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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빛 Nov 08. 2024

권력의 맛

 앞서 언급했듯이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써 임기를 마친 후에는 ○○대학교 중앙의료원에 입사하였다. 프놈펜 국립소아병원 기능개선 프로젝트 현장관리자로 캄보디아에 돌아갔다. 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이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압박이 전혀 없었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일이 되고 마음만 먹으면 탱자탱자 놀 수도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캄보디아 국립소아병원 기능강화사업에 현장관리자로서 주 업무 중 하나는 PDM(Project Design Matrix)에 따른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 신생아집중치료실) 병원감염률, 의료진들의 손 씻기 수행도 등의 통계 자료의 조사, 수집, 입력이었다. 이는 현지 의료진들이 기초 자료를 작성해주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 업무는 현지 의료진들에게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 가뜩이나 바빠죽겠는데 한국에서 온 새파랗게 젊은 간호사가, 그것도 여자가 그곳에서 이미 권위 있는 의학 교수님들에게 업무 협조구한다고해서 그들이 들어줄리 만무했다. 말이 업무 협조지 사실 현지 의료진들이 작성해야하는 데이터였기 때문에 나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제대로 작성했는지 확인하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등 업무 지시에 가까웠기 때문에 고깝기 까지 했을 것이다. 내가 종이를 들고 끈질기게 쫓아다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데이터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병원장님께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코이카 단원 생활 중 지역 내 NGO 협회에서 현지 장애인 대상 한국어 강의를 했을 때, 한국어가 모국어라는 사실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 후 한국어 교원양성 과정을 이수하였다.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는 요긴하게 써먹는 법! 프놈펜 국립소아병원장님께 흔쾌히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조건은 단 하나, 원장실에서 수업을 진행 하는 것이었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감염관리나, QI 활동에 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고, 병원장님께 보고를 드리러 오는 의료진들과 얼굴을 자주 마주 할 수 있었다. 내가 업무 협조를 구해야하는 교수님들이 오시면 은근슬쩍 병원장님께 관련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효과는 아주 굉장했다. 병원장님을 등에 업고 의료진들의 협조를 잘 이끌어 날수 있었고, 이 데이터를 토대로 2016년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소아학회에 포스터를 제출하여 발표자로 참석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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