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모 Jan 17. 2024

공공장소 사진촬영, 초상권 주장?!

너무 넓은 초상권 보호, 답답해진 사진 문화


이 글은 중앙일보 기자 블로그인 [ J plus ]에 2015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썼던 글이다.

[ J plus ]는 중앙일보 디지털 전환에 따라 기자 블로그 운영을 멈추면서 폐지되었다.

옮긴 글 중 몇몇 글은 제목과 내용을 약간 수정했다.


공공장소에서 사진촬영... 초상권 주장과 관대함.

입력 2015.11.08 23:52

J플러스로 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19029278 복사


신문을 펼쳐 보시죠. 아! 요즘은 모바일앱을 통해 보고 계시다고요? 뭐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신문을 보시는 게 좋습니다. 신문을 보시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나 해보겠습니다. 신문에 사용된 사진들을 보시죠. 
자 신문에 사용된 사진들은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 같습니까?

사진앵글, 색감, 구도, 조명...... 여러 의견이 나오네요.
위에 나온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사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입니다. 신문이라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세상 돌아가는 일 대부분을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이죠. 태풍,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생긴 영향도 사람들이 받습니다.

1면부터 신문을 넘겨 보시면 각 면마다 사람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많이 보일 겁니다. 유명인사가 아니라도 이야기가 있는 보통사람들도 신문에 실립니다. 이렇게 신문에 자주 실리면 유명인사가 되기도 합니다.

신문에 실리는 사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게 사람이란 것은 아셨을 겁니다.
그럼 신문에 실린 사람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어딜까요?
금방 답이 나오는군요.
맞습니다. 얼굴입니다. 사람의 얼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얼굴의 표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매일같이 등장하는 똑같은 정치인이라도 다른 모습을 찍기 위해 사진기자들은 신경을 씁니다. 단순하게 보이는 인터뷰 사진 한 장이라도 사진기자는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중 한 장을 골라 신문에 싣는 것이죠. 인터뷰할 때 가끔 왜 그리 많이 찍냐며 귀찮아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사진기자가 많이 촬영할수록 좋은 표정이 신문에 실린 확률이 높아집니다.
독자분 중에 사진 찍힐 기회가 생겼는데 많이 촬영하기 싫으시면 간단히 찍으셔도 됩니다. 약간 뻣뻣하게 나오든 좀 멍청하게 보이든 상관이 없다면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탤런트 김상중 말투 아닙니다. ^,^;) 요즈음 걸림돌이 하나 있습니다. 걸림돌 때문에 이제는 한국신문에서는 하나의 형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촬영하는 사진, 혹은 대형 행사장에서의 사진들의 경우입니다.
신문에 싣기 위한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공개된) 공공장소에서 사진촬영이 필요할 경우도 생깁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요즘 들어 지하철 내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보기란 가뭄에 콩나물 보듯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게 일상적이죠.
이런 기사를 준비하면서 관련사진이 필요합니다. 그럼 사진기자는 현장에 나가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리고 신문에 실으면 됩니다.

여기서 좀 전에 말한 걸림돌이 등장합니다. 흔히들 초상권이라는 문제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촬영되었다 해도 허락 없이 촬영된 개인의 모습은 신문에 싣지 말라는 것이죠. 이렇게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사이입니다.


신문업계는 이런 시비를 피하기 위해 결국 등장 얼굴에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거리풍경이 들어간 사진에 등장한 이름 모를 시민들의 얼굴은 모자이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박람회 같은 대형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도 가려지게 됩니다.

  

물론 촬영한 사진을 이상하게 비틀어 사용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신문사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의 기록물이 됩니다. 현재와 같이 진행된다면 긴 시간이 지난 뒤 당시를 보여주는 사진에 등장한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이런 분위기 사진이 될 겁니다.

당시 건물이라든가 행색은 보이는데 사람 얼굴이 없으니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여러 사진 중 사건, 그것도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에 이런 초상권의 문제가 개입되면 쉽게 비극이 전달될까요?

초상권 문제뿐만 아니라 벌거벗은 여자아이를 가리기 위해 몸까지도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원본 사진과는 모자이크 처리한 것 차이뿐이지만 사진에서 주는 충격은 상당히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닉 우트가 1972년 촬영한 '베트남-전쟁의 테러' 사진입니다. 닉 우트는 이 사진으로 1973년 퓰리처상을 받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그냥 구경거리로 전락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참상을 사진기자들이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미국 내 반전여론이 거세지고 결국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이후 미국은 후세인 정권하의 이라크를 침공할 때 기자들이 작전부대의 통제하에서만 취재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마도 미군은 베트남전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에 이런 방식을 사용했을 겁니다.

이와 반대로 기쁨의 순간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라바 베더가 촬영한 '터져 나오는 기쁨 ( Burst of joy)'입니다.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됐다가 1974년에 풀려나 귀향하는 아버지를 맞이하는 가족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모자이크가 되어버린 순간 이게 뭔가 싶은 사진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신문사진에서 사람이 빠질 수는 없고, 등장한 사람의 얼굴이 사라진다면 신문사진의 의미도 대부분 사라짐을 보실 수 있습니다.

초상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서 요즘 사진기자들의 사진앵글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제가 초년병 시절에 사람의 뒤통수를 찍으면 이게 사진이냐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뒤통수를 찍습니다. 사진에 모자이크를 하는 것 보는 낫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대상에 다가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멀리서 촬영합니다. 사람이 작게 나오면 신문인쇄 된 지면을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웃포커스로 촬영합니다. 허락을 얻은 사람 외에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리게 만드는 것이죠.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고 스마트폰 사진기능이 높아지면서 몰카 위험도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진문화 발전을 위한다면 공공장소에서 사진촬영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엉뚱한 설명을 붙여 사용한다든가 해서 피해가 생긴다면 엄중한 처벌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고 말도 안 되는 댓글을 다는 못된 버릇도 혼내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한국의 사진문화 발전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겁니다.

사진을 배운 뒤 왜 맨날 풍경만 찍어야 합니까?(그것도 남이 촬영했던 곳을 찾아가 똑같은 사진을 만듭니다.) 풍경사진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사람 촬영하는 것을 겁을 내고 피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겁니다. 우리 주변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컴퓨터 배웁시다. 코딩 배웁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