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이해해야 할 사실.
특별히『존재와 시간』을 위해......
1.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우리의 지식 체계를 뿌리부터 흔드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고 그 용어를 끝없이 증폭시켜 사용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근본 목적은 이미 존재하는 모든 철학적 방법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과 영역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하이데거의 견해를 수용하는 제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 책을 쓰면서 나 역시 줄곧 그 문제에 휘둘렸음을 인정한다.
2.
대부분의 철학적 용어 옆에 독일어를 나란히 쓴 것은, 하이데거가 쓴 용어 자체가 워낙 생소하고 특이하여 독일어가 한글로 번역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여 그 오해를 가능한 최소화하고, 가끔 독일어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으므로 독일어 사전을 찾아보기를 권유하는 마음으로 표시하였다. 하지만 독일어 사전에서도 그 뜻이 모호한 경우가 참 많다. 그런 경우에는 의역이나 추론이 필요하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이 책을 쓰면서 예견하고 동시에 그렇게 방향 잡았을지도 모른다.
초, 중, 고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이 나타날 때마다 여러 과목이 사라지고 생겨나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제2 외국어 교과의 쇠락이다. 현재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물론 일부 학교는 예외가 있다.) 제2 외국어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교과는 일어와 중국어 정도가 대부분이다. 이미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오래전에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사라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에 독일어를 나란히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엉뚱한 일일 수 있다. 이 책을 보는 누구라도 독일어를 마주하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제한된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날로 다양성을 잃고 오로지 몇몇 중요과목에서 점수를 잘 획득하여 입시에 성공하는, 그야말로 날카롭고 뾰족해지는 방법만을 터득하는 것이 분명 좋은 교육일 리 없다. 넓게 그리고 깊게 알고 풍부해지는 교육을 막아서는 입시 중독 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다.
3.
이 책은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 몇 개의 책과 독일어를 개인적으로 번역한 부분을 참고하여 썼다. 그 과정에서 독일어 원전이 번역되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독일어 원전 자체도 매우 매우 난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문장에 주어 역할을 하는 단어를 여러 개 사용하는 것(물론 주어는 하나지만)은 자주 있고(문장이 너무 길어진다.) 동사나 격 변화(독일어는 격 변화가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단절되는 의식의 흐름처럼 앞 문단과 따라오는 문단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물론 나의 능력의 한계일 가능성이 높다.) 하기야 독일 사람들조차도 “이 책(『존재와 시간』)은 언제 독일어로 번역되냐?”라고 이야기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난해하고 동시에 변화무쌍한 내용이다. 따라서 우리말로 옮겨진 이야기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인도 유럽 어족인 독일어가 한국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독특한 오류를 넘어서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오류를 겸허하게 수용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넘어서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세계를 보는 다양한 철학적 시선이,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더욱 중요해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세계 안에서 실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