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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빈 Nov 03. 2018

선택적 차원에서의 비-선택 이미지들의 양상

2018.11.2 서교예술실험센터 이홍한 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실용과 효율로 점철된 사회에서 수많은 사물들은 쓰임과 버려짐을 강요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사물에 국한되지 않고 한 생명체의 정신에 자리 잡을 때 사회적 파장으로서의 노이즈는 거대해진다. 전시를 지칭하는 전제로서의 ‘비-선택 이미지는’ 비-소비재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엔 규제성을 보이고「얼굴 2018」,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기엔 자연현상의 재해로 번역「재난에 대한 개소리2018」되는 등 직접적인 충족의 양상보다는 이홍한 작가가 구축한 일상생활 안에서 교차와 작용을 거듭하며 욕구의 비 선택 이미지들은 새롭게 드러난다.

  

「재난에 대한 개소리」는 일상 속 재난상황을 기록한 영상이다. 화재 발생, 인명피해 없음, 피해액 등의 헤드라인은 선택적 이미지를 대변하며 보이지는 않지만 드러나는 입장들을 보여준다. 해명할 수 있는 또는 해명해야 하는 원인과 인과 구조는 사라진 채 고착된 합리화만이 부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된 이미지들은 오히려 불분명한 시야를 드러내며 비-선택 이미지와의 차이는 모호 화 된다. 영상 속에는 주로 하늘의 이미지가 담기는데 수증기, 하얀 연기, 안개 등의 동일한 자연현상을 다르게 지칭하며 이 동일한 현상으로 하여금 규정의 습관을 지적하기도 한다.


  인트로에서 언급한 평온한 주변과 신뢰는 분명 일상의 요건이지만 재난이라는 비 일상의 이미지의 잡음들을 통해 정말 필요한 요건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태도는 ‘윤리의 천착’이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더불어 예술은 ‘지나간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은 사라지고, 흩어지고, 투명해지는 이미지들에 대한 회기와 동시에 완전히 압축된 재현은 가능한가에 대한 또 하나의 자성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선택적 차원에서의 전시는 ‘개소리’라는 발화를 통해 뚜렷한 색채를 지니지만 그러한 미술의 가능성 또한 다시 불분명하게 사라지는, 일종의 소비재로써 사라지는 유한함을 작가는 안타까워한다. 결국 예술의 실천 속에서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는 천착의 모습은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않는 표현을 대입하려는 천착의 모습 또한 경계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움의 부동자세는 작가로서의 작업 면면을 보여주는 「쉬었다 합시다」에서 더 돋보인다. 감각 자체는 가능하지만 지각이나 인식이 불분명한 쇼트들의 이어짐은 모두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확대된 풍경으로 다가온다. 일정하지 않은 이미지와 일정한 이미지(시계의 시간, 입술의 움직임 등)들의 병치는 선택/ 비선택 이미지들의 몽타주를 통해 비선형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며 영상언어의 파편이자 작업의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일정한 작업을 통해 ‘작품’이라는 아웃풋을 내고 선택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작가들의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개별 전시는 분명 작가를 볼 수 있는 나이테의 일부이지만 작가를 ‘알’ 수 있는 방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쉬었다 합시다」는 모호하게 인식되지만 작가 자신에 대한 은근한 드러냄인 동시에 비-선택 이미지(쇼트)들을 병치시켜 작품에서 탈피되어진 이미지들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필자는 가끔 윤리와 규범 준수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인간으로부터 추동되고 설계되는 것들이 맞지만 법규라는 가상의 규칙, 대법원장이라는 장소, 의경이라는 직업 등이 그것을 더 확실하게 대변하는 도상이라는 점이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마네킹에 덧 씌어진 경찰복과 모자는 인간의 또 다른 지위를 나타내지만 주목되는 것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통해 오히려 가려지는 본연의 인간이다. 규제를 당하는 자와 규제를 행하는 자라는 뚜렷한 구도를 해체시키고 경찰이라는 기표를 충족시키는 이미지의 양상을 일정한 디지털 프린트 사진 속에 차이를 두며 배제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착된 것은 비-소비재로써, 윤리적 차원에서 규범의 상징으로 작용해야 할 ‘얼굴’들이다. 하지만 사실 또는 진실 관계와 상관없이 일정한 외압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사적 욕구를 달성하며 사용을 강요당하는 모습으로 실용화되기도 한다. 가려진 얼굴의 반대편에는 뚜렷이 드러나는 사물들도 존재한다. 「Fresh Object」는 작업에 쓰이는 부차적인 사용물들을 우레탄 페인트를 칠하여 새로운 목적으로서 배제된 사물의 재탄생을 실행한다. 「쉬었다 합시다」에서의 노동과 용접을 미루어 보아 작가 자신이 실제로 사용한 물건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업 후 또는 오래된 작업 과정의 부산물로서 선택과는 별개의 사물들로 간주되는 「Fresh Object」는 「쉬었다 합시다」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작업으로 도출해야 하는 것과 그 사이 시간을 이루고 있는 사물 사이에서 방황 후에 배재된 것들의 존재성은 우레탄의 방수기능을 통해 일정한 시간성을 간직하는 작업의 가을 이루기도 한다.  


    물리적 매개체로서 전시는 관람자의 바람, 작가의 의도, 공간의 연출 등을 통해 소통과 불통이 교차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관람자는 진지한 태도로 작업을 내면화하기도 하고 잠깐잠깐의 스낵 컬처로서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작가 또한 전시 주제로부터 개별 작업의 정체성까지 자신의 일면을 고집하기도 습관을 탈피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홍한 작가가 희망하는 ‘인터페이스 경험’은 세 가지 비-선택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예술에 대한 사유, 작업에 대한 양상, 작품에 대한 존재양태를 끝없이 보여준다. 사실 그것이 비-선택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선택적 차원의 작업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은 작가 자신에게는 뚜렷한 인상주의보다는 모호한 추상주의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며 전시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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