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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Dec 07. 2020

암호화폐는 독자적 화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암호화폐로 '투기 광풍'이 분지도 벌써 2년 넘게 지났다. 너도 나도 투자에 뛰어드는 이 광풍에 투자라는 것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주식계좌조차 갖고 있지 않던 우리 엄마도 몇천을 쏟아붓고는 허공에 날리고 나서 다시는 투자 같은 것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시골에 살던 아주머니까지 동참할 정도로 대단했던 게 당시의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었다. 그리고 모든 투기가 으레 그렇듯 비트코인도 엄청난 힘으로 매수세를 끌어모은 뒤 어느 날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떡락'했다(가 지금은 다시 올라왔다...)


이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뉴스는 경제면 한 귀퉁이를 차지할 정도로 작은 소식이 되었다.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변동성 높은 투자처로, 누군가에겐 신분을 감출 수 있는 어둠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일부 결제시스템에서 암호화폐 결제기능이 붙긴 했지만 그 대상은 1등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정도다.)


지금에 와서야 '철 지난 암호화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요새 잘나가는 암호화폐가 있다'라고 유혹하기 위함이 아니다. 암호화폐는 철저히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기 위함도 아니다. 화폐를 자청하지만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 암호화폐가 역설적으로 '화폐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소심해진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개발하고 있는 암호화폐로 지난해 6월 그 첫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통해 은행 없이도 빠른 사용자 간 송금과 일반 화폐와 같은 물품 구매가 가능한 ‘글로벌 디지털 화폐’ 및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 4월, 페이스북은 '리브라 2.0'을 내놓으며 리브라의 발행 방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원래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단일 화폐로 만들 계획이었다. 예를 들면 최초 발행된 1리브라는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정도 하지만 리브라의 화폐 가치가 상승하면 1리브라가 우리 돈으로 1200원으로 오르는 식이다. (물론 무조건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싱가포르 달러 등으로 구성된 복수의 통화 바스켓에 연동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리브라 2.0'은 전혀 다른 방식을 내놓는다. 리브라 USD코인, 리브라 EUR코인, 리브라 GBP코인, 리브라 SGD코인과 같이 각 국가별 단일 화폐에 연동된 여러 화폐로 발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리브라는 '사이버 머니'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1USD의 값어치가 오르면 1리브라USD코인의 값어치도 동일하게 오른다. 1리브라USD와 1리브라KRW의 교환비율은 원달러환율에 연동될 것이다. 리브라 코인에 잔뜩 기대를 모았던 이들은 리브라의 바뀐 정책을 두고 "대체 페이팔(국제 간편 결제 시스템)과 다를 게 뭐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리브라는 왜 과감했던 처음의 방식을 버리고 '페이팔'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통화연동형(스테이블 코인 : Stable coin) 코인을 발행하기로 결정한 걸까?



페이스북 '리브라'에 비난과 견제를 쏟아냈던 '국가'들


작년 6월, 리브라가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각국 대표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돈도 아니고, 너무 변동성이 심한데다가, (가치의) 기반도 취약하다"면서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은행이 되고 싶다면, 국내외 다른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은행 허가를 받아야 하고 모든 금융 규제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리브라는....최근 디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뭔가 잘 안풀리는 것 같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리브라는 개인 정보 보호와 돈세탁, 소비자 보호, 금융 안정성 등과 관련해 많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며 “이런 심각한 우려들이 해소될 때까지 리브라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재무 장관 브루노 르 마이어 역시 리브라가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왜 이렇게 각국 대표자과 금융 관계자들이 우려를 표한 걸까? 우리는 여러 가지 말 중에 프랑스 재무 장관의 발언인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이란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화는 국가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경제가 침체되었을 경우 통화 발행량을 늘려 시중에 돈이 돌게 한다. 반대로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 통화 발행량을 줄여서 경제를 안정화시킨다. 보통은 이런 기능을 중앙은행이 한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결정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즉 국가의 중앙은행은 시장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금리를 변동하는 식으로 시장에 대응한다. 


