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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02. 2024

미메시스

서른여덟 걸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나쁜 예술가는 모방하고, 좋은 예술가는 훔친다. - 피카소]


창작은 참 애매하다. 만들어 내는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한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곰곰이 따져보면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모국어를 습득할 때 주변에 있는 사람을 흉내 내며 익혀 가듯 창작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건 아닐까?


주변에 창작가로 둘러 쌓이면 좀 더 창작에 대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까?




mimesis. [재현 or 모방]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의 mimo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오랜 시절부터 모방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니 신기하다. 철학적인 접근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모방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처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게 영향을 줬던 작품이 많았다. 호러를 소재로 한 단편, 중편, 장편 소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목회자셨던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 무속 신앙과 함께였던 증조할머니의 모습. 타인에게 들었던 비밀스러운 경험 공유 등.


순수히 내 경험에서만 모든 소재가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렇게 쓸 수도 없었다. 쓰면 쓸수록 대단하게 쓸 수 있다고 여겼던 내 경험은 미미하게 느껴졌고 글로 표현된 이야기는 힘이 없었다.


첫 시작은 용의 머리를 보여줄 것 같은 기세였지만 다 쓰고 나니 뱀의 꼬리보다도 못한 느낌의 글 뭉터기가 나타났다.


'어째서.. 내가 읽어오고 봐왔던 것보다 훨씬 못한 것이 나타나 버렸을까?'


모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의 나와 마주하자 부끄러웠다. 


'이럴 거면 그냥 독자로서 살아갈걸.. 아니지 아니야. 이래서 중도 포기하는 작가 지망생이 많은 거 아닐까? 부끄러움 속에 결국 숨어 버리고..'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 정확하게는 나처럼 글을 쓰거나 또 다른 창작을 하는 사람의 삶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진지한 교류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 다른 창작가의 삶을 엿볼 방법이 없었다.


'어떡해야 하지..? 그래! 책.. 책이 있구나.'


직접적인 교류 방식은 아니지만 세상엔 수많은 작품이 존재한다. 그것도 여러 사람의 검증과 인증을 받은 작품들.


하나하나 전부 읽고 살펴보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도 부족하고 취향에 맞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일방적인 소통에 가깝기에 남겨진 글을 읽고 내 안에 드는 생각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가 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분명 크게 도움 되는 방법은 맞다.


꿈꾸고 있는 웹소설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예전 책 대여점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때와 지금의 웹소설 시장과는 비슷한 듯 많이 다른 세계였다.


'일단 꼭 읽어보라고 하는 유명한 작품을 몇 개 선정해서 읽자.'


이미 유명해진 작품은 역시나 생각보다 많이 존재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웹소설을 써보겠다고 덤벼든 40대 지망생 아저씨의 눈에 첫 웹소설의 느낌은 [생소함]이었다.


'이.. 이게 맞아?'


5,000자 내외의 1화 속에 나름의 기승전결이 존재하며 주인공 시점에서의 빠른 이야기 전개는 굉장한 속도감이 느껴졌다.


처음의 생소함을 극복하며 읽어 나갔다. 1화, 2화.. 그러다 어느새 100화, 200화. 빨려든다. 빨려 들고 있다.


'와..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웹소설을 접하고 내 안에 있던 어떤 벽 하나가 허물어졌다. 나름 순문학을 오래 읽어온 독자로서 비슷한 풍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목표가 한순간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재밌고 빠르고 쉽게 읽히며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웹소설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시작은 힘들었다. 


'대체 뭘 소재로 써야 하지? 내게 공감을 살만한 주제가 있을까?'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자니 너무 밋밋해 보이고. 상상의 세계를 펼치자니 요즘 읽히는 소재로는 도저히 쓸 자신이 없어.


'그렇다면 모방..? 하지만. 범죄 아닐까?'


새로운 창작을 위해 흉내 내는 모방이 자칫 남의 것을 훔쳐오는 표절로 변할까 봐 무서웠다. 내 것이 아닌 걸 내 것인 양 착각하고 망상에 빠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일단 쓰면서 극복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덜덜 떨기만 하다간 결국 한 줄도 써보지 못하고 꿈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웹소설 쓰기가 어느새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여전히 인기는 없지만 말이다. 


웹소설을 쓰는 목적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것이기에 인기는 아무리 부정해보려 해도 글쓰기의 주요 동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가.. 언젠가는 좀 더 많은 독자가 읽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꾸준히 모방하며 좀 더 재밌게.. 좀 더 흐름에 맞게 글을 다듬어 생산한다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여전히 고민이다. 모방이 표절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인기 작가의 작품을 감탄사와 함께 읽는다. 그리고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듯 매일의 소설을 하나씩 만들어 낸다. 그리고 꿈꾼다. 언젠가 나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줄 많이 생기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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