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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13. 2024

진정성을 찾아서

160 걸음

유입시키려는 자와 당하는 자. 어쩌면 현실은 밀물과 썰물의 법칙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터놓고 얘기하면 내가 글을 쓰는 것 또한 결국은 누군가의 유입을 통한 관심이 커지기를 바라는 행위이고, 그러한 관심을 토대로 무엇인지 모를 다음 발걸음을 향하기 위함이리라. 관심에 의해 유입이 일어나고 그를 통해 영향이 생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 런. 데‼


어찌하여 나는 머뭇거리게 되는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해를 끼치는 건 더더욱 아닌데도 글 하나를 발행하기까지 매일을 망설인다. 쓰기 전까진 도통 뭘 써야 할지 정리되지 않아 뒤죽박죽인 상태이며, 쓰는 중에는 "이래도 될까?" 하는 망설임의 연속이다. 정말 대단한 글을 쓰는 게 아님에도 이 고민과 고통의 과정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을 때엔 "쓰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소에도 결론지어지지 않는 잡생각이 많은 편이다 보니 비우는 행동이 필요했는데, 막연히 글쓰기가 적합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처음엔 술술 써지는 게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이 정도면 망상에 대한 기록을 믿고 남겨놔도 괜찮겠어.'


큰 고민 없이 떠도는 생각을 글로 적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적고 나면 다음 생각으로 전환을 할 수도 있으니 이거야 말로 바라던 바. 그렇게 쓰고 또 쓰며 언제까지고 이 패턴화 된 루틴을 지키면 되겠다 생각할 즈음 문제가 터졌다.


'글을 못 쓰겠어.. 분명 떠오르는 생각이 있긴 한데 어떤 식으로 옮겨야 할지를 모르겠다니까?'


혼자만 아는 슬럼프가 찾아와 버렸다. 지독할 정도로 쓰이지 않는 것이 무서운 역병에라도 걸린 기분이었다. 정신은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오염되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고 시도할수록 [모멸감] 같은 자기 비하의 감정이 생겨났다.


'이딴 글은 왜 쓰는 거야?'


처음이 어렵지. 한번 들기 시작한 자기 비하적인 생각은 점점 괴롭게 만들 뿐이었다. 다른 이의 유입은커녕 스스로를 끌어들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비하가 점점 혐오, 나아가 염오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끝 모르게 추락하는 마음을 멈춰줄 [서킷 브레이커]가 필요했다.


'제발.. 날 좀 멈춰줘.'




정신을 차렸을 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굴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만들어 낸 심연의 벽 같은 곳에 나를 가둬버렸다. 주변의 소리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익숙한 자극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휴.. 난 모르겠다. 오빠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해. 다 큰 성인인 주제에 앞가림은 알아서 좀 하라고."


아내의 눈엔 나이만 먹을 대로 먹은 애어른 하나가 혼자 감성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처럼 보였으리라. 가뜩이나 아이 둘 양육도 바빠 죽겠는데, 남편까지 뒹굴거리고 있으니.


"나 지금 심각해. 궁서체야."

"나는 안 심각한 줄 알아? 너가 그러고 있는 동안 결국 현실세계는 내가 다 책임져야 하잖아! 당장 서류 가져와볼까?"

"서.. 서류?"


서류는 못 참지. 아내의 협박이 통했다. 방금 전까지 분명 어두운 굴 속에 갇힌 비련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시 현실의 중년 아저씨로 순식간에 워프 해버렸다.


"짜잔. 나 이제 괜찮아요~"

"장난칠 시간 없어. 나 혼자 짐정리 다하고, 재활용도 다 버리고, 음식물도 정리하고! 넌 뭘 하는데?"


역시 한국은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1순위인가. 당당하게 사자후를 질러대는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내 귀에 때려 박혔다. 모든 말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아내가 이렇게 터프해졌지?




'연애 때, 그리고 신혼 초만 해도 결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너랑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다 화를 자초했지 휴."


말은 저렇게 해도 아내는 날 좋아한다. 아니 좋아해야만 한다. 나는 결코 법원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너 하기에 달렸어. 잘 생각하고 행동해."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아내가 이렇게 흡인력 있는 화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됐지? 마냥 수줍어하고 본인 의사표현이라곤 없었던 사람인 줄 알았건만. 착각이었나?'


방금 전까지 나사 빠진 사람이었던 난 어느새 아내에게 유입당해 버렸다. 그녀의 주옥같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외심을 표현해 가며.


'오?'


그러고 보니 아내의 흡인력은 대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인가?


"너가 꿈속을 헤맬 동안, 난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 중이었어."


그렇구나. 진정성. 꿈은 당위성이 떨어지는 반면, 현실 속의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투성이니까 진정성이 있을 수밖에. 내 글의 부족한 점은 망상으로 시작해 망상으로 끝나는 그 점이 문제였구나‼️


한수 배웠다.


"아내여. 그대를 인정한다."

"말투 똑바로 고쳐서 하고, 빨리 할 일 찾아서 해라?"

"넵!"


떨어져 있던 뇌 세포 하나하나가 아내의 스윗한 말에 힘입어 연결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뚝딱 글이 하나 탄생해 버렸네?


자. 이제부터 나도 [진정성]이라는 걸 담아볼 차례구나. 결국은 오늘도 아내를 팔아 글에 유입을 시키는 40대 아저씨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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