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물은 기념비가 될 수 있다. 특히 관계된 사람에게는...
호암아트홀과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이 완전히 철거됐다. 철거 후 재건축 예정인데... 공사장 가림판에 걸린 안내문에는 2023년 2월 7일부터 2025년 6월 30일까지 해체한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공사속도가 빨랐는지 2월 말 현재 이미 건물은 사라졌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건물은 인간보다 생존력이 길다. 그렇기에 고려시대 무량수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런 긴 수명은 기념비적 역할을 한다. 오가면서 눈길만 주던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 십 년을 이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무형의 기억을 현실 속에서 가장 쉽게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암아트홀은 1985년 준공된 중앙일보 빌딩 부속시설처럼 있었다. 사실 중앙일보 빌딩에 같이 있던 호암아트홀과 호암갤러리는 전두환 정권 덕(?)에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5공이 단행한 언론통폐합 과정에 TBC 동양방송이 KBS에 흡수되자, 방송국 공개홀로 사용하려던 공간을 부랴부랴 호암아트홀이라는 무대로 만든 것이다. 그래도 운영을 나름대로 괜찮게 해서 작은 무대지만 질적으로 괜찮은, 한마디로 호암아트홀 공연은 급이 다른 곳으로 만들었다. 역시 방송국 스튜디오로 사용하려다 이때 같이 생긴 호암갤러리도 수준급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인정받았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을 TBC방송과 중앙일보가 함께 쓰는, 한마디로 중앙미디어 그룹 본산으로 쓰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 짓는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건물 외벽을 붉은 대리석으로 둘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건물 외관을 갖게 되었다. 화장실 변기도 수입산 변기를 사용할 정도로 고급스럽게 지어졌다. 또한 큰 대지 위에 거꾸로 된 'T'형으로 건물을 세워 22층 회장실에서 보면 개방감이 상당했다. 여기에 더해 남쪽 방향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 가릴 것을 우려해 주변의 작은 주택 및 건물을 매입해 공원을 조성한 뒤 서울시에 기부채납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주변이 개발되고 빌딩이 들어서면서 이 공원에 AIA타워가 들어섰고 기존 공원은 순화더샵주상복합상가가 들어선 방향으로 길게 변경됐다.
TBC 동양방송국과 함께 중앙일보도 함께 사용하는 건물이라 지하 3층에는 신문을 인쇄하는 거대한 윤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지하 공간이 아니라 엄청나게 크고 천장이 높은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지대가 낮은 서소문 공원 방향에서 대형 트럭이 접근할 수 있는 발송장으로 연결되어 신문 인쇄 후 곧바로 발송 및 배달이 가능하게 만든 구조였다. 이런 구조이기에 지하주차장은 비슷한 빌딩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대신 건물 주변에 야외주차장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주차장이 작은 편이었다.(사실 건물 준공당시에는 국내에 차량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 정도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또한 지하 1층에도 방송 스튜디오용 공간이 있었는데 결국 이 공간은 중앙일보 출판국 사진부의 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 엄청 큰 공간인 이곳은 자연스레 사진 촬영을 위한 국내 최고의 공간이 되었다.
훗날 JTBC가 만들어지면서 호암갤러리와 호암아트홀이 원래 목적대로 한 때 사용됐지만, 신축한 상암동 사옥으로 회사가 중앙일보와 함께 옮겨갔다. 빌딩 주인인 삼성생명이 사무용 빌딩으로 재건축하면서 호암아트홀은 규모를 키워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은 IMF 사태 당시 삼성생명에 팔렸고, 중앙일보와 JTBC는 임대해서 사용 중이었다.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은 방송국용 빌딩이라 외부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보안을 강화한 폐쇄적인 구조인데 이는 일반적인 회사 사무실 용도 빌딩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했다. 또한 중앙일보 편집국이 있던 3층 같은 경우도 층고가 상당히 높았는데 바닥에 케이블 등을 설치한 뒤 마루를 놓기 위함이었다.
호암아트홀_중앙일보 서소문 빌딩 해체철거 (사진 모아 만든 동영상)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_호암아트홀 재건축 위한 철거작업 (짧은 동영상 모아 만든 동영상)
이제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은 사라졌다. 붉은 건물 속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기억에는 남아 있겠지만 이 또한 사라질 것이다.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을 상징하면서 1층 현관 앞에 있었던 '배달소년상'이 철거되어 중앙일보 자회사 미디어프린팅넷 부산공장 주차창 한쪽에 방치되어 있다는 2017년 12월 27일 자 아주경제 기사를 봤다. 부산의 주차장에 가있는 서울의 '중앙일보 배달소년상', 대체 무슨 일이...
서울 상암동 신축 사옥으로 '배달소년상'을 옮겼는다는 소식은 듣진 못했다.(혹시 옮겼다면 글을 정정할 것임)
상암동 사옥으로 이전하기 전 중앙일보가 있었던 중앙일보 구관도 철거됐다. 주변 대한통운 건물, 동화빌딩 등도 함께 헐리면서 이 주변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예정이다. 중앙일보, 동양방송의 흔적은 이제 서소문로, 순화동에서 사라졌다.
중앙일보 서소문 빌딩은 사라지고 지상 38층, 지하 8층 규모의 업무·판매시설, 문화 및 공연장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된다. 이에 따라 호암아트홀은 1100석 규모인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재탄생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죽고 환경도 변화한다. 우리가 생활하던 건물 중 미래에 남을 건물은 얼마나 될까? 경복궁 같은 공공기관 아니면 무량수전 같은 종교시설만이 남을까? 과거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민간시설이 일부라도 남아있길 바라는 것은 사치일까? [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