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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Nov 22. 2017

글쟁이로 살지 않는 이유.

한 때, 그러니까 진짜 예전, 철 없었을 한 때.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뭔가 멋져보였다. 글을 잘 쓰는 것도 멋져보였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도 멋져보였다. 어디 가서 자랑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이런이런 글을 써서 먹고 사는데 말이지. 그 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았다. 어머, 멋져요. 기깔나는 글을 써서 우리를 감동시키다니! 당신의 글은 내 세상을 구원했어요! 뭐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글을 써서 먹고 사는게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전업 작가를 하거나 기자를 하거나. 전자는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모든 작가가 김영하처럼 살 수 있다면야 당연히 그 직업을 선택했겠지. 일단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을 꿰뚫어보는데 성공했다. 많은 출판사는 생각보다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다. 출판사가 넉넉하지 않으니 작가도 넉넉할 턱이 없다. 게다가 어느 순간 서점가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를 점령하고 있다. 아마 내가 지금 아픈게 몸살때문인지 청춘때문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정작 내년이 되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내년의 트렌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겠지.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을 궁금하게 만들어야하니 말이지!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자기계발서고 소설이고 나발이고 내가 작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안정적으로 돈도 벌고 싶고, 결정적으로 되도 않는 약을 파는데는 도통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기.


두 번째 길은 기자다. 사실 잠깐 기자 생활을 체험했었다. 기자라고 하기에는 뭣한데, 하여튼 소년땡땡일보 학생기자나 대학교 학보 기자보다는 조금 더 풍부한 경험이었다. 뭐 나쁘진 않았다. 열심히 현장을 뛰어다니는 것도 퍽 재미있었고, 글을 쓰는 것도 지루하지 않았다. 혹자는 선후배간의 경직된 관계를 얘기하며 툴툴거렸지만, 뭐 딱히 그런 생각도 없었다(참고로 당시 내 직속 선배는 까다롭기로는 홍진경이 김치 만드는 안목을 뺨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돈, 돈을 매 달 따박따박 준다. 몇 일 이었더라. 몇 날 몇 시가 되면 휴대폰이 지이잉 울린다. 그리고 여지없는 입금 문자. 월급이 입금되었습니다. 빨리 안쓰고 뭐하세요! 아무튼, 퍽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퍽 즐거운 생활을 포기했던 이유는 불안함이었다. 내가 취재한 이 정보가, 인터뷰한 이 대화가 실은 거짓이면 어떡하지? 혹은 내가 사실의 한 면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모름지기 기자란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그렇지 않고 있지는 않을까? 실은 나는 동기들에 비해 취재를 꽤나 넓게 하는 편이었다. 책 잡히기도 싫었거니와,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믿지 않으니 취재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고, 믿을건 녹취와 팩트들 뿐이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중압감은 나를 짓누르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이런걸 천 번은 견뎌야 기자가 되는구나. 기자들을 존경해야겠다. 그 생각을 하며 기자의 삶을 정리했다. 물론 요즘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걱정은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었구나 싶긴 하다만.


그런 전차로, 지금은 글쟁이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근데 또 모르지. 언젠가 또 운명처럼 글로 먹고 사는 삶이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할지도. 사람 앞 길은 모르는거니까. 이렇게 또 가능성을 살짝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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