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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Aug 22. 2021

조금 뻔뻔해도 괜찮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너에게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눴어.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운 시국이라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액정 속에서 오가는 대화였지만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늘 즐겁단다. 엄마의 어린 시절 치부까지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이라 편하기도 하고.

고교시절 기숙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에서 시작해 그 시절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근황, 한동안 잊고 지낸 동창생들의 근황으로 이어지던 대화는 어느새 '돈' 얘기로 흘렀어. 한 친구가 '아파트 대출금'이라는 화제를 불쑥 꺼낸 순간, 너도나도 '돈' 때문에 어려운 사정을 대결이라도 하듯 꺼내기 시작했지.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사는 30대 중반 우리 삶에서 '돈'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단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38.2%)'이라고 해. 2위가 '질환이나 장애(19.0%)', 3위가 '외로움과 고독(13.4%)'이라고 하니 경제적 어려움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고통보다 사람을 더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

돈이 없어서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돈으로 교환되잖니. 이런 사회에서 경제적 어려움은 단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삶에 필요한 어떤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그 어떤 것들 중에 가족의 건강과 안위, 자신의 꿈과 미래가 들어있다고 생각해 봐. 돈이 없는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겠니?


그런데 이 '돈'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해.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것이 돈이라면, 적어도 그걸 가질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마땅하잖아. 하지만 다른 어떤 자원보다 불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이 '돈'이거든.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하는 수저계급론 비유에서도 드러나듯 태어나는 순간부터 저마다 다른 경제적 여건이 주어지지. 누군가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돈을 교환수단 삼아 원하는 걸 쉽게 손에 넣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큰 욕심 없이 그저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자 할 뿐인데도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버는데 써야만 하지.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사람이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훨씬 빠른 세상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렇듯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돈의 속성이야말로 네가 돈 때문에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해. 네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진 경제적 여건 때문에 마음까지 불행해진다면 너무 억울하잖니.

흔히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재물로 상대를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야. 이 말을 너 자신에게도 적용해보렴. 돈의 있고 없음으로 너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라구.

네가 아직 젊고 훗날의 네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형편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뻔뻔해져도 괜찮아. 가난은, 특히 젊은 날의 가난은 네 잘못이 아니니까.


엄마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는 30대 초반의 가난한 가수 지망생 한예슬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형의 재산 덕분에 떵떵거리고 사는 그의 동서는 가족 여행경비를 매달 얼마씩 모으자며 눈치 없는 얘기를 꺼내. '힘드시면 형님네는 저희가 대신 내드리면 되죠', 하고 보는 사람조차 콕 쥐어박고 싶게 만드는 얄미운 말을 내뱉는단 말이야. 거기서 한예슬이라는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대신, '그래. 성공할 때까지만 부탁 좀 하자'라고 웃으며 말해.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쿨하게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며 성공을 기약하는 모습이 엄마 눈에는 멋져 보이더라. 하루빨리 그가 가수로 성공해 꿈도 이루고 가난으로부터도 탈출하기를 간절히 응원하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교환되잖니. 뒤집어 생각하면 네가 가진 어떤 것들도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네가 가진 건 뭐니? 시간? 건강? 젊음? 재능? 그것들 중에 네가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형편에 있을 거라는 믿음과 자신감도 꼭 들어있었으면 좋겠다.


돈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지만, 다행히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도 없단다. 계좌에 쌓인 숫자의 크기가 곧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우리 기준에는 충분히 많이 가진 것처럼 보여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고.

어릴 적 엄마네 가족은 방 두 개짜리 낡은 집에서 다섯 식구가 부대끼며 함께 살았고 외식을 하는 건 손꼽을 정도로 드문 행사였거든. 그때에 비하면 방이 세 개나 되고 거실까지 딸린 아파트에 살며 외식을 수시로 하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워진 셈이지. 하지만 외식의 빈도나 집 평수에 비례해 엄마가 느끼는 행복도 커졌다고 볼 수는 없어. 그때는 그때대로 좋았고, 지금은 또 지금대로 좋아.


엄마와 아빠는 네게 더 좋은 환경과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고 싶어서 나름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단다. 하지만 이 돈이 네 행복지수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을 거야. 그건 네 마음에 달린 문제거든.

돈도 행복도 모두 상대적인 거란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한 돈이 가진 가치를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맹목적으로 쫓지도 말아야 할 이유야. 돈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지는 마. 그것이 있고 없음이 곧 네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돼.

오늘보다 1년 후, 1년 후보다 10년 후에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경제적인 목표를 현실적으로 세우고 나아가되, 지금 네게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일에도 소홀하지는 말자.






비록 나는 부의 축복에 감사하지만 부로 인해 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내 발은 아직 땅을 딛고 있다. 단지 좀 더 좋은 신발을 신었을 뿐이다.

Though I am grateful for the blessings of wealth, it hasn't changed who I am. My feet are still on the ground. I'm just wearing better shoes.


-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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