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은비 May 18. 2023

[상담일기] 6회차

우리의 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니까요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상담을 받고 있을까. 무료해지다가 무효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드는 상태로 상담에 가게 되었다. 사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들이 들기도 했고 어려운 마음들이 드는 건 사실인지라, 얼마나 효과를 볼까를 많이 생각했던 한 주를 보냈다.

어쨌든 상담을 받으러 갔고, 회기를 잠시 2주 정도 일정 때문에 미뤄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나는 정말 이대로 2주만 쉴까 하는 생각도 문득 했던 것 같다. 나아진 게 있냐고 되돌아보면,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뭐 모르겠으니 계속해 볼 수밖에. 달라지려면 시도하는 방향이 더 나을 테니까.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하고, 엄마의 옛날이야기도 하다 보니 부모님의 원가족에 대한 생각들이나, 부모님이 겪었던 사랑의 형태나 가족의 형태가; 습관이, 우리의 삶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많이 느꼈다. 지극히 아버지스러운 모습이라던가, 혹은 지극히 엄마 같은 모습들이 내 안에서 나올 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어렵사리 다시금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내어 이것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 보면, 부모님 또한, 개선을 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들이 되신 게 아닐까 하곤 했다.


단어 선정의 위력, 말투, 예쁜 언어습관을 갖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조금은 고급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행복하고자 노력한 모습들이 나는 꽤나 멋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금 깨닫곤 하기도 했다. 부모의 굴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눈치가 없거나, 센스가 없는 사람의 모습을 가끔 보일 때가 있으니 조심하고자 했던 모습들을 다잡는다. 이런 말들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될지, 말 한마디에서 오는 효과들에 대한 맥락 파악이 중요한데, 나는 그런 면에서 나약했던 게 아닐까. 사회적 관계없음으로 인한 경험 부족이 언어 사용을 어렵게 했던 것들이니, 언어를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혀봐야 하는데 어찌나 요즘의 나는 귀찮고 힘겹고 버겁기만 한지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의 많음이 벅찬 날들이다.


글을 적으면서도 글이 정리되지 않고, 이 글들을 고스란히 그대로 내놓아야 할 때의 두려움이 앞서지만, 모든 것을 잘 해낼 필요는 없다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했을 때의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적었다. 상담을 가는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걱정도 하지만, 상담을 가는 시간이 기대되는 것은 변함이 없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굉장히 외로우셨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엄마는 엄마로서 혹은 아빠는 아빠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회기였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게 된 상황들도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일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꼬이고 이루어진 일이라서, 그래서 엄마 아빠가 내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 인지함으로 개선의 방향성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매일 어제의 나를 갱신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며 천천히 완성해 가는 것이니까. 달라질 수 있기에 인간이고, 천천히 한 스텝씩 자신의 속도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어서 사람이다.


사실, 요즘은 나의 인생에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정돈하고 정리해서 비교적 깔끔하고 최적의 모습으로 값을 맞춰두고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지난날로 돌아간다고 한들 똑같은 선택을 하고 여전히 나는 어리석게도 매일을 힘겨워하고 버거워하며 살아가겠지만,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또 살아가겠지만, 지금의 삶이 너무 벅차고 버거워서 다 지워버리고 다시 하나씩 켜켜이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게 맞나 싶지만, 이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겠다. 인생은 내 맘대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리셋 버튼을 누를 수는 없다. 내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인생을 보며 좌절하고 분개하고 우울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동역자들이 곁에 있고, 조력자들이 숨어 있다. 어떻게든 해결되고, 어떻게든 달라지며, 어떻게든 이루어지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구획하고 구현해나가야 할까. 내 부족함을 단단하게 이루어가는 과정의 일부에 들어가 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인생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까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왔다. 아니, 이미 내가 정해둔 목표가 있었는데, 인생의 가치관이 있었는데,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일을 간과하고 작은 일로 치부해 버리고 우선순위를 다르게 둔 것 같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나, 성실하면 최고지만, 때론 성실하지 않고, 내 일이 우선시되는 것도, 나의 변화에 더 초점을 두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일기] 5회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