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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Oct 21. 2020

코로나19와 차이나 리스크로 야기된 ‘가치사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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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차이나 리스크로 야기된 ‘가치사슬’의 위기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위치한 화난 시장을 중심으로 원인 모를 폐렴환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이듬해 1월경, 중국 정부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며, 우한시를 봉쇄했다. 그리고 다시 몇 달 뒤, 전 세계는 유례없는 신종 바이러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어마어마했다. 7일 현재(발행 날짜에 맞추어 업데이트 필요) 전세계 1880만명의 사람들이 감염되었으며 그중 70만명이 사망했다. 세계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일제히 멈추었다. 감염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일터로 나가지 못하고 꼼짝 없이 집에 갇혔다. 비행기는 멈춰 섰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물건을 실어 나르던 배들도 갈 곳을 잃었다. 


2000년대 초, 자유무역이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는 물건을 생산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역할을 분담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비용이 저렴한 신흥국에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최종 생산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들은 선진국의 숙련된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생산에 들어가는 원자재의 가공이나 기계류도 보통은 선진국이 제작했다. 이를 일컬어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 이라고 불렀다. 


글로벌 가치 사슬을 유지시키는 것은 교역 및 분업이다. 삼성 전자의 휴대폰을 예로 들자면 유럽에서 사들인 기계를 통해 설비를 구축한다. 여기에 일본산 소재 등을 활용해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배터리 같은 핵심 부품을 만들고 또 일부 핵심 부품들은 미국 등의 나라에서 수입한다. 이렇게 모인 핵심 부품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신흥국의 공장에서 조립된다. 그리고 다시 전세계로 팔려나간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교역이 멈추었다. 코로나 19로 공장들이 문을 닫자, 부품을 공수해오지 못했고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각 국이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운송에도 문제가 생겼다. 방역에 비상이 걸린 각 나라들은 쉽게 다른 나라의 비행기와 배를 입국시키지 못했다. 



안정된 교역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 수입했던 나라들에겐 악재가 연이어 터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분업 환경이 해체되지 않겠냐는 추측을 조심스레 내놨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판데믹의 등장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해체가 가능할까? 


그러나 여전히 많은 통상 전문가들은 GVC의 해체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조기업들이 왜 생산기지를 타국으로 이전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코노미 조선을 통해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더 싼 인건비를 찾아 베트남·라오스·인도네시아 등으로 떠나지 절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기업들이 해외로 떠난 이유는 원가를 절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나, 관세 같은 국가별 장벽을 낮추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혹은 해당 지역에 거점을 두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생산 기지를 옮겼던 실익이 분명했던 만큼 이 시스템을 철회하기 위해서는 생산기지를 외국에 둠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커지거나 반대로 생산기지를 국내에 복귀했을 때의 이득이 해외에 두었을 때 보다 더 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두가지 모두 해당되기 힘들다. 한국은 국내 총생산에서 무역의 비중이 매우 큰 나라다. 공장을 국내로 돌림으로써 인건비가 높아지고 관세 혜택 등을 받지 못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에서 이기기 힘들게 되고 그렇다면 국내 총생산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과 같이 교역 장벽을 높게 쌓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만큼 충분한 내수 시장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코노미 조선에서 “현재 세계 통상 환경은 ‘자국 우선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내수 시장이 큰 국가는 역내 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을 완벽하게 구성할 것이다. 한국 기업이 현지에 있으면 공급망에 편입되기 쉽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면 어렵다. 관세 장벽이 생기면서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유턴 기업과 기존 기업이 조그마한 내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왜 떠안는가"라고 되물었다. 


파이낸셜타임즈(FT)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틴 울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지난 22일  컬럼비아대 글로벌 센터 주최로 열린 ‘세계화의 미래-서플라이 체인에 판데믹이 미친 영향’ 화상 토론회에서 현 상황에 대해 “앞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베트남과 멕시코 같은 대안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서도 “모두 집으로 가자는 건 기본적으로 미국에 적합한 게임이며 세계의 어느 나라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외치는 ‘자국 우선주의’는 미국에서는 통할 수 있을까?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5월 “리스크 헤지(Hedge)를 위한 공급망 체계 다각화에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다”면서도 “문제는 이런 체계를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 여부”라며 “특정 나라, 특히 중국에 모두 의존하지 말고 여러 나라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공급망 구축은 비용 증가를 부른다”고 설명했다. 


