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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인칭 Dec 18. 2016

#20<잉글리쉬페이션트> 생명이 꺼져갈 때만 자유로운

인도에는 뭔가 있다. 서구 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인도를 전혀 모르는 탓이었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두 가지로 반응한다. 하나는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아는 것을 강제해 버리는 것이다.  인도를 대하는 유럽인들의 사고에는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었다. 


예컨대 콜럼버스는 ‘동양’으로 향하는 해로를 찾기 위해 항해를 떠났다. 그의 항해는 인도, 중국, 지팡구(일본)에 대한 유럽의 욕망을 극대화한 것이었다. 가까스로 바하마 제도의 섬과 쿠바에 닿은 콜럼버스는 그곳이 중국이나 일본의 해변이라고 믿었다. ‘동양’에 대한 명확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원주민들을 ‘인디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원주민들은 이후 아주 오랫동안 ‘인디언’이라고 불렸다. 전혀 다른 풍습과 역사를 가졌을 바하마 제도의 원주민들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같은 이름  하에 학살당하고 노예로 팔려간다. 콜럼버스의 작명법 이면에 자리한 유럽인들의 욕망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진짜 인도인 Indian’들에 대한 개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인도 문화를 접한 유럽의 교역자들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인도와 유럽을 ‘어족’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아리아(Arya) 인종’으로 불렸고,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나갔다고 믿어졌다.


이 개념에 주목한 것이 히틀러와 나치당이었다. 히틀러는 아리아 인종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수하며, 독일을 중심으로 아리아 인종의 유전적 순수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인종’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유전자가 섞인 상태였다. 


쉽게 말해 어떤 사람이 아리아인인지 유대인인지 모를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히틀러 본인은 ‘아리아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조부가 유대인’이라는 정적들의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치는 굴하지 않았다. 우생학을 활용하여 ‘벽안금발’ 등의 피상적이고 왜곡된 기준으로 아리아 인종을 분류했다.  


역사에는 이처럼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인위적으로 식별하는 개념이 수도 없이 많았다. 폭력과 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을 연합국 대 추축국의 전통적 대립으로 바라보는 전통적 관점 대신, 인종과 민족이라는 인위적 개념과 개인의 대립을 그린다.


<잉글리피 페이션트>의 주인공 알 마시(랄프 파인즈)는 벨기에 귀족 출신이다. 그와 동료들은 사막을 누비며 지도를 만든다. 그러나 사막은 모래 바람만 불면 둔덕의 모양이 조금씩 바뀌는 곳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흐르는 땅이다. 그런 곳의 길을 평면 위에 잡아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들은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과 사명감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도를 이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실용적 목적에 따른다. 그들이 지도에 옮기는 사막이라는 것은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제 식민지를 한 뼘이라도 넓히기 위해 자웅을 겨루는 전장인 것이다.


마침내 일이 터진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잠깐의 휴지기가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알 마시와 동료들이 만든 지도는 이제 전략전술지도로서 가치가 높다. 그러나 알 마시는 지도의 전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사막과 지도라는 것은 국가나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과 연인인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을 위한 것이다.


결국 지도가 알 마시와 캐서린을 파괴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알 마시는 영국 정부를 위해 일했지만 정작 연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영국 정부는 그를 돕지 않는다. 심지어 ‘독일군의 끄나풀’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결국 캐서린이 죽게 만든다. 알 마시가 그나마 캐서린의 시신이라도 마주하게 된 것은 독일군에 지도를 내어주고 비행기 연료를 받은 덕이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에서도 인종 간의 선악 우위는 없었다. 유대인은 비단 독일에서만 탄압받은 게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 전까지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탄압했고 특히 러시아가 심했다. 우생학을 인종 간의 우열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에는 독일보다 미국이 앞서 있기도 했다. 영국, 스페인, 미국이 저질러 온 학살이 나치보다 덜할까?


누군가 민족과 국가, 인종을 숭배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멸시받고 짓밟히는 민족, 국가, 인종이 존재한다. 흘러가버린 일이 아니다. 오로지 정복과 학살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던 인디언의 미개함, 아리아인의 위대함이라는 개념은 형태와 이름을 바꿔 현대에도 존재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스스로를 유럽아리아 인종이라고 칭한 문서가 발견된 적이 있다. 남아공 내의 인도인들을 미개한 흑인으로 취급하는 것을 비판하는 문서였다. 모자라거나 나은 인종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답이 없다. 우열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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