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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포토크 Feb 03. 2016

[그토록 소담한] #5

체르노빌의 목소리

암울한 역사의 상징이 되어버린 '체르노빌 원전사고' 30주기를 추모하며..

몇달 전에 읽은 히로세 다카시의 <체르노빌의 아이들>에 이어 최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었다.

지난 30년, '핵'과 '위험' 두 단어를 언급할 때면 빠짐없이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등장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인간의 자만과 무책임이 낳은 충격과 공포의 산실이다. 정치적 이념과 종교, 사람의 욕심과 투쟁심으로 발발한 기존 전쟁가 달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을 예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성'과의 싸움.

피와 재로 가득한 회색빛 전투를 떠올린 사람들은 전혀 다른 실상 앞에서 적잖이 당황했다.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핵전쟁'의 희생자가 됐다.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화학 물질은 그들의 '세상' 모든 곳에 잠입했다. '기형' '변형' '돌연변이' '장애'는 전쟁이 남긴 인간에게 드리워진 두려움의 실체다.

유난히 녹음이 푸르렀던 4월. 나무도 꽃도 만발해 더없이 아름다웠던 봄. 죽음을 망각한 자연의 슬픈 애가(lament)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그해 체르노빌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사고 구역의 첫 방문. 거기로 가는 길에, 모든 것이 회색 재로 덮여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까맣게 그을린 채로. 브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을 떠올렸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황홀했다! 봄의 초원에 꽃이 폈고, 숲의 녹음은 부드러웠으며 봄 향기를 내뿜었다. 나는 이 계절을 정말 좋아한다. 모든 것이 되살아나고, 자라며 노래하는.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어울림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였다.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 (218/442p)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체르노빌 원전 제4호 원자로에서 사고가 터졌다. 폭발이 일어나면서 불기둥이 치솟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근방의 소방관들은 잠을 자던 중 옷도 갖춰입지 못한 상태로 출동했다. 역시 무방비 상태로 투입된 군 헬기 조종사들은 납과 모래를 원자로에 투하했다. 징집된 일반 당원들은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땅을 파는 등 땀으로 샤워를 하며 원전 복구 작업에 나섰다.

그 시간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바라봤다. 그도 성이 안 차 줄지어 자전거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어른들은 그때 알지 못했다. 호기심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거라는 사실을.

이들은 모두 피폭됐다. 원전 사고를 가까이서 본 아이들은 눈이 멀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고, 피란 중 가족과 격리된 상태에서 원전사고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라는 당국의 명령 하에 이름 모를 병원에 흩어져 죽음을 맞았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중..)

피폭된 어른들도 격리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들을 오염시키고 끔찍하게 죽어갔다. 사고 이후 5년 동안 사망한 사람은 7천 여명, 치료 받은 사람은 70여 만 명에 이른다.

살아남은 아이들과 어른들은 집과 본향을 잃은 채 다른 지역의 친인척, 이웃들의 외면 속에서 외로움과 질병을 껴안고 살았다. 체르노빌 사고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방사성에 노출된 사람들은 연구대상이 됐다. 당국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원전 사고로 인한 질병을 '방사성 공포증'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망상' 정도로 치부했으나 소련의 몰락과 해외 의료진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는 길이 열렸다. 아이들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늘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웃지도 뛰어다니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자꾸만 잊어버리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픈 아이들. 풀밭에 뒹굴고 나무를 타고 수영을 해본 경험이 이 아이들에겐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줄 수는 있지만, 어떻게 아이들에게 세상을 돌려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돌려줄까요?" (232/442p)

아이들의 미래를 앗아간 사고 이후의 세상. 도망자와 망자, 들짐승과 걸인,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은 체르노빌. 여전히 숲은 아름답고 열매들이 탐스럽게 열리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서로를 피한다. 사람이 무서운 탓이다. 체르노빌은 도망칠 곳 없는 세상 끝에 내몰린 이들의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람들은 내몰린 세상 속에서 가족과 영혼을 지켜왔다.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가족의 유품을 간직했다. 또 다시 잃을까봐 주변 사람, 세상과 싸웠다. 방사성에 피폭된 가족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살아나길 기다렸다. 방사성도 사랑의 힘 앞에선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체르노빌 원전은 여전히 폭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나라의 원조 덕에 지금은 '아르카'라는 새로운 방호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새 석관의 수명은 100년. 아마 이후에는 더 튼튼한 석관이 덧씌워질 것이다. 새로운 석관으로 위험을 한 겹 덮은 셈이다. 그러나 아픈 기억들은 덮어놓은 석관을 뚫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억지로 덮어놓은 아물지 않은 상처, 이제는 제대로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두렵다고 말하는 체르노빌 피해자들이 다시 사랑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마음에 회복의 봄이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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