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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y 18. 2024

난 단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을 거야!

서른네 걸음

'한 푼도 손해 볼 수 없어.. 어떻게 번 돈인데.'


누구나 공들여 힘들게 번 돈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건 고통이다.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면?


처음 투자했던 날이 떠오른다. 용어는커녕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이상한 그래프와 숫자의 세계.


"아~! 돈 벌려면 투자해야 한다고오!"

"그거 알아? 몇 달 전에 XX에 투자했다면 벌써 10배는 벌었을 걸?"

"돈이 복사가 된다고!! 안 하면 바보지 바보."

"그때 했다면 좋았을 걸. 행복했을 걸.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됐을 걸."


그랬다. 대 투자 종용의 시대.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정수를 깨우칠 수 없을 것 같던 시기. 뭔가에 홀린 듯 그렇게 내 첫 투자가 시작됐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뭐가 뭔지 모를 이상한 화면 속 버튼을 클릭하고 넣어둔 예치금으로 딸깍- 소리를 내며 첫 투자 완료!!


'후련해.. 해냈어!! 별 거 아니잖아?'


처음 느낌은 후련함이었다. 오랫동안 묵은 숙제를 겨우 해냈다는 느낌. 마침내 해냈어. 해내고야 말았어. 장하다!


며칠이 지나기는커녕 몇 시간도 안 돼서 투자한 상품을 살펴봤다. 그래프와 숫자가 시시각각 변하며 내게 정보를 알려줬다.


+3%, -2% 다시 +x.xx% 무한 반복.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청기홍기 게임 속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장마감. 멈춰 선 차트 속의 숫자는 +3%를 보여줬다.


'우왁...? 돈 벌었네? 보자 보자.. 날마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년 뒤면.. 히에에에엑!!!! ㄴOㄱ'


달콤했다. 조금 더 투자하지 못했던 소극적인 몇 시간 전의 내가 아쉬웠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투자에 빠져들었다.




[몇 달 뒤]


처음 투자할 때 보다 좀 더 과감히 많은 금액으로 숫자가 커져 있었다. 


딱딱따다다딱-


차트를 보며 불안해진 난 습관적으로 턱을 딱딱 부딪쳤다. 나도 모르게 불안에서 비롯된 습관이랄까.


'아.. 뭐야 더 떨어졌어?'


어느샌가 하향 곡선을 그리더니 이제는 -20%라는 실망스러운 수익률을 보여준다. 그리고 드는 생각.


'조금만 더 투자하면 잘될 거 같은데.. 아쉽네.. 조금만 더 넣어볼까? 그래! 가즈아아아아아!!!'


그렇게 시작된 투자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40%에 육박해졌다. 이성이 마비된 지는 오래. 허무하게 원금의 40% 이상이 증발해 버렸다 생각하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존버.. 만이 살길.'


잃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난 분명 특별한데? 손대는 것마다 잘되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는데?! 알 수 없는 근자감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라지질 않는다.




[며칠 후]


요 근래 세계정세가 불안하다. 뭐가 어떻고 콩가루가 됐다는데.. 이거 뭐 투자할 시기가 아닌 거 아니야?


갑자기 들려온 사실 무근의 이상한 루머를 듣고 나자 존버하겠다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봐.. 이거 내가 잘못해서 투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니까? 세계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그런 걸 일개 개인인 내가 어떻게 해결하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리하고 다른 거 사자!'


뇌 속에 훅 들어온 망상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망령이 되어 나의 손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 팔지어다!!!!!! 그리고 새로 살 지어다!!!!]

[뉘예뉘예 그리 하겠습니다. 투자의 신이시여.]


정신을 차렸을 땐 돌이킬 수 없을 손해를 떠안고 정리해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슈퍼 이끌림을 느끼며 이상한 정보도 모를 새로운 투자를 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복기해 봤더니 내 첫투자는 실패.. 그냥 실패도 아닌 대실패로 끝나있었다.


'야호! 말아먹었다!'가 아니라 밀려오는 허탈함과 분노.


[어찌하여 내게 투자의 세계를 알려주셨나이까?! 갸아악!]


그래도 어찌저찌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추억으로 변해버렸다. 과거의 난 분명 단 한 푼도 손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지만 결과는 손해왕. 아낌없이 퍼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난 다른가?


아니. 근본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다. 다만 단 한 푼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왜?"


투자의 한문을 살펴보면 [재물을 던져놓는다]이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 여력이 되는 내에서 재물을 던져 놓고 그것보다 더 큰 이득이 돌아오길 바라는 행위다.


야구에서도 타자의 타율은 확률과 직결하듯 투자라는 행위도 결국 확률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성공하는 때가 있듯 실패하는 때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난 그 확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계속계속 손해 본다면 어쩔 겁니까?"


그러지 않아야겠지. 하하.. 그래도 100%라는 확률은 없다고 믿으니 약간의 가차 뽑기 같은 확률이라도 계속해서 해보는 게 안 하는 거보단 낫지 않을까? 라며 오늘도 희망회로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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