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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l 31. 2020

핫한 베트남,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 투자하고 있을까?

성장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자본은 국경을 초월해 움직인다. 유통기업 쿠팡이 경쟁사들을 하나씩 압도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었다. 이는 꼭 개별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개발이 필요한 국가에게도 외국 자본의 유치는 필수적이다. 


신흥국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법인세나 투자특례 등 각종 조건을 내걸며 외국인들을 유인하고 있다. 아직 자체적인 산업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베트남이기에 해외 투자는 더욱 절실하다. 베트남은 투자 유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전체 기업 중 해외 기업의 숫자는 전체의 3%가 되지 않지만 전체 노동자 중 30%정도가 해외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발군이다. 지난 3년간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약 8조원이 넘는다. 한국이 베트남과 수교를 맺을 당시인 1992년만 해도 한 해 투자액은 200억원에 불과했다. 한국이 대 베트남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은 베트남 의회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회사법을 개정한 2005년부터다. 2007년에는 투자금액이 1조원을 돌파했으며 금융위기가 찾아온 2009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본격적으로 옮기기 시작한 2014년부터는 그 규모가 더 커졌다. 2018년에 투자액은 무려 3조 7634억원을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을 이은 전체 3위 규모다. 직접 투자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35%나 된다. 


베트남과 한국은 여러 면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파트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부자재와 최종재를 생산하고 전 세계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소비시장 확대와 저렴한 노동력 확보가 절실하다. 베트남은 노동자의 숙련도나 산업 인프라 구축, 기술 발전 수준이 낮은 상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베트남 노동자를 고용할 뿐만 아니라 베트남 하도급 업체를 키워가며 그들의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색깔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삼성의 휴대폰 공장이나 ‘Made in Vietnam’산 의류 브랜드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 목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저임금 활용 목적’이 주를 이뤘지만 지난 3년간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의 75%는 ‘현지 시장 진출’하기 위해 베트남에 투자한다고 답했다.


한국 기업의 대 베트남 투자 동향을 보면 베트남의 어떤 분야가 상승가도에 있으며 또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지난 20년 간의 투자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 베트남 투자 주력 분야 4개를 꼽아보았다. 



1. 섬유/의류


섬유/의류 분야는 경공업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으로 산업이다. 노동 집약적인 분야이며 높은 숙련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이 분야에 먼저 뛰어든다. 한국도 한때는 섬유 같은 경공업을 중심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뒤 중공업과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했다. 지금의 베트남도 섬유, 의류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약 7,000개 기업이 275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며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산 의류는 전세계 180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특히 전체 수출액의 80% 이상을 미국·유럽·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의류 상당수가 베트남 자체 브랜드가 아닌 외국 기업의 제품이다. 베트남 섬유·의류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섬유·의류제품 수출량 중 60% 이상을 외국 기업이 차지했다. 

이 외국 기업들은 최종 생산만 베트남에서 할 뿐 원부자재는 각각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오고 있으며 디자인과 상품개발, 마케팅과 유통은 별도로 진행한다. 즉 베트남은 ‘생산기지’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대만과 함께 베트남 섬유/의류 산업에 크게 투자하고 있는 나라다. 약 500여개의 한국 의류/섬유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베트남 전체 섬유의류기업의 40%가 한국 기업이다. 효성·한세·한솔·신성·풍인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베트남을 생산거점으로 삼아 전세계 시장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투자 금액을 봐도 적지 않다. 지난 3년간을 기준으로 2017년에 3100억(전체 투자액 대비 13%), 2018년 2780억(전체 투자액 대비 7.3%), 2019년에는 3분기까지 1553억 (전체 투자액 대비 5.6%)을 투자했다. 


최근 베트남 정부는 섬유, 신발 산업의 부품·소재 기업에 대한 육성방안을 추진 계획 중이다. 과도한 주문형 생산체제를 탈피하기 위해 R&D를 늘리고 국내외 마케팅 강화를 통해 베트남 내에서 안정적 공급체제를 수립해 글로벌 시장에 직접 부자재를 납품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최종 생산 뿐 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원단 생산 등도 직접 해보겠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당분간 한국 섬유/의류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 에너지


의외로 몰랐던 사람들도 많겠지만 베트남은 산유국이다. 원유는 연간 약 1300~1400만톤을 생산하며(세계 31위 수준) 천연가스도 연간 100억㎥ 가량을 생산(세계 42위 수준)한다. 2017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원유 순수출국이었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원유량이 자국에서 소비하기엔 충분한 양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베트남의 에너지 소비 증가로 2018년부터 수입량이 수출량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가운데 1차 에너지(primary energy) 소비 증가율이 가장 높다.


