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방향성
첫 소설이었던 <라포 토크>는 그 시기의 상징물로 남았다. 깊은 웅덩이에 빠진 나를 구해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의 긴 밧줄. 그 밧줄을 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스며들면 되니까. 그리고는 잊었다. 라포 토크를 손에서 놓았던 5년 전, 우연히 소설 작법 수업을 들었다. 이후 소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내 마음에 고인 쓴 물을 받아내는 곳이 아닌 세상의 이면을 담아내는 곳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쓴 글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소설을 쓸 때 작법의 형식이나 요소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싶어진 당시의 나에게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작법을 공부한다고 다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회의 결핍이 만든 주인공들과 함께 일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게 한 대 맞고 난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급히 현실로 되돌아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 빠져 있던 세상이 한없이 낯설어지다가 무의미해지더니 다가가기 힘들 만큼 멀어졌다.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 헤맸고 사회의 결핍이 부각된 나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아이를 가지기에 늦은 나이였다. 배 속의 아이를 잃어버린 지 5년이 지난 사이 나이 마흔을 넘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간 산부인과 의사는 정중히 난임센터를 권했다. 말로만 듣던 유명 난임센터에 발을 디딘 첫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낯설고 두려운 감정이 두 시간가량 지속되었다. 그곳은 난임이라는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아이라는 목표 하나만 존재하는 신세계였다. 함부로 희망에 대해 말하지도, 감히 품을 수도 없었다. 인공 수정으로 시작했다가 시험관으로 넘어갔다. 약을 먹고 간호사가 놓는 주사를 맞으면 되는 단계에서 매일 자기 손으로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단계로, 복통에서 복수에 물이 차는 과정으로 넘어갔다. 기대했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자궁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절해졌다. 처음에는 가족의 간절함이 더 컸으나 나중에는 나와 남편의 간절함이 그들의 간절함을 넘어섰다. 아이가 태어나는 건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매달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맸다. 그저 아이가 오기만을 바라는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뭘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마음처럼 된 적은 없지만 어쨌든. 그때는 필사적이었다. 병원에서 아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동병상련의 감정보다 다음 달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간절함이 절정에 달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이 되었을 때 아이가 찾아왔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최상의 컨디션에 이른 뒤였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여러 번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분명 있었지만, 단언컨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열 달이었다. 놀랍게도 임신한 순간 그동안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기적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난 기쁨에 도치되어 매일 감탄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전에도 후에도 그토록 평화롭고 온유하고 따뜻한 시간은 없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새롭고 아이를 만날 설렘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그렇게 결혼한 지 8년 만에 건강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우리 부부의 바람처럼 건강했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더랬다. 아빠와 처음 만나던 순간에도 오만상을 쓰며 눈을 깜빡였다. 눈이 부신지 깜빡이다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건지, 낯선 환경이 무서웠던 건지, 아마도 둘 다였을 테지만 잊지 못할 첫인상을 남기며 우리 부부 곁으로 왔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지난 것은 다 잊혔다. 물론 현실의 육아가 더 크게 다가왔던 탓도 있지만,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 거대하게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존재가 내 삶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데도 전혀 밉지 않다니. 더군다나 이제는 아이가 없었던 이전의 시간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리다니. 이 조그마한 아이의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거하게 된 사실만큼이나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라고 불리기 전, 아이를 처음 안고 한 말이 ‘엄마야. 엄마’였다. 엄마라는 자각은 아이를 낳은 순간 자연스럽게 각인이 된 모양이었다. 아이가 배 속에서 듣던 목소리를 알아채길 기대하며 내뱉은 말에 아이는 반응을 보이며 눈을 뜨려고 노력했는데 그 자체로 뭉클했더랬다. 그 조막만 했던 아이는 태어나던 당시의 성정을 간직한 호기심쟁이로 자라고 있다. 올해로 미운 네 살이 된 아이는 자의식이 충만해져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열심이다. 스파이더맨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밥 먹고 잠을 잔다. 넘어질 때조차 착지자세에 신경 쓰며 ‘스파이더맨 같았어?’라고 묻는다. ‘손에서 거미줄이 안 나와’ 하며 낙담하기도 하지만, 악당을 물리치는 멋진 스파이더맨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토록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육아가 힘에 부치고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애쓰던 순간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잘 감당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엄마가 되어줄 것인가?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그 고민의 과정에 습작생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다. 작년부터 다시 조금씩 소설을 쓰고 있는데 쉽지 않다. 육아의 현실이 힘들어서 다시 상상의 세계를 붙잡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상상의 세계에서 멀어졌던 그때와는 다른 동기가 껌딱지처럼 단단하게 붙어있는 탓이다. 내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존재 이유, 멋진 스파이더맨이 될 아이에 걸맞은 엄마가 되고 싶다.
바닷가에서 어른 스파이더맨과 만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