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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07. 2024

회사 밖은 위험해!

40 걸음

[회사 밖은 위험해‼️]


두렵다. 어찌 두렵지 않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무서운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요즘은 40만 넘어도 조기 퇴직 당하는 세상입니다!"

"노후 준비 미리 안 해놓으면 50-60 때는 이렇게 됩니다."

"금융 지식 없이는 말년에 폐지나 주워야 합니다."

"자신만의 일을 만드세요! 회사 밖의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온통 경고와 협박처럼 들리는 무서운 말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회사에 취업해 받는 연봉은 정해져 있는 걸. 물론 노력을 통해 계속 올릴 수 있게 하는 것도 미덕이라면 미덕이겠지.


처음 회사에 입사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던 시절엔 앞으로 올라갈 연봉에 대한 생각으로 기뻤다. 워낙 낮은 연봉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올려도 생각보다 높은 상승률이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아.. 연봉은 무조건 오르는 거구나!'


내가 속해 있던 집단에서의 경험만 가지고 판단했기에 착각했다. 연봉협상 기간만 되면 인사담당자에게 앓는 소리를 해야 했다.


"이번에 제가 프로젝트 끝내느라 집에도 잘 못 가고.. 그리고 이 정도는 올려주셔야 할 거 같은데.."

"고생하신 거 충분히 알고 있죠. 그런데 회사 내부 규정이 있어서 그렇게까지는 못 올려드릴 거 같고요. 이 정도라면 괜찮으실까요?"


'생각보다는 적은데..'


"혹시 조금 더는 안될까요?"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듯 담당자는 좀 더 단호해졌다.


"저희 회사도 매출이 많이 떨어져서.. 아시잖아요?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이면 내부에서도 높은 편이에요."

"아.. 알았어요."


실패했다. 연봉이 올랐는데도 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까? 항상 내가 원하던 수준까지 설득을 못 시키고 제안하는 인상률을 수락해서일까?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래도 오르긴 올랐잖아. 담당자 말대로 뭐 그렇게 낮아 보이지도 않고. 내년에 올리지 뭐.'


하지만 매년 반복됐다. 이직을 하면 기존 회사에서 받던 것보다는 더 올릴 수 있었다. 대신 올린 연봉 이상의 책임이 부과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올린 게 어디야.'


어느 순간부터는 이직도 힘든 몸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직할 곳이 없는 건 아닌데 바라는 수준 이상으로 연봉을 올려줄 회사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내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해서가 1차적인 이유라면 이유다. 이직에 대한 위험성을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몸을 사렸다. 어떻게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높은 직위를 얻어야겠어.


내부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나를 고용한 고용주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게 가장 빨리 진급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상은 적중했다.


물론 고용주와 갈등이 생겨 떠나게 된 회사도 생겼지만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고용주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고 성과도 그에 맞춰서 내는 노력을 지속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고용주 친화적인 직원이 되었고 그 모습에 대한 결과로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여기던 어느 날 문득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고 여겨졌다.


흘러가는 시간, 가족과의 추억, 회사내부 직원의 평판, 무기력한 일상..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기껏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지만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회사처럼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과 내 회사인 건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내 것처럼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에서 배우는 건 참 많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


'언젠가 내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떠나야겠구나.'


무서울수록 보여주기식 일을 많이 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잃을 게 많았다. 당장 일을 안 하면 우리 가족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잃어가는 건 가족과의 유대감이었다. 


'누구나 다 비슷하게 삽니다!'


알고는 있는데.. 잠시 눈을 깜빡였다 살펴보면 어느새 아이는 쑥쑥 자라 있고 우리 부부도 조금씩 늙어감이 눈에 들어왔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도 누군가에겐 부러운 일이겠지만 '이렇게 사는 게 언제까지일까?'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졌다.


또 다른 건 어느 순간부터 회사의 모두가 경쟁자처럼 느껴졌다. 오래 알고 지낸 동료는 동료대로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사람대로 불편한 공생을 해야 했다.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내 주변에 남은 사람의 수는 줄어갔다. 날마다 만나고 웃고 떠들고 같이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뒤에서 떠 도는 소문과 험담. 당연하다 여겼지만 좀처럼 당연하게 생각 들지는 않았다.


'아주 지긋지긋하구먼.. 지긋지긋해.'


그래도 어쩌겠어. 별 수 없는 삶이라도 살아야지. 다들 그렇게 사는데. 다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이라는 데 갑자기 꽂혔다.


'정말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해? 이 삶의 바깥은 없는 거야?'


우물 속의 개구리 같은 난 혼자만의 음모론에 빠져들었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조금씩 달리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뭘 해야 하는 걸까?'


40이 가까워 온 가장이 하기엔 철이 없어 보이는 생각. 애써 억누르고 무시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날씨가 화창하던 어느 날 출근하는 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야.. 하늘도 이쁘고 들판에 꽃도 예쁘네.'


온통 아름다운 것 투성이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처럼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잠시 후 예정된 회의를 마쳤다.


모든 것이 즐거웠다. 회의에서 정겹게 싸우며 의견교환하는 동료들의 모습조차 미소 지어졌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와 메신저를 켜고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 개인적인 일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차가운 메신저 화면에는 순간 타이핑 중이라는 걸 알려주는 아이콘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내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분주하게 떴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아이콘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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