막상 비용을 감수하고 공급처 다변화를 꾀한다고 해도 그 방법은 쉽지 않다. 자동차 부품 제작사인 유니파트의 CEO 존 닐은 “자동차업체에 납품할 연료탱크 공급 업체를 새로 발굴해 규격을 확정하고 품질을 확인하는 데까지 짧으면 몇달, 길면 몇년도 걸린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반도체 생산 의존도가 높은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또한 쉽지 않다. 반도체 생산기지는 그 구축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 등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에 파운드리를 건설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보조금을 쥐어가며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비용도 크게 드는 데다가 자칫하면 무역 분쟁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의 무모한 시도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보호무역주의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경제 문법도 모르는 트럼프의 '무역 문맹'이 자충수가 됐다"고 혹평을 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감세 정책 약발이 떨어지게 되면 무역 정책의 부작용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체’ 대신 다른 답을 찾고 있는 세계


코로나19 이전에도 각 국 기업들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생산 방식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다. 대표적인 IT 제조업 회사인 애플은 지난해 6월부터 중국 공장에서 생산했던 자사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의 생산 공장을 베트남에도 추가 확보했다. 또 인도 정부와 향후 5년간 아이폰 생산량의 20%를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는 것을 논의하기도 했다. 


일본의 유명 게임기 제조 회사 닌텐도도 미국 수출용 제품의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PC 제조업체인 HP와 델 역시 중국에서 생산하던 노트북 물량의 30%를 아세안 국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델은 이미 타이완과 베트남, 필리핀에서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은 단순히 ‘회사 하나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조 대기업과 그 대기업 주변에 형성된 생태계 전체를 이동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각 기업들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미-중 간의 무역분쟁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또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전세계의 교역을 멈추었다. 

이는 충분한 트리거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홍콩의 유명 신문사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과 일본, 유럽 기업들은 비용 상승과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 탓에 중국 밖으로 떠나는 중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세계가 얼마나 많은 제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지가 조명되면서 (탈 중국의)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결단의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의 미국처럼 ‘자국 우선주의’를 강행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탈중국과 생산 기지 다각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중국을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채비는 본격적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에 집중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본토보다는 임금이 적은 멕시코에 공급망을 구축했다. 미국의 대(對)멕시코 제조업 수입 증가율은 2018년에 10%, 2019년에 4% 증가했던 반면 미국의 대 중국 제조업 수입 증가율은 2019년에만 17%가 감소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 중국 벨트’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한 한 축이자 중국과 생산 거점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인도의 모디 총리는 지난 5월 ‘자립 인도(Self-reliant India)’ 정책 도입을 선언했다. 중국에 집중된 생산 기지를 인도로 대체하고 인도가 세계 GVC의 중심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인도는 중국 주재 미국 기업 약 1,000개사를 접촉해 중국에 마련된 생산 기지를 인도로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 실제로도 전 세계의 인도 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2019년 4월부터 올해 2020년 3월까지 인도의 FDI 금액은 약 730억 달러로 전년대비 18%나 증가했다.


EU는 역내 공급 체계(RVC : Regional Value Chain)를 갖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높은 대중 공급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출입과 교역이 비교적 자유로운 유럽 내에 생산기지를 갖추는 방식이다. 유럽 내에서도 제조업 강국으로 통하는 독일의 BMW, 다임러(Daimler), 폴크스바겐(VW)같은 회사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적시 공급’(Just in time) 에서 ‘위험 분산’(Just in case)으로 선회하고 있다. 개별 부품당 최소 2-3개 이상의 역내 구매처를 확보하고 또 광범위한 구매 데이터베이스 구축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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