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일 땐 보이지 않던 것들
선배가 되었다
복이 넘치게도 본받고 싶은 선배들 사이에서 막내로만 지내왔다. 업무 처리, 인사와 태도, 말투와 감성까지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직도 롤 모델이 누구냐 이야기하면 전 회사 선배님들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도 내 고민 상담을 해주시는 전 회사 팀장님은, 업무 일로 혼을 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오히려 잘못된 것은 '이렇게 고쳐보자!' 제안해주시고 '잘했다'는 칭찬을 더 많이 해주시던 분이었다.
내 후임으로 근무했던 P 역시 같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런 상황에선 부하직원이 절대 나태해질 수 없다. 더 긴장하게 된다.
혼나기가 두려워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망하게 하는 것이 두려워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긴장감을 가지고 수년을 후배로만 지내다 선배 입장에 서려다 보니 답답하고 막막하다.
후배들의 실수에서 내 과거 모습이 보인다. 후배들의 모습에 화가 날 때마다 선배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죄송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뒤섞인 눈물이다.
나는 인사를 참 못하는 후배였다. 우리 팀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시지 않는 임원분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런 어른들에겐 아예 인사를 하지 않았다. 받아주지 않으면 뭐하러 인사를 해야 하나 하는 건방짐과 예의 없음의 나날들이었다. 한번은 옆 팀 팀장님께서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라고 혼을 내신 적도 있었다.
선배의 입장이 되어보니, 후배들의 태도가 얼마나 주변 선배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것인지 알게 된다. 인사 하나, 사소한 것 같은 태도만으로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그래서 요즘은 더 밝게 더 열심히 주변 모든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닌다. 선배같은 존재인 대표의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턴 경험을 포함해 28살에 세 번째 회사에 자리 잡게 되었다.
지난 회사 생활에서 사람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내로, 인턴으로, 사원으로 마냥 사랑받았다. 선배들, 팀장님들도 한결같이 좋았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누구나 공감한다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였다.
친구들에게 "후배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아서 힘들다"라고 이야기하니 "너도 꼰대가 되었구나"고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나도 꼰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길을 걷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전 회사 선배인 사수님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려다 멋쩍은 기분에 카톡 대화창을 눌렀다. 프로필에 걸려있는 얼굴만 봐도 눈물이 흘렀다.
괜히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고, "조만간 밥 얻어먹으러 갈 거예요" 라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멘티나 동생이라는 존재와 후배라는 존재는 또 다른 것 같다.
스물여덟이 29일 남은 오늘 나는, 꼰대인 선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