베트남은 석유 채굴과 유전 발견을 외국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97년 천연가스가 매장된 11-2 광구를 발견한 데 이어 2005년에는 약 4천만 배럴 가량이 매장된 15-2 유전을 발견했다. 11-2 광구 가스전 채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5년부터 한국의 대 베트남 에너지 분야 투자는 꾸준히 연 1000억 이상을 기록했다. 2007년에는 3000억 가량의 투자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유가가 떨어지고 채산성이 줄어들면서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3년 간의 투자액을 보면 2017년 763억, 2018년 656억, 2019년(~3분기) 585억으로 투자 금액이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5월 SK이노베이션이 15-1/05광구에서 새로운 유전했지만 아직 그 매장 규모 등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 한국의 베트남 에너지 부분 투자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 에너지 유통이다. 지난 2016년 효성그룹은 베트남에 1조 4천억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베트남에서 채굴된 LPG를 저장한 뒤 이를 베트남과 주변 아세안 국가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약 24만톤 규모의 저장시설은 2020년 말쯤 완공될 예정이다. 

GS칼텍스도 지난 10월 베트남 전역에 약 5,200개의 주유소를 보유하고 있는 국영기업 페트로리멕스(Petrolimex Saigon)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에너지 유통 시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 오일뱅크는 아세안으로의 석유 정제품 유통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베트남으로부터 약 20만 배럴 규모의 석유제품 저장기지를 확보했다. 



3. 전자


한국의 대 베트남 투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 ‘전자’ 분야다.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는 제조업 분야 중 65%가 전자다. 삼성, LG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제품 제조 기업들이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 중 삼성의 위력은 압도적이다. 베트남 생산법인인 삼성전자 타이응웬의 매출액은 베트남 전 기업 중 1위(약 646억 달러)인데 2위인 베트남전력공사(EVN)의 매출액(146억달러)과 무려 네배 가까이 차이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박닌성에 휴대폰 공장을 세우며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대 베트남 전자산업 투자액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삼성은 디스플레이, SDI, 전기 등 여러 계열사의 생산설비를 베트남으로 옮겼다. 그 해 한국의 대 베트남 전자산업 투자액은 약 4000억원을 기록하며 에너지 부분 투자액(약 2789억원)을 제치고 제1 투자분야로 올라섰다. 그 뒤로 전자분야는 줄곳 한국의 대 베트남 최대 투자분야였다. 지난 2017년엔 4708억, 2018년엔 6913억원 2019년엔 3분기까지에만 벌써 6854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전자회사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LG도 베트남에 진출한지 오래다. 지난 95년 흥이옌에 공장을 세우며 TV와 휴대폰 생산을 시작한 LG는 2014년엔 하이퐁에 공장을 세우며 다른 가전제품의 생산도 베트남에서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엔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하이퐁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제조 대기업의 생산기전 이전은 협력사들과 하도급업체들의 이전도 수반한다. 지난 3년간 베트남에 신설된 전자분야 법인 중 대기업은 46개였지만 중소기업은 120개에 달했다. 



4. 금융


금융 분야는 앞서 언급한 전자나 섬유, 에너지 분야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진 분야는 아니다. 신한은행이 2009년 국내 금융기업 최초로 현지 법인을 세웠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금융 분야의 투자 금액은 미미(약 80억원)한 수준이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베트남의 금융산업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70년대 공산화의 과정에서 사유재산을 몰수당한 경험이 있다. 자기 주머니 밖에 있는 돈은 사라질 수 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은행도 문제가 많았다. 계좌에서 돈이 사라지거나 은행 직원이 돈을 빼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은행을 불신했고 금고나 항아리에 돈을 보관했다. 노인들과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다들 스마트폰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는 나라이며 인터넷 보급률도 60%가까이나 되는 나라이지만 정작 계좌를 갖고 있는 국민은 전체의 1/3밖에 되지 않았다. 

금융 기반이 없다보니 사회 여러곳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당포가 고리대금 업체로 둔갑하기도 했고 전자상거래 결제 수단으로 카드나 간편결제가 아닌 현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 통제하기도 힘들었으며 과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트남 정부는 2016년, ‘현금 없는 사회’를 선포했다. 2020년까지 현금결제 비중을 전체 대비 10% 이하로 낮추고, 은행 계좌를 보유한 인구비중을 현재 30%대에서 70%대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베트남의 낙후된 금융산업은 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개척할 분야가 넓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신한은행을 필두로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 9개 은행사들이 베트남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기 시작했다. 은행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화생명, 롯데카드, 현대카드 등 비은행 금융기업들도 베트남 시장 공략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 금융 기업의 베트남 투자액은 베트남 정부가 ‘현금 없는 사회’를 선포한 2016년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에는 2340억, 2017년에는 1477억, 2018년에는 3482억, 2019년에는 3분기까지의 기록이 벌써 3532억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 금융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주로 소매금융에 집중돼 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간편결제 업계 1위인 ‘모모’와 제휴해 신용대출을 접수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페이’ 선불카드 서비스를 추가로 내놨다. 현대카드는 신용카드와 할부금융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카드는 최근 베트남 중앙은행으로부터 테크콤 파이낸스 지분 100% 인수를 승인받으면서, 국내 카드사 중 처음으로 베트남 신용카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 글은 베트남 전문 매거진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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