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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방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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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Nov 10. 2024

강릉, 행복의 비결을 아는 사람들의 도시

며칠째 두통에 시달렸다. 한 가지 프로젝트를 끝낼 무렵이면 다음 프로젝트가 얹히고 또 그걸 마무리할 즈음 새로운 프로젝트가 얹히고 있었다. 쌓여가는 업무를 생각하면 휴가도 부담이었지만 일단 떠나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약속한 여행이었고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6시경 출발했는데 정오가 되어서야 강릉 표지판이 보였다. 꼭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건물이 대체로 낮아 차 안에서도 하늘이 잘 보였다. 강릉의 하늘은 깨끗하다. 톨게이트를 지나 강릉시내로 이어지는 도로에서는 하늘을 가리는 전선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강릉에서의 첫끼로 고른 메뉴는 초당순두부. 초당순두부의 '초당'과 초당옥수수의 '초당'은 다른 의미라는 걸 처음 알았다. 초당옥수수의 '초당'은 아주 달다는 의미이고 초당순두부의 '초당'은 '초당동'이라는 지역명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그래선지 초당순두부에는 초당옥수수처럼 단맛은 없었지만 고소하고 부드러워 술술 잘 넘어갔다.



2박 3일을 머무는 동안 강릉에서 맛있다는 건 조금씩이나마 다 맛본 듯하다. 강릉 사는 한 가족의 도움이 컸다. 우리 부부의 각별한 친구이자 동료인 이 가족은 2년 전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왔다. 당초 2년간 머물기로 계획했었고 그 2년이 끝나는 시점이 곧이었다. 이 친구들이 강릉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은 와보고 싶었다.

친구 부부는 우리를 위해 너른 마당이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4살, 6살, 7살인 세 아이를 모래밭에 풀어두고 친구 부부는 노련한 손길로 바베큐를 준비했다. 고기로 배를 채운 후에는 화로에 장작을 넣고 남은 장작으로 화로 주변을 에워쌌다. 불멍타임. 장작들이 모두 타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불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우리, 여기 더 있으려고."

부부 중 남편인 K가 느닷없이 말했다. K는 회사에서 핵심부서의 요직을 도맡아온 엘리트 직장인이다. 그런 친구가 본사를 떠나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사가겠다고 했을 때 못지않게 당황스러운 선언이었다.

"왜? 어째서?"

"여기가 좋아. J도 그렇고 싶대."

J는 친구 부부의 7살 아들. 학교 입학 전 계속 자랄 도시에 정착하려는 게 2년이라는 기한을 둔 큰 이유였다.

K는 강릉에 와서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에는 챙기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 개인의 삶, 건강 같은 걸 비로소 챙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할 도시를 떠올릴 때 친구의 표정은 지쳐 보였다.


다음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부부 중 아내인 E와 단둘이 강릉의 골목을 구경하기로 했다.

강릉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참 많다. 비슷해 보이는 소품샵이지만 들어가 보면 저마다 다른 주인의 취향이 묻어있다. 각기 다른 향기와 음악, 단 한순간도 시선을 낭비할 틈이 없도록 밀도 있게 채워진 공간들.

그중에는 바다를 닮은 초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사장님이 직접 초를 만드시는 한쪽 공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바다다. 바다가 배경인 그림책, 파도를 담은 엽서, 그리고 에메랄드 빛깔의 초들. 같은 바다라도 매 순간 다른 모양 다른 빛깔이듯 바다를 닮은 초도 하나하나가 미묘하게 달랐다. E는 거기서 내게 줄 선물을 골랐다. 흘러내린 촛농이 마치 하얀 거품처럼 파란 초를 감싸고 있는 신비한 모양의 초다. 정성스런 손길로 포장한 초를 건네며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그 물개 디자인한 사람, 저 건너편 가게에 있어요."

사장님이 말씀하신 물개는 내 가방에 그려져 있다. 가방은 서울 어느 카페의 굿즈상품이고.

"가게를 직접 운영하신다고요?"

"네. 부부가 같이."

우리 집에는 이 물개가 그려진 가방뿐 아니라 티셔츠, 에코백, 커피도 있다. 그만큼 내게는 각별한 브랜드라는 의미.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한다는 가게를 눈앞에 두고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 입구는 아주 오래된 미용실 출입구 같은 허름한 철문이었다. 도대체 드나드는 사람이 있긴 할까 갸웃하며 통과하자 좁고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그 계단 끝에 가게가 있었다.

한 줄로 걷는 츄파춥스 인간들. 빌라 건물 위에 엎질러진 아이스크림. 구멍가게 문으로 상체만 억지로 구겨 넣은 고양이 궁둥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그림들이다. 이 공간도 마찬가지다. 입구에서부터 내부까지,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독특하고 자유분방하게, 그래서 매력 있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림을 보다가 도저히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 엽서를 8장이나 골랐다.

고른 엽서를 계산대에 얹으며 물었다.

"이 물개 디자인하신 분이세요?"

"아, 제 아내예요. 저는 사진과 그림을 담당하고 디자이너는 아내예요."

돌아오는 차에서 미련이 남아 상호를 검색했더니, 관련된 게시물이 꽤 많다. 그중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는 부부의 사진을 클릭했다. 두 사람이 강릉에 정착한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기사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지독한 번아웃을 앓았고 더 이상 남들과의 키 재기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 모험처럼 강릉으로 떠나왔다고 한다. 한 번의 용기로 부부는 전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얻었고 자신들에게도 더 떳떳해졌다고.


소품샵에서 산 물건들을 주렁주렁 손에 들고 돌아오면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간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진 거다. 말끔히, 아주 흔적도 없이.

이거였나? 사람들이 강릉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근데 도대체 왜?

머무는 사람들마다 행복을 찾게 되는 이 도시의 비결이 궁금하다. 언제나 닿을 수 있는 바다? 적당히 여유로우면서 수도권과 너무 멀지는 않은 지리적 이점? 재촉하지 않는 자연의 시간? 뭐든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강릉이어야만 하는 뾰족한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강릉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꼽을 수 있다. 지금 행복하지만 이전에는 번아웃으로 지쳐있었다는 거.

어쩌면 그들이 강릉에서 행복해진 이유는, 행복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이미 행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살았던 도시가 그들에게 '번아웃'의 상징이었다면 강릉은 '행복'의 상징. 내가 강릉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들이라서 '강릉'은 내게도 재촉하지 않는 도시, 행복한 도시로 느껴진 것 같다.



6시간이 걸려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거짓말처럼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몇 시간 후면 월요일이고 오전에 예정된 회의 안건이 미뤄둔 숙제처럼 떠올랐다. 다시 일상이다.

그래서, 나도 강릉에 갈 거냐고? 글쎄, 나는 일단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 해결해 보려 한다. 강릉은 너무 멀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이사가는 것에 비하면 행복의 방해꾼 몇 개쯤 덜어내는 건 훨씬 간단한 일이지 싶다. 내려놓기. 요즘 나의 최고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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