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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Sep 04. 2020

팬데믹으로 수능이 취소된다면

알고리즘 대책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2020년 영국 대학 입시

2020년 8월 중순,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전국 대규모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다시 돌아온 거리두기 2단계 방역지침에 불현듯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11월에 수능을 치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야 하나?


수험생, 학부모, 교육 당국 모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이뤄진 나라가 있다. 매일 2,000~6,000명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와 지난 5월 대입시험조차 취소해야 했던 나라, 바로 영국이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수능을 대체했을까? 도대체 대학입시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들어가기에 앞서: 영국 대입제도 10초 요약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5년, 그리고 한국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대입 준비학교(Sixth form college)에서 2년까지 도합 13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영국 학생들(만 17-18세)은 대입시험인 ‘A레벨(GSE Advanced Level)’ 시험을 치른다. 학생이 선택한 3과목을 치르게 되는데, 시험은 객관식 중심인 한국 수능과는 달리 대부분의 시험은 서술형으로 이루어진다.


영국의 대입 시스템이 한국과 다른 점은 ‘선(先) 지원 후(後) 시험’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예상 점수에 따라 원하는 6개 대학에 먼저 지원하고, 이후 대부분 A-Level 등급 결과에 따라 합불이 나뉘는 조건부 입학허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5~6월에 치른 A레벨 시험 결과가 나오는 8월 중순은 수험생의 희비가 엇갈리는 시점인 것이다.


시험의 성격과 대입 제도가 상이하더라도, 한국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대입시험 점수가 없으면 입학 확정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2020년 코로나로 인해 A레벨 시험을 치르지 못한 이들은 매우 영국스러운 묘안을 떠올렸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위대한 알고리즘이 너희의 등급을 정해줄 것이야

출처 <TLDC New>

영국 시험감독청(Ofqual)은 학생들의 성적을 알고리즘으로 산출하기 위해 교사에게 두 가지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1) 학생들의 예상 A레벨 등급과 2) 해당 등급 내에서 학생들의 상대적인 순위이다. 사실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교사들은 학생의 모의고사 성적 등을 고려하여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예상 성적을 제출해왔다.


그러나 교사들은 대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대해 낙관적이고, 각 학교는 좋은 등급의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시험감독청은 알고리즘을 통해 최근 3년간 해당 학교 졸업생 성적을 기준으로 표준화 작업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것 참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21세기 한국 대학입시 3불 정책 중 하나인 ‘고교등급제’를 대놓고 실시한 것이다.


이 것이 알고리즘 대책이 매우 영국스럽게 보이는 첫 번째 이유이다. 영국 학교교육의 특징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매우 강도 높은 학교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교육제도에 매우 익숙하며, 정량평가를 통한 차등 보상과 제재에 익숙하다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비 행정부 정부기관으로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영국 교육기준청(Ofsted)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기관의 업무와 실적을 평가하고 공표한다. 학교운영, 학생안전, 교육의 질, 학업성취 등 다각적인 평가 결과가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고, 이에 기반하여 각 학교는 실질적인 보상과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교묘하게 계급·인종차별적인 알고리즘

출처 <Getty Images>

급격한 학력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통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A레벨 등급이 발표된 8월 13일, 단 2.2%의 학생들만이 등급이 향상된 반면 39.1%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예상보다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서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단순히 등급을 낮게 나온 것이라면 학생들의 생떼로 치부될 수 있었겠지만, 일파만파 논란이 커진 것은 알고리즘 조정 결과가 인종차별(Racist)적이고, 계급차별(Classist)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학급 규모에 따라 알고리즘이 다르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5명 이하의 소규모 학급은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5명이 넘는 학급인 경우에는 기존 학교의 3년간 평균 산출에 맞춰 성적이 조정되었다. 언뜻 학급 규모가 계급 및 인종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5명 이하의 학급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비싼 등록금을 내거나 성공회 종교 기반의 명문 사립학교들이다. 반면, 지역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에서 한 학급이 15명 이하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출처 <BBC>

알고리즘 대책이 영국스러운 두 번째 이유는 이처럼 교묘하게 구조화된 차별이다. 알고리즘은 직접적으로 출신학교를 차별하지 않았으나, 사립학교의 최고등급(A등급 이상) 학생 증가율(4.7%)은 공립학교(2.0%)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본 학생은 공립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었다. 뉴스에서는 썩 좋지 않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슬픈 사연들이 매일 연이어 보도되었다. 이를테면, 영국 최빈곤 지역 공립학교의 한 학생은 예상 등급으로 전과목 A등급을 받았지만, 알고리즘 조정에 의해 전과목 B등급으로 바뀌기도 했다.




만약 한국이 팬데믹으로 수능이 취소된다면

출처 <KBS>

조정 결과 번복은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지 이틀 뒤, 결국 영국 정부는 알고리즘 조정을 전면 취소했다. 최초 교사가 제출한 예상등급(Centre Assessed Grade)으로 학생 성적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알고리즘은 목표했던 등급 인플레이션과 불공정한 평가 모두를 예방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입 정책에 혼란만 가중하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을 일으키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알고리즘 실패는 통계적 오류보다는 문화적·윤리적 선택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예측 등급을 수용한다는 전제부터 고교등급제 성격의 알고리즘을 적용한 것까지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방법을 영국 교육당국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국 사회를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전국적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실시된다면, 우리는 수능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교육부 역시 지난 8월 4일 시험실 입실 인원 축소, 칸막이 설치, 자가격리 수험생 별도 시험장 운영 등 계획을 포함한 ‘2021학년도 대입 관리방향’을 발표하며, 사실상 예방수칙을 준수하며 시험을 치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내비쳤다.


