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국민육아템, 식탁의자가 필요 없던 아이

by 터닝포인트

2017년생,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첫째 아들의 태명은 하람이었다. ‘하늘이 주신 사람’의 줄임말. 튼튼이, 뿅뿅이 등 비교적 가볍고 귀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태명이 대세였는데, 이 아이의 태명은 진지하고 무거운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0대 중반, 오랜 연애 공백 기간 동안 실속 없는 맞선에 지쳐 있었고, 이번 맞선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선을 보지 않을 것이고, 남자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일과 결혼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나갔던 선 자리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늦깎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비교적 늦게 가졌기 때문에 유행보다는 아이에 대한 나의 소중한 마음을 더 담고 싶었다.


하람이가 생긴 것을 처음 알게 된 임신테스트기부터, 산부인과에 가서 하람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것, 조금씩 성장해 가는 초음파 사진을 보는 것, 산전 요가를 다니며 엄마들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공유하는 것 등 임신 기간 내내 설레었고 즐거움이 가득했다. 출산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순산하게 해 준 하람이가 복덩이라고도 생각했다. 출산 후 10개월간 나와 한 몸이었지만, 한 번도 얼굴은 보지 못했던 아이의 얼굴을 처음 보는 신기함과, 그동안 내가 만들어 낸 것들 중 가장 신비롭고 영특한 작품이 바로 ‘생명’인 이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동기들과 육아 정보도 나누고, 엄마로서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아이에게 너무나 복받쳐 오를 만큼 고마웠다.


산후조리원 퇴소 후 몇 개월의 육아휴직을 한 후 나는 다시 복직을 했고, 하람이는 베이비시터 이모할머니와 친정엄마에게 대부분의 시간 맡기게 되었다. 퇴근 후 잠깐씩 보는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나는 끝없는 황홀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이 다 너무나 완벽한 것만 같았다. 하람이는 입이 짧아 잘 먹진 않았지만, 그건 나와 남편도 모두 어릴 때 잘 안 먹었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고, 너무나 움직임이 많은 편이라 식탁 의자에 잘 앉아 있지 않은 편이어서, 육아 장비빨을 위해서 구비해 둔 식탁의자가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었다. 어디선가 육아템들이 모든 아이들에게 다 효능성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 ‘애바애’ (아이마다 다르다는 의미)라는 말도 들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심지어 다른 엄마들에게 식탁의자가 별로 필요 없다는 아주 짧은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얘기까지 한 적도 있다. (알고 보니 대다수의 아이들이 식탁의자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가 5세가 되어 놀이학교라는 기관을 다니기 전까지는 말이다…


5세가 되어 처음으로 놀이학교라는 유아 기관을 다니게 되었다. 사실 5세에 첫 기관이면 요즘은 매우 늦게 보낸 편인 것이다. 기관을 보낸 시기가 비교적 늦어지게 된 이유는 베이비시터 분이 아이를 너무 잘 봐주시기도 했고, 코로나 시기라 여러 불안감이 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육아서에서 남자아이는 조금 늦게 보내는 것이 좋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기도 했었고. 어쨌든 입소 후 첫 한 달은 잠잠했지만, 2번째 달 이후부터 거의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하람이가 수업 시간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서 블록 놀이를 했어요, 어머니.” ‘오늘 하람이가 친구들을 불편하게 했어요, 어머니.” “오늘 하람이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혼자 캐비닛 안에 들어갔어요, 어머니.” “이 아이는 이 기관과 성격이 맞지 않으니 다른 기관을 알아보는 게 좋으시겠습니다!” 등 끝없는 걸려오는 전화… 전화… 가을 학기쯤 되자 놀이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뒷목이 뻣뻣해져 왔다.


왜 우리 사랑스러운 하람이를 놀이학교 선생님들은 몰라주는 거지… 우리 하람이가 조금 활동적인 것일 뿐 차츰 시간이 지나면 누구보다 잘 적응할 거야. “선생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집에서도 잘 지도해 보겠습니다.”라는 정말 내 아이도 모르고, 유아 기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도가 매우 떨어지는 우매한 첫 아이 엄마 짓을 하고 있었던 거더라. (둘째까지 낳고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긴 하지만 말이다.)


놀이학교에서 다른 기관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말이 나가라는 말인지도 모르고 눈치 없이 하루하루 버티며 쫓겨나기 일보직전이었던 그때, 다행인 건지 원장님이 갑자기 바뀌며 원생들의 대다수가 다른 기관으로 옮기게 되어서 남은 아이 수가 한 반에 4~5명이 되어, 구사일생으로 하람이는 그곳에 잔존(?)할 수 있었고, 그렇게 5세는 1년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적응했다고 생각해 버렸다. 6세에 몰려올 더 큰 쓰나미가 있을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