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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n 22. 2020

현대차는 어떻게 일본을 이기고 베트남의 승자가 되었을까

현대자동차는 2019년 베트남에서 가장 잘 팔린 자동차 브랜드다. 작년 한해 동안 7만9568대를 팔며 도요타(7만9328대)를 근소하게 앞섰다. 기아자동차는 3만103대로 베트남 내 판매량 7위를 기록했다. 



아세안(ASEAN)은 전통적으로 일본차가 강세인 시장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960년대부터 아세안 국가에 진출해 인지도를 탄탄하게 쌓았다. 지금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다니는 자동차를 살펴보면 5대중 4대는 일본차다. 베트남은 조금 덜 하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일본산 자동차였다. 이 시장에 현대자동차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베트남 자동차 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다. 2017년 연간 판매량 2만6881대를 달성한 데 이어 2년 뒤인 2019년에는 실적을 무려 3배나 높이며 베트남 최대의 자동차 브랜드로 우뚝 섰다. 


이 그림 같은 성공신화는 그냥 저절로 달성된 게 아니다. ‘사드 보복’의 여파로 중국시장에서 호되게 맞은 현대차는 판로 다각화를 위해 아세안 시장 공략을 준비했다.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했다. 때로는 ‘대세’에 역행하는 결정까지 내리며 버티고 준비한 결과 오늘 같은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역내 관세 철폐로 승기를 잡은 일본과 태국


아세안 10개 국은 지난 2009년 상품교역협정(ATIGA : ASEAN Trade in Goods Agreement)을 체결했다. 협정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협정에 참가한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무역에는 관세를 붙지 않는다. 협정은 순차적으로 효력을 발휘했고 2018년부터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무역 관세는 전면 철폐됐다.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도 이때 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아세안 국가들 중 완성차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자동차 산업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한다. 태국의 타이렁이나 베라,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이나 페루도아 같은 자국 브랜드들이 있었지만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베트남도 2017년부터 완성차업체 빈패스트를 설립해 제작을 시작했지만 베트남 자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 내에서 제대로 자리잡은 자동차 산업은 없었다는 이유로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자동차 관세 철폐가 의미가 없다고 보면 곤란하다. 태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영국보다도 앞선다. 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호주, 일본, 러시아 등 선진국에 수출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에도 상당수 수출되고 있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라에서 이렇게 수출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OEM에 있다. 태국이 생산하는 자동차는 대부분 일본산 브랜드의 위탁생산이다. 부품의 상당수도 일본에서 공수해온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휴대폰을 생산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산된 자동차는 ‘일본산’이 아니라 ‘태국산’이 된다. 따라서 태국에서 생산된 일본 자동차들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아세안 국가로 수출될 때에는 ‘역내 생산 자동차’로 간주되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실제로 베트남에서의 수입 자동차 판매량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쭉 7만대 수준을 유지하다가 관세철폐가 본격적으로 작용된 2019년부터 두배에 가까운 13만2872대로 올랐다. 이중 절반이 넘는 53.5%는 태국산 차량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세안 역내 관세 철폐는 일본산 자동차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되었다. 자국 브랜드 자동차가 마땅히 없었던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태국에서 제조된 일본산 자동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과 손잡은 현대, 대항마로 떠오르다


현대차는 2009년에 베트남에 진출했다. 그 당시 베트남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 열풍이 불고 있었다.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타국에서 완성차(CBU : Completely Build Up)를 수입하기 위해 애썼다. 현대차도 마찬가지였다. 2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베트남 탄콩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탄콩에 수입 및 현지 유통을 맡기는 방식으로 판매를 이어갔다.

그러던 현대차가 갑자기 대세를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 완성차 수출대신 현지 직접 생산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대차는 2011년 닌빈성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고 현대 자동차의 부품 일체를 베트남으로 보내 현지에서는 최종 조립만 하는 이른바 CKD(Completely Knock Down) 생산을 시작했다. 


