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쓰는 글이다.
오랜만에 삼화고속을 탔다. 그래서 쓰는 글이다.
몇년 전 인턴 노릇을 하면서 삼화고속 관련 기사를 쓴 일이 있었다. 그걸 아이템으로 내놓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궁금해서.
그 때 나는 그 버스를 자주 탔었는데, 같은 노선인데도 어떤 버스는 6-70명 가까운 사람을 태운 채 고속도로를 달렸고, 어떤 버스는 입석을 전혀 시켜주지 않았다. 어느 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다 그게 문득 궁금해서 기사님께 물어봤었다.
왜 어떤 차는 입석이 되고 어떤 차는 안 돼요?
내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답이 돌아왔다. 삼십 분 가까이 들었던 대답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당시 삼화고속은 노사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고, 노조도 여러 개라 노동자측의 입장이 하나로 모이지도 않았다.(많을 때는 여섯 개까지 있었다고 했다.) 노조마다 회사와의 관계도, 투쟁 노선도 방식도 다 달랐다. 그 중 민주노총 소속 기사들은 회사의 일방적인 감차 조치에 반발하며 위험한 고속도로 입석 운행을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한국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 때 내게 이 이야기를 해 준 기사님은 민주노총 소속이었다. 그가 이야기 말미에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했다.
한노(한국노총) 애들은 이 조끼를 안 입어요.
그는 붉은 색이 섞인 조끼를 입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이야기가 아니겠다 싶어 회의 시간에 던졌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 후 일주일 내내 나는 혼자 삼화고속 차고지며 본사 사무실을 쫓아다녔다.
한참 더울 때였다. 찾아가면 짜증을 내지 않을까,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와서야 박카스 한 상자 사들고 오지 못했던 무신경함에 혀를 차며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기사 휴게실에 들어갔다.
오 분쯤 뒤, 나는 되려 기사들이 따라주는 냉커피를 한 잔 들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진지했다. 나는 잘 봐야 그들의 딸 뻘밖에 되지 않았고 내 명함에는 인턴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걸 다 보고 나서도 그들은 정말 진지하게, 내가 미처 묻지 못한 사실까지 말해줬다.
한 달에 370시간까지 일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 회사 버스를 탈 때 유독 기사가 차를 험하게 모는 걸 겪어 본 적이 있느냐며 그게 오줌이 마려워서 그런 거라고, 저마다 대여섯 시간씩 화장실에 못 가 쩔쩔맸던 경험을 말하며 껄껄대는 그들 앞에서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해주어서 고마웠지만 듣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는 데 화가 났다. 왜. 왜 아무도 안 들어 이걸.
그 날 들은 그들의 이야기와, 본사 사무실 담당자가 짜증스레 건네준 서류 몇 개를 들춰보고 엮어 기사를 썼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 좋지도 않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인턴 기간이 끝났다. 나는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갔다. 글 쓰는 회사에 들어가 보겠다고 논술을 쓰고 작문을 짜내며 부산을 떨면서도 내가 직접 보고 써냈던 것들은 잊어갔다. 아니 유예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를 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진짜 기자가 되면 다시 써야지. 기자가 되면.
그게 3년 전이다. 나는 내가 그걸 아직 잊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와 삼화고속 버스를 탈 일이 생겼다. 지하철은 이미 끊긴 시간이라, 버스는 모조리 만석인 채로 정류장에 섰다. 차를 보고 뛰어나갔다가 입석이 안 된다는 말에 짜증을 내는 친구에게 무심결에 말했다.
기사님 옷을 봐. 빨간 조끼를 입었으면 입석 안 되는 차야.
친구가 뭐라고 대답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친구를 보내고 다른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얻어맞듯 내 못돼처먹은 짓을 깨닫고 골이 띵했다.
잊었다. 차라리 싹 다 기억을 못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잊어도 아주 더럽게 잊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현재진행형인데 나는 그걸 무슨 생활정보 쯤으로 썼던 거다.
그 더웠던 날의 컨테이너 박스와, 기사들이 건네던 냉커피와 그들의 이야기와 한숨이 통째로 떠올랐다. 듣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빴다. 화가 났다. 버스 안이 아니었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그 날은 밤을 꼬박 샜다.
오늘도 삼화고속을 탔다. 기사님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길지만 구구절절 써 놓기로 했다. 다시 쓸 수 있을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이것도 못나 보이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