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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04. 2024

노파심아 사라져라!

서른아홉 걸음

오래된 아파트. 차를 몰고 단지로 들어오는 작은 경차 안에는 늙은 할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얼마나 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듯 주변을 살피시고 수많은 차 사이를 뚫고 이중주차를 시도하셨다.


최대한 도로가 아닌 쪽으로 바짝 붙이기 위해 여러 번 차를 뺏다 넣었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마음에 들었다는 듯 P로 기어를 바꿨다.


차문을 힘겹게 열고 나오는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의 손엔 방금 전 처방을 받은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힘드신지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덜덜 떨렸다.


다시 한번 차 주위를 살펴보고 주차된 위치를 살펴보더니 마지막으로 수동으로만 접을 수 있는 사이드 미러를 고이 접고 웃음을 지으셨다.


'이거면 안심이야.'라는 듯하다.




빈 주차 공간이 보였다. 차 사이에 있는 곳이라 선호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달리 남는 공간도 없어 보이니 일단 주차부터 시도하자.


주차하기 전부터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 사이의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한다 쳐도 나오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벌써부터 차 문을 조심스럽게 잡고 내 몸을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생긴다.


'후우- 후우- 주차만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잠시 후 차문을 열어보니 예상보다도 더 비좁았다.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 나올 거 같다. 차라리 차를 살 때 리모컨으로 전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넣었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망연자실한 채 일단 차 안에서 좀 쉬기로 했다. 혹시나 다른 공간이라도 비길 바라면서.


잠시 후 왼쪽에 주차한 차주가 차에 탔다.


'오!! 잘됐다!'


옆 차가 빠지면 내리는 건 걱정이 없다. 부푼 마음으로 차주의 행동을 지켜봤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시다.


나는 또 괜한 노파심에 '이상하게 운전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고 불안감 때문에 한참을 지켜봤다. 아주머니는 청결을 중요시하는지 고운 레이스 달린 흰 장갑을 양손에 끼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차를 앞으로 빼더니 방향을 틀었다.


'뭐 하는 거지? 차를 빼려는 게 아닌 거 같은데?'


갑자기 방향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후진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


'안돼!' 노파심이 사실로 변할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혹시 후진하다 차를 박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차에 닿을 거 같으면 알려줘야지 싶어 이미 한 손은 크랙션 위에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앗!!! ... .. ??'


차는 다시 전진 후 후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차 완료.


분명 아까는 비좁아서 내릴 수 없던 운전석이었는데 아주머니의 주차 배려로 공간이 넓어져 있었다.


'아.. 일부러 내릴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거였네.'


부끄러웠다. 노파심 때문에 이리저리 트집 잡을 궁리만 하고 있던 내 모습이 순간 한심해 보였다. 따로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지 못했는데 아주머니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셨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노파심]이 심해졌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유난스러워질 때가 참 많다. 마치 나는 다 잘할 수 있고 남들은 잠재적 골칫덩어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불편했다. 특히 운전에 있어서 만큼은 고작 1-2년 밖에 경력이 안 됐으면서 벌써부터 프로 레이서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한 껏 치솟아 있다.


자동차 후면에 여전히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지만 내 행동은 결코 초보의 방식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경솔해 진거야?'


부끄럽지만 난 후방카메라가 없이는 주차를 할 수 없다. 연수 때 사이드 미러를 보며 주차하는 법을 배웠건만 후방 카메라가 없으면 할 줄 모른다.


언젠가 한 번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가 걸리는 바람에 후방카메라를 활용할 수 없던 순간이 있었는데 아주 진땀을 빼며 주차한 기억이 있다.


그때 하필이면 진입하려던 차가 있어서 더 허둥댔었는데 그 차를 의식하면 할수록 더 헤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주차를 하고 보내드리거나 죄송하다고 제가 운전이 미숙해 그렇다며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운전자는 내가 진땀 빼며 마지막 주차하는 그 순간까지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줬다.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오르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되지도 않게 노파심이나 키우고 말이야.'


남이 나한테 해코지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부터 잘하면 된다고!


노파심을 키우기 전에 나에 대한 관리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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