시장은 현대의 선택을 의아하게 보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닌빈 공장에서 최초로 양산을 시작한 모델은 보급형 모델이나 이미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모델이 아닌 중급 모델로 분류되는 SUV 차량 ‘산타페’였다.


그러나 시장의 의구심과는 다르게 현대차에게는 분명한 전략이 있었다. 보급형 모델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이미 잘 팔리는 모델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대신 현대의 ‘품질’을 먼저 보여주길 원했다. ‘안전하고 품질이 좋은 일본차’라는 이미지에 대항하기 위해서 현대차도 좋은 차를 내놔야 할 필요가 있었다. 


2017년은 현대차에게 특히 어려운 한 해였다. 사드 배치로 비화된 한국과 중국의 외교 갈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은 무역으로 보복조치를 취했고 현지인들은 현대차 불매운동을 벌였다. 베이징 1~3공장과 창저우 4공장 등 중국 현지의 4개 공장이 모두 멈췄다. 판매량이 현저히 줄어 현지 부품 업체에 대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산 중단까지 이르렀다. 이 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9% 줄어든 4조 5747억을 기록했다. 


이 즈음 현대차는 베트남으로 눈을 돌린다. 2016년 닌빈성에 조립공장을 확대한 데 이어 꽝남성에 상용차 제작공장도 세웠다. 공장 확장에 드는 돈 900억원은 탄콩그룹과 50:50으로 공동투자하며 합작 법인을 세웠다. 그리고 2017년부터 Grand i10(주로 인도 생산기지에서 수입되었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열악한 도로사정, 배기율이 높은 차량에 부과되는 높은 세율을 고려할 때 소형차인 Grand i10은 베트남 사람들의 수요에 딱 맞는 제품이었다. 


현대차가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장 증설로 인한 출하량 증가, 산타페부터 이어진 품질에 대한 시장의 신뢰, 현지 그룹과의 합작 법인 설립 및 공동생산 등 여러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시장 점유율이 점점 높아졌다. 


소비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호치민에 거주하고 있는 Hung씨는 Veyond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일본차가 한국차보다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아 오래 잘 쓸 수 있고 중고 가격 유지가 잘 되는 편이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최근 한국 차량이 디자인도 더 예쁘고 옵션도 많은 데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유지비 또한 덜 들기 때문에 한국차에 대한 선호가 늘었다”고 말했다. DIDO씨는 “현대차는 젊은 세대를 주요 소비층으로 여기는 것 같다. 디자인도 젊은 데다가 피드백도 빠르다. 좋은 서비스를 보여주는 미래 지향적인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탄탄한 준비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2018년에 일본차의 대명사인 도요타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도요타를 넘어 베트남 최대 차량 판매사로 등극했다. 베트남 경제매체 VNeconomy는 “다른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차량 직수입에 매진했을 때 현대차는 현지 생산으로 전환했고 결국 그 결정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에서 아세안 생산기지의 기틀을 마련한 현대차


2018년,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자동차 관세가 전면 폐지되자 베트남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자국의 자동차산업이 아직 기반을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수입 자동차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게 된다면 베트남의 자동차 산업은 뿌리를 내릴 기회조차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베트남이 내세운 정책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외국산 자동차의 수입 요건을 ‘다른 방식’으로 강화했다. 일정 규모를 갖추지 못한 자동차 수입 업체에게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의 규제였다. 


두번째로는 현대탄콩과 투룽하이(THACO) 같은 베트남 내 자동차 조립 회사들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반조립(CKD) 방식으로 생산되는 자동차는 ‘국산’으로 간주되지만 그 부품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품에는 관세가 붙는다. 따라서 반조립 차량이라 하더라도 관세를 피할 수는 없다. 베트남 정부는 2017년 11월부터 한시적으로 자동차 부품 관세에 특혜를 부여했다. 베트남에서 일정 수 이상의 반조립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에 한해, 베트남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부품에 대해서는 부품 수입관세를 2022년까지 면제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현대탄콩은 이 조건을 충분히 만족했다. 


