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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06. 2024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그냥 써 보는 이야기 11

우리 남편은 글을 쓴다. 작가냐고 물어보면 그게 차암 애매한데. 뭐 일단 글 써서 돈을 버는 게 아니니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저번엔 그래서 다른 생업도 좀 겸해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했더니 글쎄. 남편이 버럭 화를 내더니 뭘 몰라 준단다. 어이가 없어서.


요즘 같은 세상에 나 같은 아내가 또 어디 있냔 말이다. 내가 뭐 글 쓰는 게 못 마땅하거나 나빠 보여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텐데. 단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집안일도 좀 더 신경 쓰고 또.. 뭐냐.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해서 부업 같은 거라도 하면 좀 좋냐 이 말이다.


어쨌건 내가 좋아해서 같이 살게는 됐는데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왜 글을 쓰기 시작했지? 분명 연애할 땐 그렇게 바라던 연애편지는 써주지도 않던 사람이 말이야.


또 하나 황당한 건. 자꾸 글 쓰고 나면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는 거다. 그전에 아무리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굴었더라도 글 쓰고 난 뒤면 어느샌가 불쌍함을 최대한 보이려 애를 쓰는 거 같달까?


아니. 근데 나도 내 할 일이 있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건지.


"남는 시간에 읽겠다니까? 누가 안 읽겠대?"

"아니.. 그게 좀. 자발적으로 읽어 주고 의견도 주면 얼마나 좋아. 내가 딱히 다른 사람에게 봐달라고 할 수도 없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모습이 괜히 짠하다. 방금 전까지 분명 미워 죽겠는 감정이 들었었는데 항상 마음 약해지게..


"알았다. 알았어! 읽을게 기다려."

"고마워!!"


내 대답과 동시에 언제 우울했냐는 듯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숨죽여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다. 아휴.. 그래 나라도 읽어 줘야지.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사실 난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특히 소설이라곤 평생에 몇 권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남편은 자꾸만 읽고 난 뒤 구체적인 조언을 바라는 데 해줄 말이 있어야 말이지. 언젠가 한 번은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봤다.


"소설 전개가 좀 이상했어?"

"개연성은 있어 보여??"

"재미가 있으려나.."

"아니 사실 이렇게 쓸까 했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싶더라고."


계속 잠자코 있으니 이번엔 삐졌다.


"됐어! 알아서 할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감정기복이 느껴지는 게 재밌어 보이기도 한다. 이건 내가 그이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랄까?


만약 내가 "오늘부턴 봐주지 않을 거야! 그러기로 했어!"라고 하면 아마 울지도 모른다. 뭐 설마 울기야 할까 싶지만 왠지 많이 속상해는 하겠지. 원수다 원수야. 그래도 내가 안 챙겨주면 누가 챙겨줄까 저 인간을?


어떻게 오늘은 좀 색다른 소감이라도 말해줘?


"오빠. 요즘 전개가 좀 질질 끄는 거 같으네? 이제 슬슬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래? 사실. 내용 상 좀 더 쓰고 싶었는데. 조금 루즈하지? 그래 맞아."


자꾸 혼잣말을 되뇌는 게 신경 쓰인다. 내 말뜻 제대로 이해한 거겠지?


"아니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정리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고마워. 마침 나도 그럴까 생각은 좀 하던 참이라.."


다음날이 되고 오빠는 언제나처럼 쓴 글을 읽어달라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휴.. 오케이."


어? 뭐야. 왜 이렇게 전개가 빨라졌지? 이건 너무 급전개 같은데.


"오늘은 어땠어?"

"설마.. 어제 내가 마무리 각 얘기해서 급전개 한 거야? 너무 갑작스러운데.."

"그래? 아니.. 원래 뭐 마무리라는 게 좀 갑작스러운 감이 있기도 하고.. 주절주절~"


분명하다. 이 인간.. 내 말 때문에 갑자기 급하게 마무리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잘 썼어.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는 거지 뭐."

"어?? 헤헤.."


어쩌겠어.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할 사람인 걸. 그러니까 나한테 고마워하라고!


"나니까 데리고 살아주는 줄 알아!"

"그러엄. 헤헤."

"점심 뭐 먹을까?"

"그럼 오늘은.."


그래도 재밌다. 이 사람도 지금의 삶도, 다 내 선택이다. 적어도 날 심심하게 만들진 않으니 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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