기에 천한 품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남들의 말에도, 세종은 장영실의 눈에서 올곧은 마음을 보았기에 그는 손을 내밀었다.
장영실은 재능이 있었다. 노비라는 신분에 막혀있던 비상한 재주는 명나라의 기술보다 좋았고,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치도록 도와준 세종을 온 마음을 다하여 섬겼다. 세종은 장영실을 믿었다. 그들은 군신의 관계였지만, 그 사이에는 더욱 깊게 서로를 엮은 진심이 있었다. 세종은 자신의 권력이나 당파싸움에서 벗어나 자신을 진심으로 따라주는 장영실이 좋았고, 장영실은 신분을 떠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순수하게 보아주는 세종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조선에서 나온 두 명의 천재는 자신들의 재능과 힘을 발휘하여 조선을 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거친 현실만이 놓여있었다.
결국 세상의 흐름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명나라는 조선을 자신의 속국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왕을 도와 나라를 함께 이끌어야 하는 대신들은 당파 싸움 외에 여념이 없었으며, 세종과 장영실이 서로 나눈 진심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엔 눈엣가시이자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영원히 함께 빛나길 바라며 조선의 하늘 아래서 그렇게 그들은 또 하룻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역사극은 아쉽게도 결말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그들의 이야기와 당시의 시대상은 단순히 글로 읽었던 것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담고 있었다.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과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 이야기 속에, 조선의 역사가 유머러스하게 포장되어 이야기를 전달한다. 서로를 진실되게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하늘에 물었던 그들의 질문들이 스크린 가득 메아리치며,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12월 26일 우리에게 찾아온다.
Forbidden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