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내가 마지막으로 옷을 산 날이다. 섣부른 전망일 수 있지만 앞으로도 옷 살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패션에 몸과 마음을 바쳤었다. 그렇다고 패션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고 내 옷차림에 돈과 시간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를 썼다는 얘기다. 나이키매니아와 무신사(그때는 매거진과 중고장터만 있었음)에 소개된 일반인 길거리 패션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한정판 신발 한 켤레를 사기 위해 몇 날 며칠 중고 거래 게시판을 뒤지기도 했다. 직구 문화가 정착하기도 전인 2002년에 첫 해외 직구를 했으며 청바지 수선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수선 장인'을 만나기 위해 1시간 거리를 찾아간 적도 있다. 이 정도면 평균 이상으로 옷차림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 적었던 것처럼 나에게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다 보니 옷차림은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그 중요도에 비해 너무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정신을 쏟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옷을 사는 횟수가 점점 뜸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사지 않아도 괴롭지 않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옷차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0'에 가깝다.
'옷 안 사는 게 무슨 대수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쇼핑을 끊어보니 옷을 사지 않는 것은 결코 돈과 시간 절약의 이득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쇼핑 중단의 진정한 의미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독립'에 있다. 더 정확히 풀어서 쓰자면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대망상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확실히 자기만족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썼었다. 그래서 처음 옷을 대충 입었을 때에는 창피했다. 왠지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 옷차림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들까지 내 옷차림에 30초 이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았다.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보다 과감하게, 능동적으로 신경을 안 썼다. 아무 옷이나 입는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이상한 옷을 입어봤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의 옷차림에 대해 그리고 나의 다른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나의 과대망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지금은 옷차림은 물론 다른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패션 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패션에서 멀어지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유행이 계속 바뀌는 이유는 의류 디자이너들의 미적 감각이 계속해서 진화해서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패션이 돌고 돈다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유행은 인위적 조작에 가깝다. 신규 매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려면 유행이 계속 바뀌어야 하니 패션 산업에서 유행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유행의 출발점이 셀럽인지 디자이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패션 산업은 매체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유행을 만들고 그 유행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심는다. 사회 혹은 준거집단에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실제보다 과장된 두려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 옷을 입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단정한 옷을 입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다시 말해 특별한 상황에 입을 수 있는 '기본템'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고가이거나 유행에 맞는 옷일 필요는 없다. 내가 팔로우하는 미니멀리스트 유튜버들은 자기 몸에 잘 맞는 무지 옷을 선호한다. 같은 색을 여러 벌 사서 돌려 입기도 한다. 좋은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워스트 드레서'로 낙인찍혀 피곤할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