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몇 번만으로 만천하에 자신을 보여줄 수 있게 되고, 해시태그로 이어지는 정보망이 지금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순간을 증명이라듯 하듯, 연대기처럼 이어지는 인증들은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으며 요즘 시대엔 필수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분명 개인으로 시작하였지만, 다른 사람과의 '좋아요'로 연결되어 소통이 되어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러한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는 지인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만난 적 없고 대화를 나눈 적 없어도, 터치 몇 번으로 행해진 맞팔로우만으로도 서로는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온라인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망 또한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망과 같은 의미를, 어쩌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도 있는 것이 요즘의 세상이다.
만약 이러한 사회 속에서 모든 온라인의 관계망이 끊어진 채 고립된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위해선 극한의 상황이 필요하다. 조일형 감독의 영화 <#살아있다>에선 좀비들이 창궐한 세상 속에 남은 생존자의 시선으로 이를 보여준다.
오준우(유아인 분)는 살아남았다. 작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였다. 짧은 머리에 노랗게 염색한 그는 거창하게 살진 않으면서도, 세상에 밉보이지도 않은 평범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홀로 남아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창 밖은 끔찍했다. 도저히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 괴성들과, 다정했던 이웃들 간의 인사말은 피비린내로 변했고,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가 있었다.
그는 혼자가 되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고립된 것이 아닌, 인터넷을 포함한 전화, TV 등 모든 통신망이 마비되며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큰 괴로움은 굶주린 배나, 좀비들이 주는 공포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가장 희망적인 상태가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었다. 생존은 동물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본능이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괴로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의 끝에서 삶의 마지막 끈을 놓으려 할 때 그에게 빛이 다가왔다.
김유빈(박신혜 분)도 살아남았다. 준우의 맞은편 집에서 그를 향해 빛을 비추며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딘가 능숙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준우가 다음날을 기다리게 해주는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이름도 모르고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눈 적 없었다. 하지만 둘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기에 금세 서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다른 색을 띠게 된다.
좀비의 존재로 인해 그들은 공포와 마주하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 이야기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사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지를 서로의 만남을 통해 보여준다. 그들이 인간으로 살아있게 해주는 것은 단순히 좀비에 물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영화는 결국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극한의 상황에서 어디까지 인간됨을 지킬 수 있는가. 유빈은 말한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야.'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질문은 돌고 돌아 그들을 향한다. 그들이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희망을 부여잡고 밑바닥까지 내려앉아서는 억지로라도 살아남는 것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야기는 계속해서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영화 <#살아있다>는 드라마를 품게 된다. 좀비 영화라고 하면 공포와 생존과의 싸움에만 집중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조금 더 감성적이고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긴박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속도감을 잃지 않고 관객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시키며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영화가 끝나고 은은하게 퍼지는 여운은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