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by 김준식

미래 교육!


며칠 전, 교육지원청에서 학교장 회의가 있었다. 교육장 인사말 중에 “우리 도에서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미래 교육을 실행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본다.


1. 미래 교육 플랫폼


미래 교육에는 의례히 첨단 기술, 컴퓨터, 인공지능, 3차원 가상세계(흔히 메타 버스라고 불리는) 4차 산업이라는 용어들이 개입된다. 우리가 platform이라고 이야기하는 말의 어원적 의미는 ‘실행 계획’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Plat-은 평평하다는 뜻의 ‘flat’으로 발전하고 –form은 그대로 굳어져서 아주 일반적으로 19세기 까지는 ‘기차역의 승강장’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최근에는 기초가 되는 틀 · 규격 · 표준이라는 의미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함의를 가진 단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의 경향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방법 등을 의미하는 platform은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어서 이제는 첨단 기술, 컴퓨터, 인공지능, 3차원 가상세계, 4차 산업 등의 단어들과 그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미래 교육 플랫폼이라는 말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인데 막상 그렇게 생각해 보니 미래 교육이 가지는 지향점을 분명하게 정하지 않고서는 역설적으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면 과연 ‘미래 교육의 실행’ 방향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아이들에게 보급된 태블릿과 컴퓨터를 이용한 상호학습 플랫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나 수단일 것인데 교육청은 그것을 방향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 교육은 그 기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계들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자아 성취 과정일 것인데 도구가 본질을 가리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실 미래는 단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현재의 연장선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현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바로 미래인 것이다. 뭔가 완전히 새로운, 뭔가 전혀 다른 세계가 갑자기 펼쳐지는 것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지금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 장면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꿈꾸고 아이들의 이야기와 교사의 이야기가 서로 소통되는 교실이 바로 미래 교실인 것이다. 몇 개의 기계적 장치와 몇 개의 플랫폼이 아이들을 미래로 이끌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동시에 그 지식이 왜 필요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나와 함께 있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는 교육이 바로 미래 교육이어야 한다.


2. 철학의 부재


현재 모든 교육적 패러다임은 미래 교육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빨아들이고 있다. 뭐든 미래라는 말만 앞에 놓으면 일단은 뭔가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미래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 정작 그 미래에 대한 분명한 방향도 정해 놓지 않았으면서.


사실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말이나 생각도 분명하게 옳거나 혹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오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미리 갖춰 놓아야 할 의무는 있다. 만약 생각 없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될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립해야 할 것이 바로 미래 교육에 대한 철학이다.


미래 교육을 위한, 혹은 미래 교육에 대한 철학은 어쩌면 교육 본질론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다. 이를테면 국가, 혹은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 육성으로 보는 관점과(흔히 말하는 4차 산업 시대를 대비한~) 개인의 발전과 품성 함양의 결과로 사회나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관점인데, 이 두 개의 관점 모두 일단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 그리고 품성을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키우자는 것은 동일하다.


위 두 가지 어떤 경우에라도 지식은 모든 것의 핵심이다. 이전 시대 그리고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강제적이고 무조건적인 암기를 통한 지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손가락만 움직여도 스마트 폰을 통해 거의 모든 지식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각난 지식을 연결 지울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Chat-GPT 가 아는 모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Chat-GPT를 이용할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다. Chat-GPT를 이용하는 지식이란 Chat-GPT 가 우리의 질문에 진술한 내용의 진위眞僞와 얼개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은 필요하다. 그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그 어려운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지식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뭔가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는 지극히 간명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다음은 소통 능력이다.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국립국어원)으로 되어 있다. 뜻이 서로 통하려면 타인의 의중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따라서 소통 능력의 바탕은 존중이다. 상대를 존중하려면 먼저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자아존중감은 ‘자만’과는 다르다. ‘자만’은 늘 상대라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자아존중감은 비교 대상 없는 엄밀한 자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기초로 한다. 자아 개념의 확립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시작되는 것이다.


60을 넘긴 나 자신도 여전히 지식에 목말라하고 있고 동시에 자아 개념 확립에 의심이 가는 것이 현실인데 초중고를 다니는 아이들이 그런 것을 갖추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적 상황은 지식에만 치우쳐 자아 개념의 정립은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든 교육 시스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위기와 상황을 만든 사회나 국가 모두가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미래를 준비하여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있다. 단순 지식 교육은 낡은 교육이 되어 교실 공간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교실 수업 장면에서 교과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그것으로 교실 수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 스스로 그 시간에 있었던 수업 내용을 내면화하지 않으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학생들에게는 아무 지식도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방법적인 회의에 빠지는 대목이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에게 지식을 내면화하게 할 것인가? 이 고민은 사실 인간 교육의 역사 이래 계속된 고민이기도 하다.


자아 존중감 교육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자아존중감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확대되고 그것이 소통으로 연결되려면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다만 지금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자아 존중감에 기초하지는 않지만 10~20년 전 아이들보다는 협업 능력은 뛰어나다. 아마도 사회적 분위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아이들의 협업 능력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협업 그룹 내부의 위계적 상황이라는 약점을 보게 된다. 대부분 이 위계적 상황은 상호 합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일방적 의견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가 개입하여 조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협업의 동력이 약해지기도 한다. (지난 3년 중학교 철학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 교육을 위해 현재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지식 교육과 소통 능력 함양을 철학적 기초로 삼아야 한다.(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음) 저 유명한 ‘scientia potentia est’, (knowledge is power, 아는 것이 힘이다.)’를 철칙으로 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알고 있어야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더불어 자아 개념 확립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끊임없이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한다. 중고 교육과정에서 매우 진지한 철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3. 작은 결론


미래 교육은 현재 모든 교육의 전망이자 동시에 결과가 될 것이다. 현재가 충분하다면 다가 올 미래가 그렇게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라는 상황은 누구도 겪어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늘 다양한 준비는 필요하다. 지금 하고 있는 교육을 넘어서는 교육이나 지금 교육과 다른 전혀 다른 방향의 교육이 미래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를 기초로 한, 현재의 상황이 반영된 교육이 미래 교육의 바탕이 될 것이며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지식을 기초로 하여 협업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실 풍경은 현재나 미래나 우리 모두가 바라는 소중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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