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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껏 May 20. 2024

파편화된 옛 기억들을 개념화하는 훈련

경력잇는 여자들 <엄청난 가치> 16강_ 글쓰기


 글쓰기 4번째 시간이다. 이 날 대주제는 '당신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요'인데, 이와 관련해 주어진 10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떠오르는 대로 적어 봅니다.

2.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떠오르는 대로 적어 봅니다.

3. 당신의 부모님은 칭찬을 잘하는 분이셨나요, 아니면 잘못을 지적하거나 혼내는 일이 더 많았나요?

4.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칭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나 상황은 무엇인가요?

5.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꾸지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나 상황은 무엇인가요?

6.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에게 "~해야 한다" 또는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요? 이와 같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7. 지금의 당신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어느 쪽 삶의 방식을 따라 살고 있나요?

8.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 가운데,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모습이 있나요?

9. 만약 나에게 자녀가 있다면, 나의 어떤 모습을 닮으면 좋을까요?

10. 만약 나에게 자녀가 있다면, 나의 어떤 모습만은 결코 닮지 않기를 바라나요?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소리 내어 질문을 읽은 뒤, 15분 동안의 시간 동안 답을 적어본다. 질문만 보면 간단한 물음인데 막상 답을 하려고 자세를 잡으면 뭘 적어야 할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질문당 답을 적을 수 있는 분량은 10줄 이상의 여분이 주어지지만 두 줄 이상 채운 질문이 거의 없다. 채운 내용도 겨우 떠오른 키워드를 몇 개 나열하는 수준이랄까. 어떤 것은 기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채로 정리가 되지 않아 차마 적지 못하고, 다른 어떤 것들은 아예 기억이 떠오르지 않거나 너무나 희미해 글로 붙잡기 어려웠다.


 선생님은 몇몇 사람들이 적은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을 주시고는, 바로 이어 '기억'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티비냥] 충격 반전! 뇌섹피디아 소름 돋는 문제의 진실? | 문제적남자 180612 - YouTube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그와 관련한 영상을 함께 봤다. 영상을 짧게 요약하자면, 15개의 무작위 단어들을 30초간 기억한 뒤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는 거다. 나는 겨우 절반 정도를 기억해 냈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자 중 몇 명이(우리 모임에서는 2명 정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는데 실제 본 단어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세상에나!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가 본 단어들은 평상시 '희망'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단어였을 뿐인데도, 일정 정도의 사람들은 연상 작용을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고 꺼내어 놓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의 기억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해졌다. 나의 기억은 위 실험과 반대의 상황인 것은 아닐까? 여러 연상 단어를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달리, 한 번도 꺼내어 본 적 없는 기억들이 어떤 하나의 개념어로 정리되지 않고 연상 단어들만 파편화된 상태로 분산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오랜 묵혀둔 기억을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로 개념화하지 못한 채 불쑥 떠오르는 파편 기억만을 키워드로 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이해하는 글쓰기 시간이 아직까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더욱 자주 나의 과거를 깊이 들여다 보기, 파편화된 기억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나의 생각들을 조직화하기와 같은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겠다. 나를 알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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