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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Feb 04. 2018

한국형 '히어로' vs '한국형' 히어로

염력

(경고)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에 얹혀있는 이와 같은 멘트가 <염력>에서 유독 눈에 띄이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일 것이다. 감옥에서 출소한 석현과 변호사 정현은 4년 전 남평상가 철거 현장을 방문하게 된다. 사업이 중단된 채 황량한 주차장으로 변한 그 곳의 도로 표지판에는, 남영역 방향을 안내하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결국 <염력>은, 2009년의 용산을 기억하는 영화다.


<염력>의 시작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만일, 2009년 1월 20일의 용산4구역에 히어로가 있었다면, 6명의 희생자는 살 수 있었을까. 지명이 남평상가로 바뀌었고, 망루 대신 땅에서 화재가 일어났지만 영화를 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날의 용산이다. 다행스럽게도, 영화 속 철거민들은 ‘석현’이라는 히어로를 만나 모두가 다치지 않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점점 불행해지게 된다.


<염력>을 보러간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부산행>이 보여준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부산행>에서 연상호 감독이 보여준 작업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새로움을 위해 KTX라는 익숙한 배경에 좀비라는 이질적인 상황을 충돌시켰고, 이는 관객에게 일상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판타지를 선사했다. 만일 내가 탄 KTX에 좀비가 있다면? 난 어제도 탔는데?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장 이질적인 상황이라는 설정은, 1000만이 넘는 관객의 눈을 홀리는데 성공한다.


<염력>은 과거의 성공을 답습했을 때 발생하는 가장 참담한 결론을 그려낸 영화다. <염력>은 철거현장이라는 현실적 배경과 히어로라는 이질적 상황을 조합시킨 결과물이다. 문제는, 철거현장이 과연 일상성을 띤 공간이냐는 것이다. KTX와 달리, 철거현장은 우리의 일상과 맞붙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철거현장에 대한 관객의 공감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초능력 히어로라는 이질적인 상황까지 붙여놨으니, <염력>은 일상 속 판타지가 아닌 완벽한 판타지 영화가 되어버린다. <부산행>과 달리, 관객은 <염력>을 보며 자신의 삶을 떠올리지 않는다. 같은 형태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결론은 완전히 딴 판으로 난 셈이다.


이와 같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서사의 강화다. 액션을 위해 서사를 꽤나 덜어냈던 <부산행>과 달리, <염력>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축은 서사와 신파다. 영화 극초반에서 보여지는 철거 과정에서의 루미 어머니 사망과 이후 펼쳐지는 부녀간의 갈등 및 봉합, 선악 대결 구도와 같은 모든 영역에서 감독은 끊임없이 신파적 서사를 삽입, 비일상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봉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선택으로 보인다. 히어로물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판타지물의 가장 큰 특성은 현실성과 개연성을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부족한 개연성을 일정 부분 덮어주는 것이 바로 캐릭터다. 영화 <아이언맨>을 예로 들어보자. 관객은 아이언맨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아닌, 아이언맨 그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토니 스타크가 어쩌다 아이언맨이 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중요한건, 아이언맨 그 자체의 매력이다.


<염력>은 이 포인트를 정확히 빗겨갔다. 거창하고도 번잡한 서사를 스토리와 엮는 과정에서, 감독은 기어이 캐릭터가 아닌 상황적 요소를 선택하고야 만다. 자연스럽게, 관객의 머릿속에 남는건 석현이라는 캐릭터가 아닌 석현을 둘러싼 번잡한 상황들 뿐이다. 캐릭터가 사라졌으니 판타지물 특유의 부족한 개연성이 심각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고, 이는 <염력>이라는 영화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축으로 기능하게 된다.


또 하나의 실책은 액션의 부재다. 부족한 개연성을 메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액션이다. 역동적이면서도 몰아치는 액션은, 스토리에 대한 관객의 의심을 덮을 수 있는 핵심적 요소다. 이미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을 통해 이런 가치를 드러낸 바가 있다. 그러나 <염력>에서 이런 액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후반부에 잠깐 존재하기는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히어로물을 표방한 영화치고도 액션 분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나온 액션 역시 <부산행>의 그 것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넉넉히 안겨주고야 만다. 액션도 캐릭터도 없는 영화이기에 관객의 시선이 부족한 스토리 개연성으로 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이런 실책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실책이라는 것이다. 정유미가 맡았던 홍상무는 악역의 스테레오 타입과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악역이다. 그가 보여주는 스타일리쉬함은,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을 한껏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주인공인 ‘석현’에게는 이런 캐릭터적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 구도가 뚜렷한 히어로물에서 악의 캐릭터만 부각되고 선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히어로물의 실패로 귀결되기 충분한 사안이다. 만일 석현의 캐릭터가 홍상무처럼 선명했다면, <염력>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은 히어로물에 대한 판단 미스에서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셈이다. ‘한국형 히어로’라는 단어의 방점은 ‘한국형’이 아닌 ‘히어로’에 찍혀야 한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끝내 ‘한국형’에 방점을 찍었고, 우리가 만난 <염력>은 히어로물이 아닌 개연성 없는 한국형 신파 판타지의 전형이 되고야 말았다.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국산 히어로물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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