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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26. 2024

데카르트 인식론(2)

데카르트 인식론(2)


『제일철학에 대한 명상』: 초판의 제목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 증명됨.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in qua Dei existentia et animae immortalitas demonstratur』


1.     1 성찰, “De iis quae in dubium revocari possunt” (라틴어, 의심스러울 수 있는 것들)


-       유년 시절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내가 유년기부터 얼마나 많은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인정했는지, 그리고 그 후 그 위에 세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의심스러운 지, 따라서 내가 언젠가 학문에서 확고하고 불변하는 어떤 것을 세우길 원한다면, 일생에 한 번은 모든 것을 뿌리째 뒤집고 최초의 토대들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카르트가 성찰하는 분명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       꿈의 논증


“그러면 우리는 꿈꾸고 있다고 하자. 우리가 눈뜨고 있다는 것, 머리를 흔든다는 것, 손을 편다는 것은 참이 아니라고 하자.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손조차, 이러한 신체 전체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꿈꾸면서 보이는 것은 참된 사물들을 본뜨지 않고서는 꾸며질 수 없는 어떤 화상들과 같은 것임을, 그래서 적어도 눈, 머리, 손 그리고 신체 전체와 같은 일반적인 것들 만큼은 어떤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 참된 것으로 현존한다는 것을 분명히 시인해야 한다.” 꿈이 가지는 속성에 대한 데카르트의 문제제기는 뒤이어 나오는 모든 이야기의 기초가 되는 자신의 지각과 인식의 도구로서의 신체(책에서는 자주 기계라고 묘사되는)의 범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       사악한 천재의 논증


“나는 진리의 원천인 최선의 신이 아니라, 악의 있고 동시에 최고로 유능하고 교활한 어떤 악령이 나를 속이는 데 온 힘을 쏟았다고 가정할 것이다. 나는 하늘, 공기, 땅, 색, 형태, 소리 및 모든 외적인 것은 그가 나의 쉽게 믿는 마음에 덫을 놓은 꿈들의 속임수들일 뿐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손도, 눈도, 살도, 피도, 어떤 감각기관도 갖지 않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그릇되게 믿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자신의 현존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입장으로서 가장 바닥에서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의심하려는 데카르트의 태도를 보여준다. 

(제일철학에 대한 명상,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1997, 32~35쪽) 


데카르트는 각각의 의심들을 통해 선입견을 버리고 앞으로 다가올 논리들의 토대를 세우며 그 사이에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를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모든 사태를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스피노자 지음, 양진호 옮김, 2020, 책 세상, 15~16쪽)


2.     2 성찰, “De natura mentis humanae”(라틴어, 인간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       고정점 찾기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스스로 의심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고정되고 확실한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이 때문에 나는 이제, 내가 이 사유들에 이르기 전 그 당시에 나는 도대체 무엇이라고 믿었는지를 다시 한번 성찰할 것이다. 그런 다음, 제시된 근거들에 의해 조금이라도 약화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에서 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만이 정확하게 남을 것이다.” 즉 데카르트는 지금부터 현존하는 자신의 본성을 고찰한다. 이때 그는 의심하는 주체를 정하는 과정과 같이 ‘열거’, 분해’, ‘제거’의 방식을 적용한다. 모든 자료를 충분히 열거한 다음, 의심하고 있는 주체에 필연적으로 속해 있다고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주체로부터 제거하고,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 만을 남겨놓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사유하는 것. 이것은 무엇인가? 의심하는 것, 이해하는 것, 긍정하는 것, 부정하는 것,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또한 상상하는 것 그리고 감각하는 것이다.”


- 밀랍조각의 예


방금 벌집에서 꺼낸 밀랍이 있다고 가정하자. 밀랍은 아직 꿀맛을 잃지 않고, 꽃의 향기를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으며 색, 형체, 크기도 뚜렷하다. 단단하고, 쉽게 만져지고, 심지어 두드리면 소리까지 들린다. 즉 어떤 물체가 인식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보이는 모든 것이 현재 밀랍에 있다. 그런데 밀랍을 불에 가까이 가져가니 맛은 사라지고, 향기는 날아가고, 색은 변하고, 심지어 형체 없는 액체로 되어 점점 뜨거워지고 나중에는 거의 만질 수도 없다. 여전히 동일한 밀랍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밀랍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면 무엇이 여전히 밀랍으로 파악되게 하는가? 잠시 전 내가 감각으로 느꼈던 것 중에 현재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미각, 후각, 시각, 촉각 또는 청각으로 감지한 것은 모두 지금 바뀌었지만 밀랍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물체 자체는 본래 감각들에 의해 혹은 상상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에 의해서만 지각된다는 것이다. 촉각에 의해 만져지거나 시각에 의해 보여서가 아니라 지성에 의해 이해되어서만 우리에게 지각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나의 정신(지성)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지각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제일철학에 대한 명상,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1997, 38~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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