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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l 31. 2020

코로나19 모범국 '베트남'의 숨겨진 고민

유례없는 전염병에 전 세계가 마비됐다. 14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1323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또한 57만명을 웃돌았다. 치사율은 4.35%다. 이렇게 전염력이 높으면서도, 현대 보건체계를 뚫고 높은 치사율을 기록한 바이러스는 없었다. 대부분의 항공편은 중단되었으며 여행이동은 물론, 비즈니스를 위한 이동도 중단되었다. 집밖으로 나서길 꺼리는 사람들 탓에 소비도 줄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공장과 사업장도 문을 닫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사태가 도대체 언제 종식될 지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나라가 비슷한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은 347만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13만명 가까이 사망했다. 이 바이러스의 발원 국가였던 중국은 초기 확산세를 어느정도 수습하고 8만여명의 확진자와 4천여명의 사망자로 방어 중이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있다. 한국도 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월, 31번 환자로부터 확산된 ‘신천지발 집단감염’, 5월 초부터 확산된 ‘이태원발 집단감염’ 등 여러 차례의 지역감염을 겪었던 한국이지만 아직까지 확진자는 1만3천여명, 사망자는 289명, 치사율은 2.14%로 국가 규모와 지역감염을 크게 겪었던 것에 비해서는 비교적 잘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평가가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월 바이러스로부터 큰 타격을 받았지만 광범위한 확진자 검사와 추적으로 대확산 국면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위 그림을 보면 흥미로운 게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실제로 폴리티코로부터 ‘가장 잘 대응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폴리티코는 “인구가 1억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확진자는 300명에 불과하며 사망자는 0명”이라며 “2020년 경제 성과도 전 세계 중 가장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위 그래프의 가로축은 ‘공중보건 성과’, 세로축은 ‘경제적 성과’와 관련된 부분이다. 세로축인 경제적 성과는 2020년 경제성장 예측치를 기준으로 배치했다. 한국은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다. 경제규모도 베트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래서 경제성장률만을 놓고 베트남과 단순 비교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공중보건 성과는 병렬적으로 나열이 가능한 수치다. 베트남은 현재 확진자가 372명에 불과하며 사망자는 없다. 확진자 검사를 누락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도 아니다. 확진 1건당 검사 수로 따지면 한국은 57.8명으로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베트남은 이보다 17배가량 많은 996.7건에 이른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어떻게 ‘방역 선진국’으로 알려진 한국보다도 더 나은 방역 성과를 이루어냈을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베트남 정부 


지난 5월 18일, 증가세를 어느정도 막아낸 당시 베트남의 확진자 수는 324명이었다. 그로부터 두달 뒤인 현재, 베트남의 누적 확진자는 373명, 약 50여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베트남은 중국과 경계를 맞닿고 있는 국가다. 한국만큼 방역이 어려웠던 나라다.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큰 틀에서 베트남의 조치는 한국의 조치와 다르지 않다. 확진자를 선제적으로 검사하고 3단계에 걸쳐 접촉자를 추적했다. 의심 증상이 있으면 바로 2주간 격리시키고 개학도 늦췄다. 


한국보다 더 강력한 조치들도 있었다. 확진자는 물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거주하는 아파트도 전체를 봉쇄하고(코호트 격리) 사람이 밀집할만한 곳은 모두 영업을 중단시켰다. 확진자 증가세가 한창이던 지난 3월에는 일시적으로 대중교통 운행을 중지하고 전국민에게 외출 자제를 시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한국을 포함한 외국과의 항공편을 모두 끊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베트남 정부가 한국보다 권위적인, 공산주의 정권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성향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호치민에서 거주하고 있는 A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조심성이 많고 위험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전부터 이미 지방 사람들은 호치민 등 감염이 확인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베트남 방역의 또 하나의 비결, 섬유 산업


베트남은 원래 마스크 수요가 많던 나라다.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 중인 나라이지만 환경에 대한준비는 아직 덜 되었기 때문에 대기오염이 매우 심하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이용해 이동한다. 심한 대기오염 속에서 맨 얼굴로 뿌연 공기속을 헤치고 다니기는 고통스럽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마스크 공급난이 펼쳐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스크 가격이 4~5배로 치솟았고, 오른 가격과는 별개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는 나았다. 자체적으로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마스크 생산 시스템이 없던 나라들은 어지간한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었다. 


