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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is Aug 29. 2016

발목 부상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디뎌 보지 않은 사람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미덕에는 생기도 가치도 없으니까요. 그들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합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친 건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의 학교에서였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마음이 급한 나머지 병원도 제때 가지 못했다. 1주간 반깁스를 하고, 2주간 발목 밴드를 했다. 그 뒤로도 발목은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도 발목 부상을 입은 적이 없었던 나는 치료에 한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한가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도 발목은 완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구간의 어느 시점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실패는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야 말았다. 인간의 몸이 쇠해가는 과정에는 다양한 나이듬과 몰락의 징표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본인이 직접 선택한 걸음과 잘못으로 얻은 비가역적이고 자명한 상흔이라는 것은 영혼의 일부에도 생채기를 내는 모양이다. 시험 기간이라 잠이 모자라 피곤했고,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보며 걸었고, 외탁한 발의 족궁이 높아 어려서부터 발걸음이 불안정했고, 기타 등등의 여러 사유가 있었지만 아무튼 우선적으로 탓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바보스러움 정도였다. 멍청함과 부주의의 대가. 그래도 좀 비싸게 값을 친 감은 없잖아 있지만.

방학 동안에는 문제의 발목을 밴드로 감싸고 바쁘게 뭔가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났다. 그 모든 것들은 의미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을지도 모르는 일들로서, 이런 루쉰의 패러디같은 말 외에 별로 남길 말도 없는 이유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흘러간 데다 지금도 딱히 정신상의 여유가 돌아오지 않아서 명확히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일들은 아마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잠수정처럼 더 명확히 드러나거나 더 희미한 형태가 되어 기억의 바다 아래로 영영 잠길 것인데, 아무려나, 지금으로서는 보이는 것이 없다. 깊은 바닷속에서 좀체 생산적인 풍경이라곤 비춰주질 않고 망망대해만을 보여주는 잠망경의 위치를 계속 조절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나마, 여름 동안 무더위를 뚫고 아주 오래된 사람들을 다소 절박하게 만나고 다녔던 것이 생각난다. 아마 이대로라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넘어지고 넘어져서 알 수 없는 곳에 불시착하면 어떡하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될 수 없으면 어떡하지. 나의 어떤 일면은 분명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며, 이 부분은 구제가 불가능하다. 이는 내가 분명히 망할 것이라는(물론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망함'은 아니다) 예감 속에서도 계속 하기로 결정한 일들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파멸이다. 날을 거듭하며 나는 망가진다.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고, 날마다 필연적으로 조금씩은 실패한다.

넘어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 준비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낙법이지. 그만한 정도로도 훌륭한 준비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의 기록을 간간히 읽어주는 이들에게 내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과 기나긴 변명, 속죄와 갱생의 목격자가 되어주기를 청하고 싶다. 내가 가장 나쁠 때, 그 모습을 누군가가 봐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나아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아는 이들이 내 실패와 수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어쨌든 훌륭하게 개강 첫날을 여행으로 날려먹었고, 내일부터 이 망할 발목을 잡아끌고 다시 낙하할 준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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