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말은 다양한 분야에 붙곤 한다. 요즘 욕먹기 십상인 정치 분야에도 예술이란 말을 붙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예술이란 말이 붙으면서 무언가 있어 보이고 완성된 그 무엇이며 감동을 주는 그 어떤 것이 된다. 결국 현실에서 벗어난, 좀 더 아름답고 편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 된다. 앞서 말한 예술이 붙은 정치는 최종 결괏값에 영향받는 일반 국민들에게 더욱 좋은 일이기에 예술이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적극 행위자인 정치인들 사이에 어울림과 갈등의 조화 혹은 배분이 적절함을 이뤄 예술 경지에 올랐다는 칭찬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문화 분야에 많이 쓰인다. 전통적으로 그림, 조각 같은 미술 분야... 음악, 공연 같은 분야다. 카메라 발명 이후 생겨난 사진 그리고 영화 분야도 초창기에는 사람보다도 광학⋅화학 등과 같은 외부 요인이 주는 정밀함 때문에 예술 칭호 붙이기를 꺼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이상해진 세상이다.
예술이라는 말은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구체화된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손에 잡히는 물성을 지닌 물건이 되면서 경제적인 실체인 숫자가 함께 한다. 그래서 예술에 관심이 적은 사람 기준으로는 황당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의 포장술과 뻥튀기가 일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에 가면 일단 주눅이 든다. 높은 천장과 넓게 빈 공간, 게다가 대부분 흰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벽이 주는 경계심은 관람자의 주눅을 강화한다.(흰 벽은 쉽게 오염될 수 있기에 다가서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판과 다름 아니다.) 이는 사실 전시장이 주는 외적 요인이고 형식적인 기본 사항이다. 게다가 비싼 물건이 된 작품 집합소이니...
좋은 전시는 결국 그 안을 채운 작품이다. 좋은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가 뿜는 어떤 기운, 혹은 오라(aura)를 느낄 수 있는가에 달렸다. 좋은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면서 자연스레 오라(aura)도 채워 넣는다. 일부러 채워 넣지 않아도 완성된 작품이 스스로 발산한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받는 느낌이 충격, 감동, 웃음 혹은 비극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전시 공간이라도 채워진 작품에 따라 다른 분위기가 되는 이유다.
여기 한 사진전이 있다.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중앙일보 사진기자의 첫 사진개인전이다.
사진기자는 사진가라는 말이 품고 있는 예술 감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일간 신문에 근무하는 사진기자는 사건⋅사고 현장 사진을 주로 촬영하고 급박한 마감에 쫓겨 사진에 예술을 담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사실 그렇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예술과 감동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담기도 하는 게 사진기자 들이다. 김경빈도 그런 사진기자 중 하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감동이라기보다는 편안함이 있다. 마치 햇빛 좋고 바람 선선한 날 언덕에 앉아 너른 풍광을 내려다보면서 깊게 숨을 마신 뒤 천천히 내쉬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기에 작품 하나하나가 지나치려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바로 그런 오라(aura)다.
그다지 크지 않은(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공간을 적절하게 채운 사진 작품들이 주는 힘이다. 압도적으로 크게 키운 사진이 갖는, 크기에 비례한 압박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키운 사진은 문 앞에 전시된 사진 1장뿐이다.
사진크기에 의한 긴장감은 이때뿐이다. 그 마저도 바람에 흩날리는 코스모스 꽃들이기에 크기가 주는 압박감은 상당히 감소한다. 그저 가을바람이 스며 나올 뿐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진들은 우리가 볼 수 있었지만 잠을 자느라 보지 못했거나 (새벽 혹은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에 촬영한 사진이다.) 드론을 이용해 높은 위치에서 촬영하거나, 최신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촬영한 사진이다. 물론 전시된 사진들이 이런 장비나 시간 선택에 의해 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하기 위한 김경빈의 궁리와 노력을 쉽게 폄하하면 안 된다. 궁리 끝에 작업한 결과에 항상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재촬영, 그렇게 했는데도 실패로 결말짓기도 다반사다. 다만 원하던 것을 촬영 못했지만 소위 '얻어걸리는' 사진이 가끔 생기기에 그가 웃음을 머금게 된다. 자동 초점 기능 있는 카메라 셔터는 원숭이도 누를 수 있고, 촬영 결과물이 기대 이상일 때도 있다. 이런 우연도 사진 특성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특정 사진가에게 많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촬영 대상을 찾고 최적 조건을 탐색하던 과정 중에 생긴 우연은 사진가가 지닌 힘의 한 부분이다.
‘와이드 샷’은 2007년 창간된 중앙SUNDAY에 지금까지 이어진 사진 특화 지면이다. 처음에는 470×646㎜ 크기 베를리너판 신문 양면에, 몇 년 전부터는 470×323㎜ 사이즈 신문 한 면에 사진 한 장과 1000자 이내의 사진설명을 게재한다. 휴일 아침, 독자들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사보다는 ‘쉼’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도록 만든 페이지다.
중앙선데이에서 나와 같이 근무할 때 와이드샷 지면 문패를 담당 기자 이름을 함께 쓴 [김경빈의 와이드 샷]으로 적어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이렇게 되면 통신사 혹은 다른 사진기자의 도움 없이 매주 지면을 자신이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성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뒤 사실상 본인이 매주 지면을 제작한 전담 사진기자가 된 것이 현실이다. 지면 문패만 없을 뿐이지 회사 내에서는 김경빈의 와이드샷이라 여겨졌고 눈 밝은 독자라면 매주 사진 바이라인에 '김경빈 기자'가 등장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전시장에는 김 기자가 지난 7년간 와이드 샷 게재 사진과 미공개 사진 90여 점을 볼 수 있다. 일부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전시회 주제를 ‘자연’으로 잡았고 선택한 사진들이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 풍경이다. 김 기자는 약간의 콘트라스트 조정과 실제 현장에서 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포토샵을 사용했다. 과한 색감 보정이나 수정이 없는 사진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편안하게 자연 속에 들어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새벽안갯속 김제 평야의 햇빛을 볼 수 있고 아침 햇살 아래 갯벌 사이로 흐르는 옥색 바닷물을 본다. [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