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맠크나 Mar 06. 2020

Better late than never

24살과 27살 북인도 라다크, 나를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 줄 이야기

2013년 여름 - '오래된 미래'의 오지를 찾아서

북인도 라다크에는 파키스탄과 국경지역 다하누벨리(Dha-Hanu Valley)의 끝자락에 하누곰마(Hanu Gongma)라는 마을이 있다. 육포같이 말라붙은 맨 살을 드러낸 산맥을 일주일에 한 대뿐인 로컬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8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작은 마을. 히말라야 고산의 빙하가 마을을 가로질러 녹아 흐르고, 양 옆으로 펼쳐진 밀밭과 살구나무 숲이 아름다운 마을. 사랑을 돈이 아닌 꽃으로 고백하는 브록파족의 마을.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산골짜기에 사는지 궁금한, 그런 마을.


2013년 여름, 나는 관광객이 오지 않는 진짜 오지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하누곰마를 향해 떠났다. 딱 기대한 만큼 오지였던 하누곰마는 정말 어떤 홈스테이나 레스토랑도 없었고, 먹는 시늉과 자는 시늉을 하며 돈을 보여줘도 낯선 이방인을 거둬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털레털레 마을을 걸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며 놀고, 노인들과 과자를 나눠먹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얻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꽃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마을. 나는 처음부터 지갑이 아닌 들꽃을 꺾어 다녔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준 덕분에 머물게 된 집은 10명의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 들떠있었다. 나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아이들은 나의 지갑에 든 조그마한 가족사진을 보며 조잘거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어머니는 난롯가에서 짜파티를 구웠다. 밥을 내 방으로 가져다준다는 것을 만류하고 향기롭게 난로 옆에서 온 가족과 따뜻한 식사를 함께 했다. 그네들과 똑같은 식사를 나눌 수 있어 충분히 행복했던 그 식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히지 않았다. 시골에서 명절날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듯한 온기가 마음에 담겼다.


그렇게 하누곰마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마을이 되었다. 이 세상에 아직도 돈으로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과 그들에게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감사함에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온 가족을 불러 모아 스마트폰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내년에 꼭 이 사진을 들고 돌아올게요.”




2016년 여름 - 다시 찾아간 그 마을에는

내년에 가족사진을 가지고 돌아오리라는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하루들이 모여 한 해, 두 해가 지나도 그 약속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꾸만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거슬러 2013년 여름에 적은 여행기를 읽고 있었다. 적지 않은 스크롤을 내리며 시간을 거스를 때마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다시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Leh)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적응하고 하누곰마를 향하는 로컬버스를 탔다. LPG 가스통, 공사용 목재 등 온갖 짐으로 가득 찬 로컬버스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편 뿐인 로컬버스를 타고 고지대의 사막과 원시적인 나체의 산을 바라보며 달렸다. 그러나 훨씬 잘 닦인 도로, 많아진 휴게소 점포들, 중간 마을부터 매일 하누곰마를 향하는 미니버스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 옆자리엔 조그만 불안함이 함께 동행했다.


7시간을 내달린 버스가 점점 더 하누곰마가 가까워져 갔다. 한 마을을 지날 때마다 버스 루프탑에 놓인 짐이 하나씩 하나씩 내려졌고, 미지의 마을을 향하던 3년 전의 두근거림과는 조금 다른 설렘이 내 옆 좌석에 함께 자리했다. 동행이 많아진 나는 버스 안내원에게 허락을 받고 루프탑 빈자리에 올라탔다. ‘불안함과 설렘’, ‘반가움과 부담감’, 상반된 감정들을 털어내려 노력했다. 고개를 들어 지난 방문과는 또 다른 늦여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흐르는 히말라야의 계곡물, 수확이 가까워진 금빛 들판, 다 익어 떨어진 살구. 농기구를 든 브록파족 할머니.


종점인 하누곰마 다다른 나는 그 집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높은 언덕 위에 변함없이 서있는 노란 집이 나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찾아갔던 그 집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었다. 걸어가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지만, 속마음만은 더없이 두근두근했다. 노란 밀밭을 헤치며 도착한 집 앞에서 가장을 만났다. 그리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나를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 줄 이야기

짧은 적막. 그리고 가로젓는 그의 고개. 아버지 뒤에서 빼꼼 쳐다보는, 딱 상상했던 만큼 자란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들 역시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민망함을 넘어 당황스러웠던 나는 얼른 그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을 내밀었다. 가족사진 액자를 한참 바라보며 신기해하던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더듬어가는 것 같았다. 집안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 그들은 정말로 기억이 났는지, 그렇게 하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며 오늘 하루 머물고 가기를 제안했다. 그럼요.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답니다.


3년 전과 같은 방에 짐을 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걸었다.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며 부둥켜안는 감동적인 재회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 한 켠이 서운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바쁘게 지냈던 그만큼의 시간들이 이들에게도 지났으리라. 그리고 낯선 여행자의 하룻밤 약속은 일 년 내내 흐르는 히말라야 시냇물에 흘러갔으리라. 작은 약속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이 곳에 돌아온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시냇가에 주저앉아 나는 내가 한없이 작아진 것만 같은 생각에 잠겼다.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와 또 한 번의 따뜻한 밤을 보냈다. 어느새 옹기종기 모인 대가족과 정성 들여 만든 저녁식사를 나눴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할 수 있어진 아이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할머니는 당신의 첫 가족사진을 담은 액자를 한참 쓰다듬더니 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세워 두셨다. 나는 구름에 가려 조금은 아쉬운 밤하늘을 한참 바라보고, 집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로 만들어준 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훗날 여행에서 만난 시인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라는 개념을 설명해주셨다. 불교의 인간관으로 보시란 ‘남에게 내 것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며, “상(모양)에 머무르지 않는다.”라는 것은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독실한 불교도인 라다키들의 입장에서 그 가족은 이상적인 인간에 다다른 것이라. 속상해하지 말라.


작은 약속을 잊지 않고 돌아온 나와 베푼 것을 담아두지 않은 가족들 중에 누가 더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었다. 3년 전에도 그러하였듯이, 너무나 다른 그들의 삶을 다시 마주하는 것만으로 나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다시 돌아온 목적은 나를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 줄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었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이루었다. 이제 돌아서는 내 마음에는 미련이 없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 고속도로에는 운전자들의 과속을 방지하고자 위트 있는 표지석을 세워놓는다. ‘Better late than never.’ 수 없이 많이 봐왔던 표지판이지만 오늘 유난히 마음속에 다가왔다. 이번 여름 다른 여행지로 떠나 하누곰마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나를 상상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 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하누곰마를 향하는 굽이굽이 산길만큼. 분명 나는 내가 바라는 ‘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