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금은 자기 PR의 시대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게 언제 적 말이야 싶지만 나는 우리가 여전히 자기 PR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을 통해 더 전문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된 후 파견 전 국내 교육 당시 활동 수기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단원 생활을 잘하고, 나의 생활에 대해 글을 쓰면 책을 출판해 준다고 했다. 평소 작가에 대한 선망이 있었던 나는 귀가 쫑긋했다. ‘언감생심 내 주제에 작가는 무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던 나에게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직감했다.
부푼 꿈을 안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책을 쓰려면 순간순간을 잘 기록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보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보이스 피싱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신 딸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납치를 당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고 들었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블로그에 너무 개인적인 글들을 올린 게 문제였다. 캄보디아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초심은 흐려지고, 한국보다 체감상 백만배 천만배 느린 인터넷으로 글 업로드가 힘들다는 핑계로 포스팅이 점점 뜸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어서 블로그를 접게 되었다. 그 후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빼고 간단하게만 페이스북에 사진과 짧은 글을 올렸다.
단원 임기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향후 일 년간 취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취직하면 평생 일을 해야 할 거로 생각했기때문이다. (슬프게도 그 예감은 적중하여 10년째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 테니스도 배우고 글쓰기도 배우고 여행도 하는 등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정말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거나, 당장 쓸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어쩔 수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니 최소한 삼 개월은 놀겠노라 마지노선까지 정해두었다.
놀 수 있을 때 충분히 쉬겠노라며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런 다짐을 하자마자. 코이카 국내교육원에서 인연을 맺은 김성식 선생님이셨다. ○○대학교 병원에서 캄보디아에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현장관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간호사가 필요하고, 단원 출신으로 캄보디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면서 김성식 선생님께 괜찮은 인재가 있으면 추천을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PM(Project Manager, 책임관리자)는 유병욱 교수님으로 국내 훈련에서 보건 강의를 해주셨던 분이셨다. 교육 당시에도 캄보디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하셨었기에 그 때 말씀하신 그 프로젝트인가 싶었다. 해외 봉사가 아닌 일로써 접근하는 ODA는 어떨까? 궁금증이 일었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캄보디아에서 넘치게 외로웠기에 당분간은 가족의 사랑 안에 있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임상 밖에서 간호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마음속의 저울이 이쪽으로 기울었다 저쪽으로 기울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떤 일인지 물어나 보자 하고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유병욱 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를 추천해 주셨을까? 캄보디아에서 활동한 간호 단원이 무수히도 많은데 왜 하필? 내가 정말 일을 잘해서였을까? 내가 특출난 단원이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임지에서 조용히 묵묵히 성실하게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는 단원이 정말 많다. 사실 그런 단원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에 있었더라도 동기가 아닌 이상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주칠 기회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의 경우에는 의도 한 건 아니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페이스북에 활동 내용을 올린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이 ○○대학교 중앙의료원 국제사업팀에 나를 추천해 준 김성식 선생님께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걸, 내가 이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해준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자신의 자리에서 본인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서 알릴 것을 적극 권장한다. 단원들끼리 서로의 활동 내용을 공유할 수도 있고, 그 순간의 짧은 기록이 나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록을 보며 생생하게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나처럼 취업이라는 예기치 못한 기회를 선물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