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체코 학생들이 남한과 북한에 대해 발표를 할 때 게스트로 초대되어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영어로 발표를 준비하고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는데, 마침 이번 주제가 북한과 한국이었던 것이다. 내가 수강하지 않는 수업이었지만, 여러 다리를 걸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모습이 어떨까 궁금했기에 흔쾌히 참석했다.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대체로 일반적인 것이었다. 법, 생활, 문화 그리고 음식 등 기본적인 것들 위주로 소개했다. 나도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발표 중간에 발음하기 힘든 한국어가 있으면 내가 소리 내어 읽어주면서 이해를 돕기도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북한에 대해 발표한 두 개 팀의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는 것이다. 한 팀은 북한의 생활상을 평양을 기준으로 발표했고, 다른 한 팀은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북한 정권이 홍보하는 생활상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자료에서 비롯된 차이였다. 북한은 참으로 미지의 세계이다. 가보지 않고서,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보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저 두 가지뿐이다. 서로 상반되는 내용의 생활상이 보이는데,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턱이 없다. 게스트로 초대되어 첨언할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토론 내용과 내가 받았던 질문들 중 흥미로웠던 것을 기억을 되짚어 기록하고자 한다.
1. 외국인들에겐 너무 어려운 평창과 평양
한국을 소개하면서 곧 있으면 시작하게 될 평창올림픽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발표를 하면서 '평창'을 발음하기를 굉장히 힘들어했다. "Pyeongchang 피이...엉~~창???". 확실히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힘든 단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수도인 '평양'과도 혼용하기도 하여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문 표기식으로 보니 나마저도 헷갈릴 정도였으니 이해할 만하다. 나는 평창과 평양을 소리 내어 발음해주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려주었다.
2. 체코인들은 북한의 핵개발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수업에 참석한 교수님과 학생들은 북핵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의외였던 부분이다. 나는 그들이 북한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체코 본토까지 닿는다는 것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북핵 문제는 단순히 남북한,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Q: 한국에서는 피부가 하얀 것이 예쁘다고 한다. 왜 그러나??
나도 몰라서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 미의 기준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에 받아들여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더불어 성형수술에 대해서도 함께 물어봤는데, 아마도 서구적 외모가 미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듯했다. 오늘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긴 했다. 그들은 큰 눈과 높은 코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전혀 공감을 못했다. 아니 그냥 자기들 눈이 큰 것인지조차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그렇게 생겼으니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동양인들의 살짝 올라간듯한 눈꼬리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미의 기준이라는 것이 참으로 애매하다. 아마도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게 아닐까.
Q: 체코에 사는 한국인 가정에서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본인(여자)을 비롯하여 자식(딸)에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어떻나??
좀 부끄럽고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매체로 접한 내용이 아니라 그녀의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설명하기도 참 힘든 부분이었다. 조선시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교 사상부터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만연하던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해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성 지위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고 있고, 앞으로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Q: 남한과 북한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있다고 들었다.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나? 그들의 생활은 어떻나?
이산가족에 대한 질문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이산가족을 본 적이 없고, 분단된 지 거의 7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남아 있는 이산가족이 거의 없다고 답변했다. 이 문제는 남북 분단이 가져온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 아닐까. 가족들이 떨어져 살면서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사실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당사자들에겐 힘든 일일 것이다. 한 겨울처럼 얼어 있는 남북한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어 그들의 응어리도 함께 녹아내렸으면 좋겠다.
Q: 체코가 서유럽이라 생각하나, 동유럽이라 생각하나?
여긴 답이 정해져 있다. 센트럴 유럽(Central Europe)이라 대답하면 된다.(ㅋㅋㅋ) 사실 정말 지도로 보면 체코는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들은 체코를 유럽의 심장이라 부르며 지리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짐작컨대 체코 사람들은 과거에 동유럽으로 분류된 것을 상당히 분해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던 체코는 독립을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미소 간의 체제 경쟁으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고, 그때 체코도 함께 편입된 것이다. 그 이후 40년 동안 공산주의 시절을 보내 된다.(독립국으로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의 간섭이 심했다) 만약 그때 서유럽으로 분류되었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더욱 많은 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체코 사람들은 공산주의 시절을 싫어하고, 러시아도 안 좋아하는 편이다.
Q: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강한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질문이 나오자 하나둘씩 볼멘소리를 했다. 아마도 체코의 현 정치 상황을 반추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지 싶다. 얼마 전 있었던 총선에서 친러, 공산주의, 반이민의 성향을 띤 정당들이 승리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모멘텀이 지속되어 민주주의를 아주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처럼 체코도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지만 지역격차, 세대차이 그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투표에 의해 민주주의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할 우려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체코는 1968년 프라하의 봄, 1969년 얀 팔라흐 분신자살, 1989년 벨벳혁명 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그들의 노력이 물거품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 초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말고도 1) 한국과 일본- 중국의 관계 2) 한국의 날씨 3) 통일에 대한 생각 4) 탈북자를 실제로 만나 보았는지 여부 5) 나의 군 복무 6) 북한에 가 본 경험이 있는지 7) 학창 시절에 배우는 외국어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질문도 받았다. 혹여나 나의 의견이 한국의 상황을 왜곡하여 대표하게 될까 봐 걱정 많이 했었다. 다행히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에 대한 질문들이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토론 속에서 체코의 모습들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 ) 생각보다 K-pop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강남스타일정도는 ppt 슬라이드에 소개될 줄 알았다. 그동안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긴 했지만, 특정 마니아층을 제외하고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맞는데, 어느 정도인지 원체 감이 안 잡힌다.
17.12.0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