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5세, 놀이 학교에서 쫓겨날 뻔하다.

by 터닝포인트

그저 조금 많이 활동적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은 5세에 약간 늦은 기관 입학과 함께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그 당시에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선생님과 자주 통화하는 줄만 알았다. 첫째를 초등학교까지 보내고, 둘째도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본 지금에서야 그게 유별났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다.


첫째라 귀하디 귀한 아이라 원비가 비싼 편이라 느껴졌지만, 소수 정예에 케어를 잘해준다는 ‘놀이 학교’에 만 3세, 한국 나이로는 5세에 하람이를 보내게 되었다. 아이도 첫 기관이었지만 엄마인 나 역시도 첫 기관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아이를 보내게 되었다. 39개월 넘게 집에만 있던 아이인지라 처음에는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에 두려움과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곧 쿠킹, 체육, 미술, 과학 등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밌는 수업들에 어느 날은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다시 놀이학교를 가겠다는 떼쓰는 날도 생겨났다.


“나 놀이학교가 좋아졌어. 다시 또 갈 거야~~~!”


현관에 앉아서 원복에 가방을 메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떼쓰는 아이의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고, 기특하게도 아이가 기관에 흥미를 느끼고 적응해 가는 것만 같아서 흐뭇하기도 했다.


그런데 초반에는 아이들의 적응으로 바빠서 연락이 자주 없던 선생님의 전화가 4, 5월이 되자 거의 매일 오기 시작했고, 통화 내용이 “아이가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갑니다.”가 아닌 “오늘은 이런 문제 행동을 했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어머니?”였다. “오늘은 하람이가 블록 놀이를 하느라 그다음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오늘은 하람이가 질서를 지키지 않고 친구들을 불편하게 했어요.” “오늘은 하람이가 비품 캐비닛에 들어가서 장난을 쳤어요.” “오늘 하람이가 영어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등등 주로 아이의 문제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하는 마음으로 “네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집에서 잘 지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통화를 종료하곤 했다.


그런데 5월쯤 갑자기 부원장님이 바뀌었는데, 그 뒤부터 부원장이 직접 연락하기 시작했고, 통화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저런 아이들은 점점 더 문제 행동이 커질 거예요 어머니.” “이 기관이 아이 성향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에너지를 발산하고, 활동적인 기관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나가라는 말인데… 은연중에 그런 의중인 줄 느끼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고, 막상 첫 아이다 보니 재빠르게 다른 적당한 기관을 탁 찾아서 신속히 싹 바꿔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부원장이 권한 기관은 ‘유아체능단’이었는데, 전화를 해보니 빈자리도 없었고, 코로나 시기라 스포츠 수업을 주로 진행하는 유아체능단에서 대부분의 수업들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도 모르고, 다양한 유아 기관의 특징들을 잘 모르기도 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잘 적응하리라 참 우직하게도, 우매하게도 믿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도 예체능 쪽이 아니고, 가족들 중에도 운동하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유아체능단’이람… 하람이는 1년 놀이학교 다니다 6세부터는 영어유치원을 보낼 겁니다! 흥! 우리 아이의 잠재력을 너무나 과소평가하시는군요!’라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속된 말로 그냥 버텨 보자면 하루하루 보냈다.


우리 아이 입학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운영과 완벽한 케어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 놀이학교가 하람이 입학하는 시기에 원장도 바뀌고 부원장도 2번이나 바뀌면서 불안정한 상태로 자꾸 변해갔다. 나에게 반협박 조로 전화하던 부원장도 몇 개월 후에 교체되었고, 가을쯤에는 담임선생님도 바뀌었다. 매일 직장 상사보다 더 스트레스를 줬던 부원장의 교체는 대환영이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다른 기관으로 옮기게 되어 원래 12명 정원이 꽉 찼었던 하람이네 반은 4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는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하여, 구사일생으로 남은 기간은 ‘잔존’할 수 있었다. 남은 아이가 4명 밖에 되지 않자, 나가라는 압박 대신, 혹시라도 나갈까 봐 극진한 케어를 해주기 시작했던 것. 이런 것을 두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다행히 다른 기관으로 옮길 필요 없이 5세 1년을 무사히 잘 버텨냈다.


문제는 6세 기관 선정이었는데… 그때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아이의 상태를 모르고 6세에 보낼 영어유치원 설명회를 다니던 중, 같이 놀이학교 다니던 친구들의 엄마들을 만나게 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들 6세에 재입학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아이는 단지 늦게 연락을 하려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재등록 권유 전화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엄마인 나 역시 그렇게 ‘인싸’의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어떤 곳에서 이렇게 소외되고, 밀려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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