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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잼 Jul 14. 2023

비가 오는 이유

2023-07-14

혼란을 잠재우려 강점 코칭을 받았다. 


요즘은 혈액형 대신 MBTI를 물어보는 시대. 

자신을 살필 수 있는 테스트가 시중에 넘쳐나고 있지만, 내 생애 이렇게 큰돈을 주고 자신을 아는 테스트를 진행해 본 것은 처음이다.

갤럽 강점 검사 34를 진행했는데, 여기에 코칭비는 별도였다.

금액만큼이나 나의 간절함이 컸던 것으로 하자...


검사 결과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읽다 보니 맞네, 나 이런 사람 맞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코칭을 진행하는 중에 내가 얼마나 회피하며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는 걸 선택하며 온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우회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지 못해서 계속 도망쳤다. 


코치님은 계속 나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자책하진 말고, 그럼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 상황에서 내가 뭐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라고.

그런데 과거를 돌아본다는 상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어쩌면 아직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비가 오는 것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풀이 눕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상상력을 한 스푼 더해서 낭만적인 생각하기를 즐겨하고, 그걸 통해 삶의 통찰력을 얻는 것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삶에는 내가 이유를 알아낼 수 없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지쳤을까? 그래서 이유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을까?


쿨하고, 단순한 사람이고 싶었다. 

어릴 때 나는 눈물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그래서 남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마 동경했던 것 같다. 감수성이 부족한 대신, 자신을 잘 챙기는 사람이.

그래서 그 옷을 손에 넣어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맞지 않는 옷이라, 어딘가 삐걱대고 어색했던 건 아닐까. 이 옷은 나를 멋져 보이게는 했지만, 입고 싶은 옷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주변에서는 나를 이해 못 할 사람으로 보지는 않는다. 멋진 사람, 쿨한 사람, 여유가 넘쳐흐르는 사람. 이것이 내가 나의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얻어낸 타이틀이다.


참 초라하다.


비가 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기 중 떠다니던 물방울들이 구름으로 머물러 있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할 만큼 커져버렸을 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낙하한다. 

모든 구름이 비가 되지는 않지만, 비가 오려면 구름으로 머무르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고, 아무리 옆에 있는 물방울을 붙들고 늘어진들 어차피 한 몸이 되어 떨어지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두려워도 떨어져야 한다. 두려워도 다시 웅크려야 한다. 떨어지지 않으면, 꽃 피울 수 없고, 울창해질 수 없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장마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와장창 쏟아지는 빗줄기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나의 두려움이 내는 소리가 잠시나마 묻혔다. 

별 일 아냐. 두려워하지 마. 네가 떨어져야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절대 그 끝이 허무하지 않을 테니까. 용기를 내.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던 빗방울이 내 얼굴을 쓰다듬고 이내 흩어졌다. 

자신의 본분을 다 했다는 듯이, 시원하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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