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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Mar 25. 2019

한국 언론에 문제가 있을까?

언론이 가질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1.

흔히 <저널리즘의 3대 가치>라고 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외우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공공성·공익성·진실성이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나는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저널리즘이 지켜야 하는' 가치로 여겨왔는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책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즉, 공공성이나 공익성이 언론에게만 지어진 책임이 아니란 것이다. 사실 정치인도 지켜야 하고 교사도 지켜야 한다. 하물며 공무원도 검찰도 경찰도 교수도 변호사도! 그냥 한 사회 내에 살아가는 사람, 시민 또는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책임이 주어진다.

기업인이나 평범한 주민이라고 이를 어겨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기업인도 공공과 공익을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기업 활동, 수익 활동을 해야 하고(예를 들면 세금을 잘 낸다던지, 환경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던지, 분식 회계를 해선 안 된다던지 등) 우리 옆집 아저씨도 공공과 공익을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살아야 한다(모두 쓰레기 무단 투기, 자동차 불법 주차 금지!).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학자들이 '공공성 공익성 진실성을 지키시오!'하고 정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하면 입 아프다. 우리 모두 다 안다. 언론이 가지는 영향력과 진정성('OO신문'이 썼으니 맞는 말일 거야!' 같은 것)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지상파나 종합 일간지는 물론, 영향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각종 인터넷 매체, 사이비 매체(?)들도 진정성 때문에 지켜야 한다. 공공성 공익성 진실성을.




#3.

자, 그럼 생각해보자. 한국 언론에 문제가 있을까? Sure, Why not!

공공성과 공익성을 지키는 언론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공성=공공과 관계 있는 성질, 공익성=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성질. 이 둘을 정의하는 데도 많은 여백과 공간이 필요하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정리해두자.)

대부분의 언론은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 사익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1)사주나 기자 개인, 매체 전체가 자신들의 '부'를 불리는 데 열중하거나,

2)해당 매체가 갖는 영향력과 '명예'와 장악력을 높이는 데 관심 갖거나,

3)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 세력, 사회 세력 등 '권력'을 비호하는 데 힘을 쏟거나,

4)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특정 정치 세력, 사회 세력 등 '반대 급부 권력'을 힐난하는 데 힘을 쏟는 등이다.




#4.

실체는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한 '박수환 문자' 기획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등 신문임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기사 거래 정황을 담은 보도이다. 우리는 기사나 칼럼, 사설이라고 생각했던 글들이, 다 광고였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의 시민들은 언론이 말하는 대로 다 믿진 않는다. 그러나 아직 그렇다고 믿는, 세태에 뒤쳐졌거나, 여전히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여론이나 시민들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파시스트적인 몇몇 기업인들은 조선일보에 돈을 대고 기사를 거래했다. 파리바게트 홍보나 OB맥주의 소독제 사건 무마 등이다. 그런 부탁을 할 땐 조선일보 기자에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거나, 에르메스 스카프를 전해주거나, 전별금을 보내주는 식의 뒷돈(?)이 같이 갔다. 아니면 평소 고객 관리를 위해 조선일보 기자들의 자녀를 자사에 채용해주거나.

또는 이번 정준영 불법 촬영물 성범죄와 관련된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도 문제를 느낄 수 있다. '단독'을 달고 '피해자가 누구누구인 것으로 밝혀져'와 같은 피해자 추정 보도를 내는 것이 그 예다. (채널A의 박건영 기자는 꼭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건영 씨가 벌인 짓이에요? 아니면 데스크가 시켜서 하셨어요?) 또는 불법 촬영물에 대한 시민들의 호기심에 기대 그 촬영물 내용을 상세히 적시하거나(동아일보, 왜 그러셨어요?) 그 촬영물에 연예인 누가누가 있다더라 하는 지라시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알려주는 일. 모두 아주 희한하고 별 기자 윤리가 이렇게 없는 놈들인가 싶은 보도들이다.




#5.

1등 신문이라고 하는 놈들을 포함해 언론은 이 왜 이런 일을 했을까? 공익성을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주 일가나 고위 간부들, 편집국 내 연차 꽤 있는 기자들, 그 아래 평기자들까지. 시민과 역사가 이뤄놓은 언론의 자유와 민족이 지켜낸 신문 지면과 공공이 잠시 빌려준 방송의 전파를 모조리 사유화하는 일이다. 그게 돈을 벌기 위해서든, 명예를 얻기 위해서든, 권력을 잡기 위해서든. 취재나 보도를 위해서 셋 다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근데 그게 기사를 팔고 호기심만 자극하는 보도를 내서 이룰 일들은 아니다. 얻는 과실에 비해 잃는 중요한 가치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서, 직업 윤리를 팔아 먹고 싶은가?




#6.

또는, 이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돈을 받고 기사를 팔아왔을지도 모른다. 관행은 관행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관행'이 나쁘다는 걸 모른다.

기사 거래가 왜? 남들 다 하는데? 예전부터 다 해왔는데?

