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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16. 2024

두 번째 어슬렁거림

두 번째 어슬렁거림


다시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을 읽었다. 나는 같은 책을 오래, 그리고 여러 번 읽는다. 내 방식이다. 방학을 앞둔 나는, 성적 처리는 거의 다 했으며 아이들 세특(교과세부특기사항)도 마무리 한 터라 다시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긴 것이다.   


저번에 독후기를 썼으니 이번엔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글 속에 감춰둔 부비트랩에 여지없이 넘어지고, 복받치고, 한 참 책을 덮기도 하고…… 그녀는 역시 예상을 넘고 동시에 매우 강력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 다시 열등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내가 사는 진주에서 이제 마지막 장맛비가 하루 종일 온다. 


3교시 수업(오늘은 1, 3, 4, 6 네 시간 수업이 들었다.),


학기말 시험을 본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어떤 의미도 없다. 자거나 잡담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선생이랍시고 이야기를 늘어놓을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정년이 다 된 나는, 실제로 지금 수업하는 아이들과는 다시는 수업을 같이 할 수 없다. 학기제로 바뀐 교육과정과 학교 사정이 맞물려 이 아이들은 오늘이 나와하는 마지막 수업이다. 그렇게 슬쩍 미끼를 던져본다. 마지막이라는 미끼 말이다. 어라 물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속에 에피소드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중 가장 해주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이야기다. 뉘른베르크… 아이들에게는 축구 이야기로 접근하는 것은 거의 옳다. FC 뉘른베르크는 분데스리가 2부 팀이며 만년 하위권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축구 이야기에 솔깃해한다. 나치 1차 전당대회 이야기도 곁들인다. 마침내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속 사형 집행인 이야기를 하고, 도서관에는 안타깝게 책이 없어 전자칠판의 힘을 빌려 책을 보여준다. 관심이 아주 쪼끔 생긴 듯하다.


번개가 치더니 빗줄기는 엄청 굵어졌다. 3교시, 아이들은 배가 고픈 모양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 매점이 본관 건물과 떨어져 있어 비 오는 날 아이들이 이용하기 쉽지 않다. 문득 한 아이가 질문한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무슨 뜻이에요?


얼씨구나 미끼를 덥석 문 것이다. #김미옥 선생 이야기를 일사천리로 하고 『미오기전』도 보여주며 침을 튀겼다. 38년 차 교사의 능력으로 꽤 장시간 아이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독서를 하든 말든 일단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이 대견하고 동시에 나의 능력도 칭찬할 만하다. 수업을 마치면서 이야기했다. 너희들을 만나 1학기 동안 참 행복했다. 목이 약간 쉬었다. 아이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선생 아닌가!


점심시간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선생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와 『미오기전』을 고등학생이 읽어도 되나요? 

서서 선생님은 아직 읽지 못하셨나 보다. 아이들이 책을 요구해서 사놓아도 되는 건지 여쭤보는 거란다. 10분 정도 다시 침을 튀기고 났더니 점심 먹은 것이 다 소화되었고,   


비는 다시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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