물론 예방수칙을 준수하면서 수능을 치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처럼 불완전한 대안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하는 것보다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 최대로 민감해진 약 48만 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잡음 없이 운영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021년 대입, 그 디스토피아적 상상

<출처 - Pikist>

올 초 학생부 종합전형 불공정 논란으로 정시 모집 확대로 회귀한 직후에 팬데믹이 발생했기에 더욱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 수능과 정시 모집 시스템에서 예측 가능한 팬데믹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훗날 이 글이 성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강남 학원가에서 수능특강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n차 팬데믹이 발생한다. 수능을 눈 앞에 둔 교육부는 우왕좌왕하다 학생 안전을 우선시하는 전국민적 여론에 수능을 연기한다. 연말까지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감을 토로하고, 대학들은 입학사정 업무 계획을 세울 수 없다. 해를 넘겨 어렵사리 수능을 실시해보지만 시험문제 유출, 감염자 시험환경 불공정 논란 등 방역과 보안 문제가 뒤엉켜 사태가 복잡해진다. 결국 100만이 넘는 국민청원에 결국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방송을 하고, 2020년 수능은 ‘코로나 수능’이라 불리며 역대 최악의 수능으로 역사에 회자된다.”


이 것은 가볍게 적은 한 편의 상상 시나리오지만, 이 안에서 표현되지 않은 수험생 개개인의 불안과 공포,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무기력함과 안타까움, 공정과 안전이라는 사회적 근간을 뒤흔들 혼란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앞으로 보다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감안하면, 매년 제발 팬데믹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 수능 시스템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 하루, 제한된 시공간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객관식 상대평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의구심을 던질 한 가지 이유가 추가되었다. 매년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간 시험부터 채점, 정정, 대학 지원, 입학 허가까지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입시일정 또한 관성에서 벗어나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이제는 팬데믹도 대입제도 설계의 기준이 돼야 한다


우리는 고유의 시선으로 대입제도를 바라본다. 하지만 1년에 최대 7번 SAT 시험을 칠 수 있는 미국이 있고, 교사의 평가등급과 고교등급제 성격의 알고리즘을 받아들였던 영국이 있고, 자격시험에 가까운 절대평가 대입시험을 운영하는 프랑스가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객관식 대입센터시험을 폐지하고 ‘제시문 및 정답이 있는 논술형’ 문제로 전환하는 일본도 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금방 국제 표준이 되고, 전 세계 유학생이 530만 명이 넘는 현시점에도 이렇게 각 나라의 대입제도가 이렇게 다르다. 대입제도는 그 나라 대중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0년 모든 대중에게 각인된 팬데믹은 자연스럽게 대입제도 설계의 한 기준이 될 것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으로 인한 중장기 대입제도 개편을 앞두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입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제 대입시험은 교육, 행정, 그리고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보다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의 논의가 필요하다.  


팬데믹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수능 응시 횟수를 늘릴 것인지. 정시를 유지한다면 수능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것인지. 고교학점제 내신 절대평가에서 우리 사회는 교사의 평가 권한을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는지.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된 논의에서 과연 수능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덜 한숨 쉬고, 덜 눈물 흘리며 대입을 치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 글은 딴지일보에 게되었습니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641758623




참고문헌 


BBC, A-levels U-turn: Universities facing 'crazy demand' from students

https://www.bbc.co.uk/news/uk-53819655 


BBC, A-levels and GCSEs: How did the exam algorithm work?

https://www.bbc.co.uk/news/explainers-53807730 


BBC, A-levels: Ofqual's 'cheating' algorithm under review

https://www.bbc.co.uk/news/technology-53836453 


Guardians, Pressure grows on ministers over England A-level results 'mess'

https://www.theguardian.com/education/2020/aug/11/pressure-grows-on-government-over-england-a-level-results-mess-coronavirus 


주한영국교육원, 대학 입학제도

http://www.koreaneducentreinuk.org/%EC%98%81%EA%B5%AD%EA%B5%90%EC%9C%A1/%EC%98%81%EA%B5%AD%EC%9D%98-%EA%B3%A0%EB%93%B1%EA%B5%90%EC%9C%A1/%EA%B3%A0%EB%93%B1-%EC%9E%91%EC%97%85%EA%B5%90%EC%9C%A1-%EC%A0%9C%EB%8F%84/ 


주한영국교육원, 대학 입학제도

http://www.koreaneducentreinuk.org/%EC%98%81%EA%B5%AD%EA%B5%90%EC%9C%A1/%EC%98%81%EA%B5%AD%EC%9D%98-%EA%B3%A0%EB%93%B1%EA%B5%90%EC%9C%A1/%EA%B3%A0%EB%93%B1-%EC%9E%91%EC%97%85%EA%B5%90%EC%9C%A1-%EC%A0%9C%EB%8F%84/


경향신문, 영국 수험생들 거리로...코로나발 대입 공정성 논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71630001&code=970100 


에듀인뉴스, 수능 D-100 국회의 수능 시행 학교 확대, 비대면 시행 요구에...유은혜 "어렵다"

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21 


이병환. (2002).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성격과 평가. [KEDI] 한국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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