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생신을 음력으로 세신다. 음력 11월 11일. 올해는 크리스마스와 겹쳤다. 평소 기념일은 생일만 챙기는 우리집이지만, 아버지의 생신과 겹쳐서 그런지 올해는 왠지 크리스마스를 더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인데도 출근을 하시기에, 저녁은 내가 요리를 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특히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은 느낌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물건을 구경하는 딸이나, 유모차와 카트를 하나씩 맡아 밀고 가는 부부들을 보니 새삼 연말의 그 뭉글뭉글한 분위기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 아마 올해는 특히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깥에 나가기 어려운 환경이 된 만큼, 가족들과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새삼스레 가족들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가까우면서도 생각보다는 가깝지 않은,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들.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기에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그만큼 더 세심한 배려와 적절한 거리감이 필요한 이들. 올 한 해는 집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런 불편함이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우리집은 나름대로 화목한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데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부디 내년에는,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