그리고 돈을 받는 건 돈을 받는 거고, 우리가 사회 부조리 밝힌 게 더 많은데? 우리가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만데? 우리가 잘한 일은 모른 척하고, 이거 좀 받았다고 이렇게 화살을 퍼붓나?

이건 공익성에 대한 자의적 해석, 공익성의 엄격한 잣대에 대한 의식 부족 등에서 비롯된다.




#7.

또는, 옛날에 이런 매체가 소수라서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덜 줬거나, 아니면 정말 힘있는 매체가 제대로 보도해왔기 때문에 다른 소수의 비리 언론들이 묻혔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현재는 저런 매체가 다수가 됐다는 방증일테고, 후자의 경우라면 정말 힘있는 매체가 없어졌거나 정말 힘있는 매체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이 난리가 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8.

(옛날에도 똑같았는데 이제야 드러나 우리가 알게 됐다, 는 논의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예전에도 속보 경쟁은 있었는데? 와 같은 질문 말이다. 그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잘못이 희석되는 건 아니니까.)





#9.

그렇다면 이들의 공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그들이 언론을 사유화해서 얻고 싶어하는 돈/명예/권력이 덧없음을 알려준다?

 1-1)언론이 기사를 팔아 돈/명예/권력을 얻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려 스스로가 부끄럽도록 만든다?

 1-2)돈/명예/권력 없이 성공한 저널리스트의 표본을 보여준다?

 1-3)1-2의 반대의 경우, 즉 이를 쫒다 망한 저널리스트를 보여준다?

 1-4)돈/명예/권력을 쫒지 않고도, 그 걱정을 하지 않고도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돕는다?

2)사익보다 공익성을 추구해야 함을 알려준다?

 2-1)뉴스를 제작하는 각 단계에 저널리즘 윤리 교육을 한다? 즉, 사주/고위 간부/편집국 N차 기자/평기자 등에게 저널리즘 교육을 제공한다?

 2-2)뉴스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즉 고등학생/대학생/언론고시생/취업준비생 등에게 저널리즘 교육을 제공한다?

 2-3)뉴스를 소비하는 이들에게 저널리즘 리터러시 교육을 한다? 언론 소비자 교육을 한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들이다.




#10.

1)과 2)는 공익성에 초점을 맞춘 대응책이고 그외의 생각들도 정리해 두겠다.

3)언론도 권력이다! 감시하고 견제한다?

 3-1)매일 모니터링을 한다?

 3-2)윤리위원회나 심의위원회에 회부(라고 쓰고 찔러넣는다고 읽는다)한다?

 3-3)앞에 찾아가서 1인 시위라도 한다?

4)정말 힘있는 매체, 예를 들어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게끔 한다?

 4-1)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4-2)공영방송이 나아갈 길을 정책적으로 제안한다?

5)뉴미디어 환경에서 언론이 살 길에 대해서 (그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인데 잘 못하는 것 같으니 대신) 모색해본다?

6)시민들과 함께 언론 운동을 열심히 한다?




#11.

언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 '언론 사유화'와 '전무한 공익성'을 해결하려고 보니 정말 해야 할 일이 많다. 위에 언급한 것만 해도 갈래가 6가지이고, 그 아래 하부 항목은 더 많으니 답답한 마음마저 든다.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고 또 시작하려니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언론이 공익성에 대해 깨치기 위해선, 언론이 직접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기업(홍보팀)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정치권이 해야할 일이 있고,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혼재돼 있는 여러 방안들을 하나하나 잘게 흩트려 놓으면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더욱 명확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민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 시민단체는 언론이 직접 해야 할 일, 기업이 또 정치권이 해야 할 일도 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모여있는 자발적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참 언론인 교육'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고, '언론 감시 모니터링단'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을 조직해 1인 시위에 나설 수도 있고, 공영방송 및 언론의 정책적 방향에 대해 제언을 할 수도 있다. 또 시민들을 조직해서 그들끼리 언론 운동을 해보자고 선동할 수도 있다.




#12.

다만, 앞선 글에서 밝혔듯, 나는 '시민의 연대를 무한대로 그려나가는 과정'에 시민단체의 힘과 가치와 역할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시민들이 언론을 보게 하고, 똑바로 보게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보게 하고, 함께 모이게 하고, 문제를 지적하게 하고, 목소리를 내게 하고, 대안을 마련해보게 하는. 이 일련의 사이클을 만드는 게 우리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여력이 있을 때 언론이 스스로 해야 할 일, 예를 들어 언론인 윤리 강령을 만들거라 준수하라고 잔소리하기, 기업이 해야 할 일, 즉 언론에 상납하지 않기나 책 잡히지 않기 운동, 또 정치인이 해야 할 일, 방송법을 제대로 개정하게 하고 정책적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일 등을 해 나가는 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13.

앗!

그래서 언론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뭐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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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한국의 언론문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기술해주십시오'라는 문항에 대해 제가 생각한 답을 적은 글입니다. 저작권은 '필경'에 있고, 무단전제 및 복제는 금합니다. 대신 저와 언론 문제를 토론하고 고민하는 것은 대환영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이 당신의 문제 의식이 되었다면, 출처를 밝히고 어디든 쓰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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