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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인칭 Nov 03. 2016

#14<헤드윅>고통과 희열을 담아 부르는 노래

영화 <헤드윅> 리뷰

<엔딩크레디트 그 후 5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현대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남겼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젊은 시절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목도한 경험이 그를 낙천주의자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베를린 장벽은 단순한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모든 폭력과 야만성을 응축시켜놓은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영화 <헤드윅>에서 베를린 장벽의 역할은 다르다. 성전환 수술이 실패하여 성기 대신 1인치 살덩이만 남은 주인공 한셀(존 캐머런 밋첼)은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선 한셀의 몸은 그 자체로 넘어설 수 없는 베를린 장벽이다.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폭력으로 작용하는 현실 속에서 한셀의 ‘1인치짜리 성기’는 우리가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벽을 넘어’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인 셈이다.


그러나 벽으로서 그의 삶은 어땠을까. 끝없는 오해와 괴로움 속에 있지 않았을까? 영화의 엔딩크레딧 이후 5분을 통해 한셀의 삶을 추측해 봤다.


영화 <헤드윅> 스틸컷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


한셀의 손이 이치학을 찾아 더듬더듬 움직였다. 그러나 더블베드 한 구석에는 이치학 대신 아침 햇살이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 허망하게 침대보를 쥐어뜯던 한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사타구니 쪽을 내려다봤다.

“5인치짜리 성화가 불타는 느낌이었어.”


이치학이 떠나고 한셀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환상통 때문이었다. 한셀은 고통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얼마만큼 아픈지는 정확히 계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정확히 5인치만큼의 통증과 가려움이었다.


한셀은 고통의 여운을 덜어내기 위해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2층짜리 싸구려 모텔의 전경은 한산했다. 다른 투숙객들은 일찌감치 모텔을 떠났는지 주차장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트럭 한 대만 서 있었다. 트럭 트렁크를 열어놓고 그 아래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던 노인 하나가 한셀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이 봐. 담배 한 대 있나?”


한셀은 그늘 아래로 빠끔히 내민 노인의 얼굴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봤더라.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뜨는 동안 그를 어디에서 봤는지가 떠올랐다. 빌지워터 공연 때 밴드를 따라다니던 노인이었다.

“말보로 괜찮아?”


한셀은 일부러 테라스 아래로 얼굴을 드러냈으나 노인은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노인은 가발도 없이 맨 얼굴인 한셀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셀은 담배 한 갑을 통째로 노인에게 던졌다.


“이거 다 주면 자네는 뭘 피우게?”


말은 그렇게 해도 노인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더니 한셀에게 답배 갑을 들어 올려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한셀은 허공에다 대고 건반을 누르듯 우아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대답했다.


“이것만 피우고 담배 끊을 거야.”


충동적인 대꾸였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만 빼놓고는 뭐든 해서 달라지고 싶다는 강박이 한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치학을 떠나보낸 것은 생각보다 더 큰 변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 몸 생각은 엄청 해. 이거 좀 피운다고 죽지 않아.”

“내가 몸 생각을 좀 하긴 하는데, 영감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야.”


영화 <헤드윅> 스틸컷. 가발(헤드윅)을 벗어버린 한셀


한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밤새 그를 괴롭히던 환상통이 하얀 담뱃대 끝에서 시각화되고 있었다. 한셀이 생각하는 몸이란 이렇게 타들어가다가 재와 연기만 남는 것이다. 노인이 그걸 알까. 아니다. 알았다면 제 몸을 저리 추하게 방치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그래. 알았어. 요즘은 사내들도 계집애같이 굴어야 하는 세상이니까 이해하지.”


노인이 별 수 없다는 듯이 팔을 휘젓더니 제 담배에 불을 댕겼다. 한셀은 즉각적으로 화를 내지는 못했다. 자신이 사내인지 계집아이인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셀은 화를 내는 대신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켰다. 입에 물린 담배꽁초가 반 토막이 날 동안 한 번도 입을 떼지 않았다. 담뱃대는 삽시간에 줄어들어 1인치 남짓만 남았다.


“이 봐 영감.”


한셀은 노인더러 보란 듯이 1인치짜리 담배꽁초를 제 사타구니에 가져다 댔다. 한셀은 아직도 붉은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꽁초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남자 아니야.”


노인은 유리세공사라도 된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레 담배를 빨며 한셀을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만큼이나 복잡한 표정들이 오갔다. 당혹감, 깨달음, 난처함, 당혹감, 반가움, 당혹감, 당혹감, 당혹감. 그리고는 한참 만에 뻐끔,


“그래 남자가 아니군.”


연기 같은 말을 내뱉고 노인은 자리를 떠났다. 한셀은 그 뒤에 대고 말했다.


“영감한테는 이게 어울려!”


떠나는 노인의 등 뒤에 툭 부딪혀 떨어진 것은 샛노란 가발이었다. 노인은 담배를 받았을 때처럼 한셀의 눈높이에 대고 가발을 들어 올리더니 미소와 함께 떠나가 버렸다. 한셀은 노인의 미소가 가발이 아니라 부케를 받아들었다고 해도 믿어줄만하다고 생각했다. 한셀은 노인이 사라진 자리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나지.”


헤드윅은 새삼 6인치의 여백과 6인치의 충만함 속에서 흥분과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영화 <헤드윅> 스틸컷. 한셀, 헤드윅은 고통 속에 행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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