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집요함
어제 TV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중계되었다. 경기 시작에 앞서 췌장암 투병 끝에 영면한 故유상철 감독님에 대한 추모가 진행되었다. 현역 시절, 특히 2002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사실상 확정 짓는 쐐기골을 넣은 뒤 활짝 웃으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불과 몇 달 전에 힘든 항암치료 끝에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은 모습을 유튜브에서 봤는데 갑자기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유상철 감독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에 대한 상념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똑같은 암환우로서의 동질감이 절대적이다.
오랜 시간 그 힘든 운동도 다 극복해온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보유한 만큼 충분히 어려운 항암치료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강한 기대감이 있었고 유상철 감독님을 롤모델로 삼으며 항암치료에 임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월요일에 접한 뉴스가 믿기지 않았고, 슬픔보다는 화가 더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대한 원망이 강하게 들었었다. 열심히 재기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유했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훌륭한 인성을 지닌 그런 선한 사람이 왜 이 세상에 더 이상 살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분노를 글로나마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암이란 존재, 암이란 XX가 정말 사악한 놈이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드라마 '빈센조'처럼 악은 더 큰 악으로 처단할 힘이 주어진다면 당장 세상 모든 암환우들의 몸속에 득실거리는 암이란 녀석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살시킬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암을 다루는 의사들이 왜 그토록 차갑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된다. 유상철 감독님의 주치의 분도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놀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공적으로 항암치료를 마친 지 얼마 안 돼서 갑자기 신체의 다른 곳으로 암세포가 전이돼버리니 제 아무리 최고의 명의라 할지라도 손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폐암 해프닝을 일으킨 홍혜걸 의사가 주절이 주절이 적어놓은 글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단어는 '운(運)'이란 라는 한 글자였다. 모든 사람의 몸속에는 암세포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 암세포가 어떤 변이를 일으키고 어떻게 확산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두가 러시안룰렛 같은 운명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전투적인 마인드도 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전이라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어올 틈을 두지 말아야 될 것 같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고, 꾸준한 루틴을 만들고...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는 중인데 더 실천력의 강도를 높여야겠다.
침묵의 암살자... 암이란 사악한 녀석과의 동거를 끝마치기 위해 더 유연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