베트남 역시 자체적으로 마스크 생산이 가능한 나라였다. 전세계 180개국에 의류를 수출하는 의류산업 강국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의류 산업이 침체를 맞자 베트남은 자국의 의류생산시설을 마스크 생산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꼭 KF94나 KF80같은 국제기준을 맞춘 마스크만을 생산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말을 차단하기에는 면마스크와 의료용 마스크도 충분한 기능을 했다. 


전세계적으로 마스크 품귀가 심해지고, 비말 차단을 위해서는 꼭 국제규격을 맞춘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자 베트남은 포화상태에 다다른 자국 생산 마스크를 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약 3270만장을 수출했으며 그밖에도 한국, 독일, 미국에도 1000만 개가 넘는 마스크를 판매했다.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 내 마스크 생산 기업 중 상당수가 한국 기업인 점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섬유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랜드나 영원무역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다른 나라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기존 생산라인을 돌려 마스크를 생산했다. 


 

봉쇄의 한계, 딜레마에 봉착한 베트남의 개방경제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 보자면 베트남은 코로나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베트남의 경제의 상당수가 외국인의 투자, 무역 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무역의존도(수출액+수입액/GDP)가 170%를 넘는 나라다.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약 70% 가까이로 매우 높은 편인데 베트남이 교역에 의존하는 정도는 한국의 2배를 넘어선다. 그런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또다른 문제가 있다. 베트남의 무역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FDI(외국인 직접 투자 기업)라는 점이다.


2018년 기준 베트남 내 FDI 기업의 수출액은 1,718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에서 70%를 차지했다. 베트남은 외국의 자본을 유치해 생산기지를 만든 뒤 이를 다시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그런데 코로나 국면에 진입하면서 외국인 투자유치, 수출 모두에 제한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베트남 기획투자부는 “올해 들어 베트남에 등록한 외국인 직·간접 투자 규모는 156억7천만달러(약 18조7천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1%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투자만 준 것이 아니다. 코로나가 본격화된 4월부터 베트남의 수출입액은 전월 대비 각각 27.1%(수출), 16.4%(수입) 감소했다. 

즉 베트남은 강력한 봉쇄정책과 일시적인 경제활동 중단으로 코로나는 효과적으로 막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았던 베트남 경제의 특성 탓에 그만큼 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목적으로도 이동이 힘들기 때문에 코로나 국면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외국인 투자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베트남 경제에 악영향만 끼친다고 볼 수는 없다.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었다. 이번 팬더믹, 그리고 미중간의 수출규제의 여파로 중국 리스크가 커지면서 제조기업들은 ‘생산기지 다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중국에 몰린 공장들이 한순간에 정지될 경우 생산 자체가 멈춰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조기업들은 생산기지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대상으로 베트남이 지목되고 있다. 


실제 LG는 베트남에서 생활가전 및 전자제품 가공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Microsoft, Apple Sharp등이 베트남에 생산시설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응우엔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베트남은 업종별 선도기업, 첨단기술기업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FDI 유치 진흥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베트남의 자산운용사인 비나 캐피탈의 돈 람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로 이어졌으며, WTO(세계무역기구)는 이번 사태로 인해 전세계의 FDI 흐름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일부 국가들에서 제조업을 자국으로 복귀시키려는 리쇼어링(Reshoring)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으나,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제조공장 리쇼어링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베트남으로 FDI가 더 유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 글은 베트남 전문 매체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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