그런데 리브라는 각 국가들과 분리된, 독립적인 화폐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리브라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던 통화 발권력이 민간에도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통화정책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국가가 긴축을 결정하고 통화 발행량을 줄이겠다고 결정하더라도 리브라가 코인 발행량을 늘리게 되면 국가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이 EU로 통합되면서 통화정책에 제한이 생기자 여러 문제를 겪었다) 


사실 비트코인을 포함한 기존 암호화폐들도 독자적 가치를 갖고 있었지만 각 나라들이 큰 위협을 느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달랐다. 20억 명이 넘게 사용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 페이스북이 내거는 화폐는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만약 정말 페이스북의 리브라가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대중 화폐'가 된다면 미국은 기축통화의 위치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이란 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브래드 셔먼 미 하원의원은 이 리브라를 두고 “테러보다 미국을 더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통화통제력은 어쩌면 한 국가의 '치안 유지를 위한 공권력 독점'과 비슷한 수준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종이 쪼가리에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이유, 지급 보증 


비트코인의 광풍을 다시 돌이켜보자.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화폐'라고 생각하고 사들였을까? 아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을 사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거래소 계좌를 열고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가 파는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 과정을 보자면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었다.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었다. 


비트코인과 화폐는 둘 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주식처럼 투자 대상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광물처럼 물건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화폐는 그것이 화폐라는 이유만 제외하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비트코인은 그것이 비트코인이라는 이유만 제외하면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화폐가 비트코인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화폐는 국가가 그 가치를 보증해 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1만 원짜리 지폐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치가 떨어질지언정 갑자기 휴지조각이 될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화폐를 '교환 매개체'로 사용한다. 화폐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고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 


화폐의 '지급 보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반례는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같이 통화정책에 실패한 나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의 화폐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국가가 그 가치를 보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물건의 값을 지불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보증이 되는 화폐'를 찾는다. 대표적으로 달러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달러마저 국가가 통제하자 비트코인을 거래 수단으로 고려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매우 높지만 베네수엘라의 화폐보다는 덜 하기 때문이다. 


1비트코인은 한때 1달러의 가치도 하지 못하다가 한순간 2만 달러까지 그 가치가 치솟았다. 지금은 1만 달러 아래로 유지되고 있지만 시시각각 가격이 급등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국가가 유지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들의 거래'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래서 아무도 비트코인을 화폐로 취급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으로 월급을 주는 건 '괴짜 사장님'이 아닌 한 감히 실행할 수 없는 행위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2.0을 통해 리브라로 발행되는 코인만큼의 지급준비금을 연동해 가치를 유지하겠다고 설명했다. 1리브라USD에 1USD만큼의 가치가 보증된다면 사람들은 이를 사실상 화폐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리브라 2.0의 이런 '정책 변경'은 그간의 암호화폐가 화폐로 기능하지 못했던 점을 설명하고 있다. 누구도 그 가치를 보증해 주지 않는 암호 화폐는 바로 교환가치로 사용할 수 없고 그저 투자 내지는 투기의 대상이 될 뿐이다. 



암호화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리브라의 이런 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7년 암호화폐가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졌을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Fed Coin 발행을 시사했다. 당시 연준의 부의장인 안돌패토는 비트코인에 대해 '발권력 부재에 따른 통화 정책 사용 불가'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중앙은행이 지급을 보증'하고 '달러와의 교환비율이 보장'되는 형태의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리브라와 사실상 같은 모습이다. 결국 처음으로 '세계'를 위협하려 했던 암호화폐 리브라는 전방위적인 견제를 받으며 결국 Fed가 구상했던 디지털 화폐와 유사한 모양으로 설계되는 모양새다. 


암호화폐 찬양론자들은 '국가의 발권력'을 뒤엎는 혁명을 꿈꾸며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암호화폐의 위치를 '디지털 화폐' 이상으로 내주려고 하지 않는다. 앞으로 암호화폐의 혁명적 실험이 성공할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지금의 암호화폐는 썩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아동 성 착취물을 유통했던 손정우나, 텔레그램을 통해 성 착취물을 판매했던 조주빈 모두 암호화폐를 통해 대가를 받았다. 암호화폐가 주장하는 '탈 중앙'의 그늘 속에는 '검은 돈의 유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암호화폐는 특정 사업 프로젝트와 연동돼 '투자 증권'처럼 발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는 암호화폐가 본질이 아니라 '투자 증권'이 본질이며, 자본시장법 등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투자 모집과 주식 발행이 사실상 법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이 암호화폐가 말하는 '탈 중앙'의 본질이라면 국가는 암호화폐에 대해 불안안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한 시선을 이겨내고 또 화폐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국가의 지급 보증'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발권력'을 극복하고 암호화폐는 '새로운 화폐 개념'을 창출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혁명적 시도'라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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