2017년부터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한 현대탄콩은 베트남 정부의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 정책으로 인해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베트남 정부도 현대차에 기대를 걸었다. 베트남 당국은 현대차에 부품 현지화율을 40%까지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40%는 꼭 베트남에게만 중요한 수치는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자동차 수입에는 관세가 붙지 않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40% 이상을 아세안 국가들에서 만든 것으로 채워야 한다. 즉 현대탄콩이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을 베트남 산이나 다른 아세안 국가들의 제품으로 채우게 되면 그 차량들을 다른 아세안 국가들로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게 된다. 베트남이 현대차의 아세안 생산 기지가 되는 것이다. 



아직 갈길이 먼 ‘현지화’의 길


그러나 현대탄콩의 부품 현지화율 목표는 단기간에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당국은 2010년까지 부품 현지화율 목표를 6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이미 달성에 실패한 상태다. 현재까지도 베트남 자동차 산업의 부품 현지화율은 10~20%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마저도 거울, 유리, 차량 의자, 배선, 배터리, 튜브, 플라스틱재 제품 등 제작이 간단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이나 용접이나 도색 공정 같은 단순 공정의 아웃소싱 위주다. 현대나 다른 업체들이 현지에서 조달하고 싶어도 현지 업체가 없어서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가 현대차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2017년, 베트남의 최대 민영기업인 빈그룹은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술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자동차 제조는 순탄치 않았다. 차량 디자인부터 핵심 부품까지 거의 대부분의 제조 과정을 타국 기술에 의존해야 했다. 부품을 죄다 외국에서 들여오니 가격이 비쌌다. 거기에 원인 모를 고장이 잦아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속속들이 전파되면서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호치민 거주자인 Hung씨는 “같은 브랜드인데도 베트남에서 조립된 차는 이상하게도 외제차처럼 든든하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며 “베트남의 자동차 산업이 잘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렇게 베트남 자동차 기술이 낮은 데에는 현지 수요의 문제도 있었다. 다른 아세안 국가들에 비해 베트남의 자동차 시장은 초라했다. 아세안자동차연맹(AAF)의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시장규모는 인구 2억 5천만 명의 인도네시아가 106만대로 1위이고 태국은 77만대로 2위, 말레이시아는 58만대로 3위이다. 베트남은 27만대로 인도네시아에 25%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량으로 따지면 더 크게 차이가 난다. 아세안의 자동차 생산 허브 태국은 연간 194만대를 생산하는 반면 베트남은 24만대에 그친다. 태국의 12.3%에 불과하다. 이렇게 시장 저변이 크게 차이가 나다 보니 베트남의 자동차 주변 산업이 발전할 기회는 낮았고 기술력은 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국 자동차 업체들도 태국에 거점을 두고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태국은 외국 자동차의 위탁생산을 통해 차근차근 기술력을 올려갔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현대차에겐 기회가 되었다. 일본은 태국 시장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베트남에 관심을 덜 두었다. 현대탄콩이 승용차 생산라인 증설하며 시장 공략에 집중했을 때 일본 차량업체는 베트남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일본 업체들은 베트남에서 생산 차종을 변경하거나 모델별로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 사이 현대탄콩은 베트남 내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판매량 1위에 올라섰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시장으로서의 베트남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베트남의 자동차 판매량은 매년 3~40%씩 증가했다. 고속 성장을 하고 있으며 중산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베트남에서의 자동차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자동차산업협회 Toru Kinoshita 회장은 “베트남의 자동차 보유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베트남 경제의 고성장에 따라 자동차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현대차와 베트남은 지금 공생의 관계에 있다. 현대차는 어떻게든 베트남의 생산능력을 끌어올려 생산기지를 구축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아세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베트남도 현대차 납품 업체를 늘려가고 기술을 이전 받으며 자체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한 뒤 국민차 생산이 가능한 단계까지 도약해야 한다. 현대탄콩은 2019년, 베트남 판매 1위 등극으로 그 첫발을 잘 뗐다. 이제는 그 힘을 베트남을 넘어 아세안 전역에 보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 이 글은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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