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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인칭 Dec 24. 2016

#21<토이스토리+레고무비> 상상 세계를 복원하는 영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자. 우리 모두에게는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 그 세상에서는 장난감들이 대화를 하거나 연애를 했고 싸움도 했다. 누군가 시간을 빨리 돌렸다가 천천히 돌리기도 한다는 비밀을 은밀히 간직하기도 했고, 벽장 위에 난쟁이 왕국을 그리기도 했다. 빈 집을 나서며 아끼는 곰 인형과 살가운 눈인사를 나눴던 이들이라면, 우리가 한 때 넓은 세상을 알았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상상 속 세상은 어느 순간 아주 우습게 사라진다. 예컨대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은 꼭 누군가 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때 아이들은 스스로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이를 상상과 현실을 분간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 속에 상상을 축조해내는 능력을 잃어버린 순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음에 소개할 두 편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상상 속에 만들어낸 세상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관점은 정반대다. 먼저 <토이스토리> 시리즈는 상상 속에 만들어 낸 나만의 세상을 긍정하는 영화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부여하고는 하는 인격과 서사를 그대로 되살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상상 속의 세계와 이별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특히 소년과 장난감의 교감, 상상 속 장난감 세계의 관계와 우정을 다룬 1,2편과 달리 <토이스토리 3>는 소년이 장난감과 이별하게 되는 순간을 그린다. <토이스토리 3>는 전작의 장난감 캐릭터들과 교감을 나눴던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한 시기를 그린다. 그는 더는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만큼 어리지 않다. 우디와 버드를 비롯한 장난감들은 창고에서 먼지만 쌓일 뿐 전처럼 소년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장난감 일행들은 우여곡절 끝에 소년의 집에서 나와 떠돌게 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보육원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면서 손에 잡히는 장난감마다 누더기를 만들어 놓는 곳. 장난감들에게는 수용소 같은 곳이다. 설상가상 보육원의 장난감들은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로 삐뚤어진 ‘로초’라는 곰 인형에게 폭력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성장하며 잃어버리는 상상 세계의 종착지인 것이다.


영화는 장난감 캐릭터들을 수용소에 방치하지 않는다. 보육원을 로초의 질서에서 해방시키고, 아이들과 장난감의 교감을 되살린다. 또한 우디와 버즈 일행 등은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을 떠나 아직 상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어린 소녀에게로 옮겨간다. ‘장난감 가지고 놀 나이가 지났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상상의 세계를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반면 영화 <레고무비>는 상상 세계를 아이들의 것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영화 속 세상은 완구 회사의 장난감 브랜드 ‘레고’로 만들어진다. 하나의 작은 블록은 아무것도 아니되, 이를 조립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게 레고의 장점이다. 때문에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마니아층이 두텁다. 영화는 이를 극대화시켜 한 상상 세상에서 대립하는 두 개의 가치를 표현해냈다. 


하나는 자유다. 레고 위의 모든 블록과 캐릭터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자유롭게 저마다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레고무비의 주인공 ‘에밋’은 레고 세상을 통제하는 획일화된 질서에 순응하는 따분한 인물이지만, 자유와 개성에 대한 갈망을 깨닫고 각성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저항의 피스’라는 무기를 손에 넣어 레고 세상을 통제하는 강력한 흑막에 저항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엄격한 질서다. 레고 세상의 흑막 ‘로드 비즈니스’는 모든 것은 고정된 채 통제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레고 세상을 완전히 통제할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에밋을 포함한 마스터빌더(레고 세상의 저항군)를 공격하고 억압한다. 로드 비즈니스의 무기가 레고 세상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에밋이 ‘저항의 피스’를 활용해 로드 비즈니스를 저지할 수 있느냐가 영화의 관건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이는 모두 한 소년의 상상이다. 레고수집가인 아버지(윌 퍼렐)의 레고를 가지고 놀며 일종의 불만사항을 표출한 것이다. 아버지는 레고를 수집하여 조립하고, 흐트러지지 않게 본드로 단단하게 고정한다. 소년이 레고를 가지고 놀려 하면 애써 조립한 것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잔소리부터 늘어놓는다. 어른의 목적지향적 상상 세계와, 아이의 두서없는 상상세계가 충돌한 것이다.


결국 로드 비즈니스가 엄격한 통제에 동원한 무기는 ‘본드’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에밋이 가져온 무기 ‘저항의 피스’는 본드 뚜껑이었음이 밝혀진다. 영화는 어른이 되면서 상상세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창조적인 상상 세계 대신에, 상상이 도구 그 자체에 메여 붙박인 상상 세계를 펼쳐나간다. 그게 아이들과 ‘키덜트’의 차이다.


어린 시절의 상상 세계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상상 세계를 얻는 대신에 어른으로서의 삶 대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 단 하루만이라도 상상세계를 엿보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산타와 루돌프를 꿈꾼다는 핑계로 깜찍한 이벤트를 꾸미는 동안 어른들이 느끼는 즐거움도 아이들 못지 않을 테니 말이다. 


<토이스토리>와 <레고 무비>는 아이들의 상상세계를 그리며 오히려 어른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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