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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Joo Lee Nov 08. 2016

내가 선택한 이미지에 관해

내가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 당연하게 보이는 말은 실은 매우 혹독하다. 무엇을 그린다 가 내가 무엇인지를 말해줄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나 화두이고 쟁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무언가로 분류되기보다는 자유롭고자 노력하였다. 특정한 이미지에 메이지 않고 다양하게 그리기 위해서, 이 다양한 것들이 정당한 맥락 위에 서 있기를 바라기에 항상 최대한 성실하고 진실하게 작업에 접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던 부산풍경 시리즈 이후, 몇가지 혼란스러운 고민들이 탄생하였다. 도무지 사람들이 내가 뭘 그리는지 모르고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리즈를 그리기 앞서 조금은 구체적인 분위기, 즉 같은 시리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공통점을 그림마다 두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같은 시리즈는 같아 보여야 사람들이 이해할 것 같달까.

한가지 빠진부분이 있는데 나는 옛날사진을 그리면서 그림전시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이전의 사진, 텍스트, 영상 작업은 주로 자아와 관련된 것이었고,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기반하여 시각화하였다. 그만큼 기억의 의미는 나에게 거대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옛날사진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내 기억에서 강렬한 방점을 찍었던 철거지역 사진이 떠올라 그 이미지도 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재와 부산에 대한 질문과 목마름이 생겼고 그리하여 부산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길이었다. 타인을 설득시키기엔 확실한 이미지가 없었고 마치 나는 준비되지 못한 작가로 비춰질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믿었다. 그림은 결국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부산풍경 시리즈 즈음에 아무거나 막 그린다는 소리를 적잖이 들었다.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사람들은 말을 던지고 총총총 가버리기 일수였다. 그림을 그리면 언제나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옛날사진을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하였다, 무언가 작업의 통일성을 꿈꾸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옛날사진이 필요하였고 수많은 자료를 찾다가 80년대 학생운동 사진을 보게되었다. 그곳에는 조금은 다르기는 하여도 내 이십대가 -언제나 그리운, 언제나 빛나는- 숨쉬는 듯 하였고 이러한 새로운 열정을 마음에 품고 마침내 거대한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80년대 학생운동을 그린 시리즈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사유화 시키는 학생운동의 이미지에 불편함을 호소하였고, 나는 마치 고귀한 역사적 현장을 가볍게 치부해버린 철없는 작가처럼 보여졌다. 이 순간순간들이 나에게 내가 그리는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두렵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존재는 모두 원하지 않아도 고유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많은 시간동안 나는 내가 타인에게 폭력적이지 않도록 애써왔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연약한 사람이었고 타인의 폭력에 노출되면 그것이 너무도 아팠기에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생운동을 그린 내 그림들은 많 은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나는 몸소 느꼈다. 그래서 더욱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그림들을 사랑해주고 아껴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 시리즈 이후에 나는 몇달을 앓았고 뜬금없이 결혼도 결심하였다. 두려웠거든, 이런 내가 혼자 남겨질까봐. 아무도 모르게 힘든 시기가 고되게 지나갔다. 그림에 대한, 작업에 대한 회의도 물밀듯이 밀려왔고 뭐랄까, 다른 작가들에게 밀려날까봐도 걱정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사정으로 나는 이미지에 대하여 더욱 더 큰 혼란스러움을 가지게 되었고, 화면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지도 모호하고 -추상화는 아니지만- 글 또한 노래가사나 책에서 가져온 '내' 글이 아니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밝아졌고 가벼워졌다.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듯 하였다. 물론 진짜로 가벼워진 것은 아니고.

복잡한 곡절이 있는 내 그림들은 뜬금없이 서울의 한 상업 화랑에 한데 모여 걸리게 되었고 역시나 좋지 못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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