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게매니아 Mar 05. 2017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너의 이름은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를 알지만 서로를 모른다. 일주일에 두 세번, 서로의 몸이 바뀌며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서로는 만난적도, 만날 수도 없는 사실상 별개의 존재들이다. 그렇게 서로를 연결하던 끈-여기에서의 끈이란, 서로의 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이 어느 순간 끊어져버리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기억해내고 만나기 위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려 무던히 애를 쓴다. 두 시간 동안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영화관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순간, 머릿속을 사로잡은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실은,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너의 이름은’에서 두 주인공이 가장 노력을 쏟는 부분은, 마을을 구하는 일도 서로의 일상에 간섭하는 일도 아닌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서로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타키와 미츠하란 이름은 서로를 기억하는 가장 일차원적 단계부터 서로의 운명이 연결되었음을 확인하는 가장 고차원적 단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절실한 수단이다. 영화가 진행되며 타키는 미츠하의 이름을 결코 기억할 수도, 어쩌면 존재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애써 펜을 들어가며 미츠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운명에 대한 마지막 항거로 기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때 수많은 행복을 두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런 치기어린 기대가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명예를 얻으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누군가의 앞에 서서 무언가를 얘기하고 유명해지면, 그 자체로 행복이 완성되리라 믿었다. 열정이 사그라들자 물질적 행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돈을 많이 벌고,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실상 사고 싶은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행복의 기준은 일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남들은 정해진 인생을 살겠지만, 나는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깨에 힘을 가득 준 채 누군가를 만난 적도 여럿 있었다. 너네는 재미없이 살지? 나는 재밌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거다. 어때? 멋지지? 부럽지?


이 모든 단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녁을 놓쳤다라 얘기하는 것이 맞겠다. 몇가지 일을 했고, 그 일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일을 시키면, 나름 열심히 했다. 때로는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내가 몇 년에 걸쳐 쌓아왔던 탑이 무너졌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타키는 왜 그렇게 미츠하의 이름을 외우고 싶어했을까. 실은, 어느 순간 타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미츠하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하는 습성을 타고 났고,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에서 그 습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상징은 바로 서로의 이름인 셈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러나 그 몸부림은 지나치게 짧았고, 별 것 같지 않았던 계기 속에 가장 소중했던 가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저 위쪽으로 날아갔다. 미츠하의 이름도, 나의 행복해지는 법도.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서 묘한 여운을 남겼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그 가치들은, 그러나 기억 속 어느 기저에서 열심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오자, 그 어렴풋했던 기억들은 하나의 실체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난다. 결국 두 가지 결론이다. 소중한 가치가 이렇게 영화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과, 결국 이는 영화로밖에 남을 수 없다는 것. 영화관을 나서며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를 사실상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대와 절망, 그리고 혼란. 그 속에서 어느새, 행복이란 가치는 저 위로 사라져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모두 경계선에 서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