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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인칭 May 03. 2019

어른들의 성년식 ,
영화 <미성년>리뷰

감독 김윤석이 만든 '네버랜드'

성년의 기준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나이가 기준이 된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가혹행위에 가까운 성년식이 필수다. 이 과정을 다 거쳐도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한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때 어른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문에 껍데기만 어른이고 속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완전한 성숙이란 상상 속의 개념이다. 인간은 커다란 문제를 극복하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실제로는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전과 같은 문제가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여건이 조금 나아질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성인(成人)은 될 수 있어도 성인(聖人)은 되지 못한다.


결국 성인이 종종 애처럼 굴며 시련에 무너지고 방황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성숙했다는 자만에 빠지지 말고 매 순간 솔직한 태도로 어려움에 맞서고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자질일 수도 있다. 영화 <미성년>은 그런 고민없이 거저 어른이 된 사람이나 자신의 성숙함을 과신하는 이들에게는 섬뜩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울고, 투정부리고, 무작정 도망치고...퇴행하는 어른들


고등학교 1학년인 주리(김혜준)는 어느 날 아빠 대원(김윤석)이 불륜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불륜 상대방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윤아(박세진)의 엄마 미희(김소진)다. 주리는 엄마 영주(염정아)를 버려두고 바람을 피우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상한 아버지를 어떻게든 미희에게서 떼어내 가정을 지키려한다. 


반면 윤아는 불륜 사실을 대뜸 영주에게 알려버린다.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 이유가 드러난다. 미희는 이미 대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다. 윤아는 엄마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미희가 더 상처받기 전에 영주가 이 혼란을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가정을 위해 부모를 단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아이와 어른의 관계는 뒤바뀐다. 미희는 고등학생 딸에게 잔소리를 듣고 소리 내어 울어버린다. 사랑하게 해달라고,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행복하게 내버려두라고 악을 쓰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미희를 찾아갔다가 홧김에 밀쳐버리는 영주도 마찬가지다. 자기감정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미희와 대원의 아이 ‘못난이’가 조산아로 태어나면서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구분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특히 미희와 대원의 관계가 그들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것이며, 책임질 생각도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해버린다. 미희는 너무 일찍 태어난 자기 자식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원이 자신을 택해주길 바라면서도 못난이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않는다. 



대원 역시 못난이를 보러 병원에 들렀다가 병원에 진을 치고 있던 주리와 윤아를 만나자 놀라 도망가 버린다. 주리가 애타게 ‘아빠’라고 부르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윤아는 주리 대신 대원의 뒤를 따르며 계속 아빠를 외친다. ‘넌 아빠야. 두 자식을 버렸어.’라고 힐난하는 투다. 대원은 뻔히 들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간다. 담배를 사다가 부모에게 들켜 골목골목으로 도망 다니는 중학생처럼.



성장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못난이의 탄생은 어른들의 퇴행을 불러왔지만 윤아와 주리는 오히려 한 발씩 더 나아갈 계기를 줬다.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던 두 사람은 버려진 못난이를 보며 각자의 삶으로 한발씩 나아간다. 윤아는 못난이를 직접 키울 준비를 한다. 전통적 모성애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미성년이라는 틀 안에서 끌려가듯 살아오던 삶을 끝내고 삶의 방향을 직접 결정할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것도 다른 생명의 미래를 결정짓는 어마어마한 선택이다. 


주리는 못난이에 대한 대원의 태도를 본 후 그를 더이상 아빠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단순히 사춘기적 반항이거나 불륜으로 가정을 망친 것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원이 병원에서 그랬듯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대원이 소유하는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은 분명하다.


미희와 영주는 거의 변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미숙했던 자신들을 조금이나마 바로잡는다. 미희는 대원에게 버려지지 않고 이 불장난을 스스로 마무리한다. 못난이를 조산한 후 자신을 피하는 대원에게 일말의 미련을 가지면서도 결국 먼저 그를 끊어낸다. 영주는 대원이 수년간 자기 방에서 혼자 잠드는 것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그의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원의 불륜 이후 영주는 자존심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대원만 그대로 남는다. 영주와 주리에게 수없이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는 계속 문제를 피하기만 하고 깨닫는 것이 없다. 아직 자신이 어른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자기 문제를 제대로 깨닫고 해결하지 못한 채 피하기만 하는 이들은 영원히 미성년일 수 밖에 없다.


방황하자, 무너지진 말자.


주리와 윤아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부모보다 우월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은데 그저 책임질 것이 없어서 번민이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들처럼 책임질 일이 생기고, 훌쩍 도망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빠지면 똑같은 퇴행을 반복하지 않을까.  


주리와 윤아는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성숙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성숙, 미성년의 조건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영화 엔딩장면에서 두 사람은 못난이의 유골을 먹는다. 야자 끝나고 간식이라도 먹듯 딸기우유 초코우유에 타서. 이로써 두 사람은 미성숙한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낳아 곧 죽게 만든 못난이와 한 몸이 된다. 부모처럼 되기 싫다는 의미지만 그게 쉬울 리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두 사람은 성숙했다는 자만에 빠질 때마다 제 안의 못난이를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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